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평등과 공정 본문

지난봄에 있었던 대선 토론회 때 어느 후보가 이재명 후보의 일률적인 민생지원금 지급과 함께 평등 정책을 공격하며 제시했던 그림이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평등이라는 개념에서 착각이 있는 것 같았다. 왼쪽 그림이 아니라 오른쪽과 같은 공정의 결과물로 나타난 게 평등이 아닐까. 나는 왼쪽 그림을 평등을 가장한 불평등, 오른쪽 그림을 공정에 의한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평등과 공정에 대해서 김규항 선생이 쓴 글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는 정확히 말하면 근대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라는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가진 사회다. 사회 정의도 '평등'과 '공정'이라는 두 축 위에 있다.
평등은 모든 인간이 본질적으로 차별받거나 귀천이 없다는 근대 사회의 원리다. 공정은 시장 경쟁의 결과로 발생하는 불평등을 인정하면서, 다만 그 과정이 정의로워야 한다는 절차적 원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정은 불평등을 관리하거나 정당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평등이 보편적 정의라면, 공정은 자본주의적 불평등의 장식물로서 정의인 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등과 공정은 늘 긴장 상태에 있다. 어느 쪽이 더 무게를 갖느냐에 따라 사회의 성격은 크게 달라진다. 다수 인민이 살 만한 사회는 평등 원리가 우위에 있고 제도와 일상에 뿌리 내린 사회다. 북유럽 사회가 대체로 그렇다. 공정만 강조되는 사회는 평등이 무너진 사회다. 소수 지배층의 낙원, 많아야 상위 10퍼센트만 살 만한 사회다.
한국은 어떤가? 최근 한국 사회에서 '평등'이라는 말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다고 공정이 강조되는 것도 아니다. 간혹 나오더라도 공허한 정치적 수사에 머물 뿐이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 사회가 어떤 상태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냉혹하게 보여준다."
언젠가 모임에서 '평등' 얘기를 꺼냈다가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평등은 금기어가 되었다. 선생의 말대로 '공정'도 마찬가지다. 각자 자기의 이익을 따라 공정을 말할 뿐이다. 한국인이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평등과 공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한국 사회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이렇지 않을까 싶다. 백을 가진 사람은 한 개 가진 사람 몫을 뺏아 자기 배를 채운다. 한국 사회는 착취와 거짓, 편법으로 얼룩진 사회다. 다들 돈과 권력이라면 똥덩어리에 몰려드는 똥파리들 같다. 그들에게 이웃을 돌아보는 마음이나 정의에 대해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런 생각에 천착하다 보면 우리의 미래는 어둡게 느껴진다. 지도층이나 일반인이나 한통속으로 놀아난다.
일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한국만큼 고난을 겪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 근대사만 봐도 그렇다. 전쟁과 독재, 정치적 불안 속에서 생존의 본능이 뿌리 깊에 각인되었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도입되며 돈이 최고 가치가 되었고, 돈에 바탕을 둔 계급 사회가 형성되고 있다. 여기에 빈곤한 내면을 가리려는 허영과 허세가 더해지니 최악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한국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미국만 봐도 그렇다. 넘버 원의 국가가 소국들에게 깡패 같은 짓을 하고 있다. 극우들이 득세하며 평등과 공정을 놀림감으로 만든다. 혐오와 조롱이 판을 친다. 이렇게 되면 인류의 미래도 걱정이다. 정보 혁명이 잘못된 길로 가면서 이런 부작용을 더욱 부추길지 모른다. 다가오는 AI 시대에 세상은 어떻게 변해갈까. 자본이든 정보든 양극화가 심해지면 사회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환영 나온 교민들이 '대동사회'라는 구호를 외치는 걸 보았다. 대동사회(大同社會)란 평등과 공정의 가치가 살아 있는 사회다. 우리가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도 이것이다. 대통령의 진의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대통령 혼자의 의지로 되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밀려올 험한 파고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심히 걱정이다. 분열되어 가는 사회를 조정하고 통합해 낼 수 있을까. 서로 제 것 챙기기만 탐하며 싸움박질하다가 우리는 어떤 나락으로 떨어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