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늦여름 뒷산

샌. 2021. 8. 12. 10:52

입추가 지나니 햇살은 따가워도 바람은 시원하다. 가을이 다가오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한여름 동안은 쉬었던 뒷산을 이제 다시 걸어본다.

 

산길은 새소리 대신 풀벌레 소리로 가득하다. 이 역시 가을의 전령사다. 새와 달리 풀벌레는 날개를 마찰시켜 소리를 낸다. 인간의 악기에 비유하면 현악기에 해당한다. 숲을 가득 채우는 풀벌레 소리는 제 짝을 찾으려는 간절한 아우성일 것이다. 새들은 이미 번식기를 지났고, 이제는 풀벌레들 차례다. 온갖 소리가 요란하지만 누가 내는 소리인지 나는 아는 게 하나도 없다.

 

 

바람이 땀을 식혀주지만 늦여름 산길은 덥고 빨리 지친다. 더해서 작은 날벌레와 산모기가 덤벼들어 성가시다. 내가 가는 길의 훼방꾼을 무시할 정도로 나는 관대하지 못하다. 손수건을 휘젓지만 금방 다시 앵앵거리며 달라붙는다.

 

G 고등학교에서 담임을 할 때 1년 내내 말썽을 부린 한 아이가 떠오른다. 영악한 그 아이는 날 너무 힘들게 해서 한 해가 엉망이 되었다. 타일러도 윽박질러도 소용없었다. 반 분위기를 흐리게 하는 한두 명이 늘 있지만 얘는 특별했다. 산길에서 모기와 싸움을 하면서 문득 생각난 아이였다. 사실 다음 해에 누가 담임을 맡을까 적이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화통한 새 담임과는 별문제 없이 지내는 모습을 보고 다행이면서도 나와는 인연이 맞지 않았나 보다고 생각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본래 있는 게 아니라, 호오(好惡)란 상대적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감정일 것이다.

 

 

숲에도 가을의 빛깔이 보이기 시작한다. 떠나가고 찾아오는 순환의 움직임이 냉정하다. 숲에 사는 생명체들은 자연의 리듬에 맞춰 본연의 생명 활동으로 분주하다. 풀벌레는 몸을 비벼 자신만의 고유한 음색으로 연주를 하지만, 각각의 소리가 모이고 아름다운 하모니가 되어 숲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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