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국립묘지가 정원이 되다

샌. 2007. 4. 8. 20:26


 

집 뒤의 산에 아내와 같이 처음으로 올랐다. 이름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예전에는 꽤 높아보였을 산이었을 텐데 지금은 중턱까지 아파트가 들어서 꼭대기가 아파트 높이와 나란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도 많이 다녀 산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이런 현상은 서울 시내에 있는 산들이 겪는 공통된 고통일 것이다. 더구나 바로 뒤편이 국립묘지라 흉물스런 시멘트담이 산 능선을 따라 세워져 있어 기대와 달리 산길 걷기가 그리 마음 편하지는 않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유지되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봄이 찾아와 군데군데 노란 개나리와 나무의 초록 잎들이 눈을 환하게 하고, 깊섶에는 제비꽃과 양지꽃도 보였다.

 

길게 이어진 시멘트 장벽에 국립묘지와 연결되는 출입문이 하나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개방된 것이 만들어진 길 모양새를 보니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다. 안쪽 분위기는 밖과 영 달랐다. 마침 한식이 낀 주말이어선지 묘지에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아내는 서울에 산 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국립묘지 한 번구경 못했다고 늘 아쉬워했는데 어쩌다 보니 국립묘지 바로 옆에 살게 되었다. 조금만 걸으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 이젠 국립묘지가 집 정원이 된 셈이다. 묘지 주위를 빙 돌며 산책로가있어걷기에는아주 좋은 곳이다.

 

마침 지나는 길에 있는 박 대통령 부부의 묘소에 들렀다.찾아온 사람들로북적였는데 아마 국립묘지 안에서 가장 붐비는 장소일 것이다. 내 눈에는 묘소 앞 목련나무가 가장 눈에 띄었다. 목련이 육 여사의 이미지와 맞는다고 얘기하는데 그래서 목련을 심은 것이리라. 목련꽃은 한 철을 넘기고 이제 시들고 있었다.

 




이 집이마음에 든 것은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조용하다는 것이다. 며칠 지나보았지만 낮에 창문을 열어두어도 차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그래선지 공기도 깨끗한 편이다. 서울 시내에서 이런 주거 환경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대신 지하철을 이용하자면 많이 걸어야 되니 불편하다. 그러나 그것도 운동으로 생각한다면 도리어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아이들은 그 점을 싫어한다.

 

내려오면서 보니 집 옆에 있는 낡은 주택으로 된동네가 재개발을 한다며 공사가 시작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조용하게 살기는 틀린 셈이다. 오랜만에 호사를 누려보려 했더니 그마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만약 저기도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다면 뒤의 확 트인 전망도 가려질 것이다. 한 쪽의 주거권은 늘 다른 쪽의 불편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 것이 세상사의 이치일 것이다. 아름다운 세상이란 서로간의 불편을 최소화하면서 양보하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일 것이다.

 

곧 헐릴어느 빈 집 벽에낙서가 적혀 있다.

 

'운명은 용기있는 자 앞에서는 한없이 약하고, 비겁한 자 앞에서는 무자비할 정도로 강하다.'

 

'애정을 감추고 살기엔 인생이 너무도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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