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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살이의꿈

살아진다 살아간다 살아낸다

샌. 2025. 11. 30. 10:03

여럿이 모인 자리 한편에서 P의 열띤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살아진다' '살아간다' '살아낸다'의 세 단어로 설명하고 있었다. 거리가 떨어져 있어 온전히 들을 수는 없었으나, 우리는 '살아진다'에서 '살아낸다'로 나아가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살아진다'가 피동적인 삶의 태도라면 '살아낸다'는 능동적인 삶의 태도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이끄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게 우리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독실한 개신교인인 P다운 말이었다.

 

P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기면서도 도리어 반대의 과정이 나이에 따른 순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중년기까지는 누구나 고군분투 살아내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년기가 되면 살아내기보다는 살아가는 것이고, 더 나이가 들면 살아지는 게 아닐까 싶어서다. 

 

그러고 보니 '살아진다'라는 말이 참 좋다. '살아낸다'가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면 '살아진다'는 부드럽게 들린다. 자연의 섭리에 따른, 흐르는 물처럼 구름처럼 살아가는 삶이다. 노년의 삶으로 이보다 더 적당한 말이 어디 있을까. 노자의 무위(無爲)도 다르지 않으리라. 

 

'살아진다'를 뇌다 보니 시나브로 '사라진다'로 들린다. '살아진다'가 자연스레 '사라진다'로 연결되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지다가 결국은 사라지는 존재들이다. '살아낸다' → '살아간다' ' →  살아진다' →  '사라진다'로 인간 삶의 과정을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P에게 드러내지 않았지만 내심으로 고맙게 생각했다. '살아진다' '살아간다' '살아낸다'의 세 단어의 의미가 씹을수록 깊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P처럼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고, 나처럼 받아들일 수도 있다. 어디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각자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단어들이다.

 

'살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숨을 쉬며 생명을 지니고 있다'로 나와 있다. 사전다운 무미건조한 설명이다. 여기에 색깔을 입히면 '살아진다'가 될 수도 있고 '살아간다'가 될 수도 있고 '살아낸다'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삶에 부여하는 의미가 바로 색깔이다. 현재 나는 무슨 색깔을 칠하며 살고 있을까. 세 단어를 오래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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