먼. 산. 바. 라. 기.
클레어 키건의 소설 네 권 본문
아일랜드 작가인 클레어 키건(Claire Keegan, 1968~ )을 알게 되어 기쁘다. '탄광 속의 다이아몬드처럼 희귀하고 진귀하다'라는 평이 빈말이 아님을 이번에 그녀의 작품 네 권을 읽으며 확인할 수 있었다.
키건은 평생 다섯 권의 책을 출판했다는데 우리나라에는 네 권이 번역되어 있다. 두 권은 서점에서 샀고, 두 권은 도서관에서 빌려 모두 읽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맡겨진 소녀> <푸른 들판을 걷다> <너무 늦은 시간>으로 전부 단편들이다. 앞의 두 권은 하나의 단편이고, 뒤의 두 권은 여러 작품의 단편이 모여 있다. 책들은 100 페이지를 살짝 넘을 정도로 얇다.

키건의 간결하면서 건조한 문장미는 압권이다. 상황과 인간 심리를 짧고 절제된 문장으로 보여주는데 가슴을 흔드는 강력한 울림이 있다. 작가의 프로필 사진에서 옆을 쳐다보는 묘한 눈빛이 소설의 분위기를 그대로 대변하는 것 같다. 화려한 수사를 뺀 담백한 문장이 주는 감동은 문학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먼저 읽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과 <맡겨진 소녀>가 워낙 뛰어나서 뒤의 단편 모음집은 상대적으로 약간 실망스러웠다. 아일랜드 하면 가지고 있는 거칠고 황량한 이미지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작품들이었다.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함께 아일랜드 남성의 거칠고 가부장적인 태도를 작가는 고발한다.
네 권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맡겨진 소녀>였다. 주인공인 소녀는 무뚝뚝하면서 무관심한 부모와 여러 형제들 사이에서 외롭게 지낸다. 가난한 이 집에서는 천덕꾸러기 소녀를 방학 동안 친척집에 맡긴다. 친척집은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슬픔 속에서 부부만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 소녀는 환대와 인간다운 사랑을 받으며 마음을 열어간다.
작품에는 따스한 장면이 여럿 나온다. 친척집에 온 첫날 소녀는 낯선 환경에서 오는 두려움에 자다가 이불에 실례를 한다. 아침에 젖은 이불을 발견한 친척 아주머니는 습기가 많은 방이어서 생긴 일이라면서 소녀를 안심시킨다. 또 친척 아저씨가 소녀에게 활기를 주기 위해 우체통까지 달려갔다 오도록 하며 점점 기록이 좋아지고 있다고 칭찬하는 장면도 따뜻하다. 소녀는 친척 부부의 자상한 보살핌 속에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방학이 끝나고 소녀는 집으로 돌아간다. 집은 여전히 냉랭하고 오랜만에 돌아온 소녀를 아무도 반가워해주지 않는다. 소녀를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친척 아저씨에게 달려가 품에 안기는 소녀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나도 울컥해졌다. 작가는 이렇게 그린다.
"내 발이 진입로 중앙에 풀이 지저분하게 자란 부분을 따라 달리며 울퉁불퉁한 자갈을 세차게 밟는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딱 하나밖에 없고, 내 발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다. 아저씨는 나를 보자마자 딱 멈추더니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는 망설임 없이 아저씨를 향해 계속 달려가고, 그 앞에 도착하자 대문이 활짝 열리고 아저씨의 품에 부딪친다. 아저씨가 팔로 나를 안아 든다. 아저씨는 한참동안 나를 꼭 끌어안는다. 쿵쾅거리는 내 심장이 느껴지고 숨이 헐떡거리더니 심장과 호흡이 제각기 다르게 차분해진다. 어느 순간, 시간이 한참 지난 것만 같은데, 나무 사이로 느닷없는 돌풍이 불어 우리에게 크고 뚱뚱한 빗방울을 떨어뜨린다. 눈을 감으니 아저씨가 느껴진다. 차려입은 옷을 통해 전달되는 아저씨의 열기가 느껴진다. 내가 마침내 눈을 뜨고 아저씨의 어깨 너머를 보자 아빠가 보인다. 손에 지팡이를 들고 흔들림 없이 굳세게 다가온다. 나는 손을 놓으면 물에 빠지기라도 할 것처럼 아저씨를 꼭 붙든 채 아주머니가 목구멍 속으로 흐느끼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는 소리를 듣는다. 꼭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때문에 우는 것 같다. 나는 차마 눈을 뜰 수가 없지만 그래도 억지로 뜬다. 킨셀라 아저씨의 어깨 너머 진입로를, 아저씨가 볼 수 없는 곳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저씨의 품에서 내려가서 나를 자상하게 보살펴 준 아주머니에게 절대로,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얘기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더욱 심오한 무언가 때문에 나는 아저씨의 품에 안긴 채 꼭 잡고 놓지 않는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앞의 '아빠'는 소녀의 친아빠이고, 뒤의 '아빠'는 품에 안긴 아저씨일 것이다. 소녀가 진정으로 '아빠'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은 아저씨였으리라.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였다.
키건의 작품은 짧은 대신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깊다. 책이 얇아 한 호흡에 읽을 수도 있지만 천천히 되새김하며 봐야 한다. 두 책이나마 사길 잘했다. 자주 열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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