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11월의 우울 본문
엘리엇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불렀지만 나에게는 11월이 그러하다. 일 년 중에서 유독 힘든 시기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때다. 화려했던 단풍이 지고 싸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멜랑콜리한 감상에 더해 우울증이 찾아온다. 계절이 주는 선물이라고 해야겠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디에서 오는지 모를 절망과 불안에 짓눌린다. 내 앞을 거대한 절벽이 가로막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커튼을 열기도 겁이 난다. 커튼을 열면 엉뚱한 바깥 풍경이 펼쳐질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마치 영화 '인셉션'처럼 시공간이 왜곡되어 이상한 세계로 변해 있지 않을까, 베란다에 있는 제라늄 잎이 빨갛게 바뀌어 있지 않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이다. 오늘 아침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커튼을 확 열어젖혔는데 다행히 세상은 그대로 있었다.
11월의 풍경은 떠나보냄과 상실의 슬픔을 그대로 보여준다. 거기에 한 해의 끝이라는 서글픈 느낌이 배가된다. 존재가 가진 허무와 불안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때가 11월이 아닌가 싶다. 겨울이 되면 차라리 낫다. 한기가 정신을 차리게 하고 헐벗은 풍경이 위안이 되기도 한다. 사람을 흔들리게 하는 어중간한 11월이다.
이럴 때는 동물이 겨울잠을 자듯 나만의 동굴로 숨어들고 싶다. 아무 방해도 받지 않는 고치 속 애벌레가 되고 싶은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모임에 나가도 사람들의 말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진다. 가능하면 2차의 잡담 자리는 피한다. 며칠 전 모임에서도 걷기만 끝내고 다른 약속이 있다면 일찍 나왔다. 안 그대로 사람을 싫어하는 성격인데 11월이 되면 더욱 심해진다. <좀머씨 이야기>에서 좀머씨가 이렇게 소리쳤지. "날 좀 가만히 내버려두란 말이야!"
H가 전화를 했다. 전 직장 동료들끼리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고 했다. 나는 솔직히 말했다. "요즘 사람 만나기가 싫어. 못 나가겠어." 다른 핑계를 대면 날짜 맞추기를 할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 그래서 어떡하냐고 H는 말했다. 나는 냉정하게 답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다고.
자존감만 무너지지 않으면 무엇이든 버텨낼 수 있다. 우울증이 무서운 건 자존감이 바닥나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때다. 그런 면에서 나는 시퍼렇게 살아 있다. 그러므로 걱정하지 않는다. 불안, 허무, 슬픔이 요사이 내 주된 감정선이긴 하지만 매년 겪어 온 계절병이란 걸 잘 안다. 환절기에 찾아오는 심리적 감기 정도인 것이다.
나에게 11월의 우울은 이제 즐길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수십 년을 두고 찾아오는 손님인데 귀찮게만 여겨서야 되겠는가. 오히려 천방지축 날뛰는 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는 양약이라고 생각한다. 가벼운 우울은 감사하게 여길 만하다. 어쩌면 이 계절과도 잘 어울린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를' 싯귀를 명랑 쾌활한 목소리로 읊을 수는 없지 않은가.
열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안 됐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찬란한 단풍이나 순백의 눈이 없어서가 아니다. 11월의 정서를 느낄 기회를 앗겨서다. 낙엽이 지는 걸 보며 인생의 조락을 애절하게 가슴으로 품을 수 있는 귀한 경험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열대 나라에서 큰 사상이나 철학이 생겨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래서 11월의 우울을 나는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우리 존재의 근원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외면하려 해도 11월은 강제로 나를 그 미지의 영역으로 데려간다. 두렵고 불안하고 혼란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일 년의 한때, 이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보양식이 아닌가. 입에 쓴 음식이 때로는 별미가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