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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일상

일주일간 어머니를 보살피다

샌. 2025. 11. 4. 14:05

어머니 곁을 지키는 여동생이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관계로 일주일간 어머니를 보살피게 되었다. 10/28부터 11/3까지였다.

 

어머니는 수술 후 석 달이 지났지만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 보행기에 의지해 10여 분쯤 산책하는 정도다. 아흔다섯이라는 연세에 비하면 이마저도 대단하다고 하지만 자식 입장에서는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위기가 닥쳤을 때 인간의 심리 반응은 '분노 → 부정 → 타협 → 우울 → 수용'의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직 첫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얘기를 나눠보니 둘째에 의한 배신감이 가장 크다. 나도 이 상황이 너무 가슴 아프다. 당사자는 어머니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치유에 지장을 받고 있는지 짐작이나 할는지 모르겠다.

 

날씨가 좋으면 어머니의 걷기 운동에 동행한다. 아직은 불안해서 옆을 지켜야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하루 중 이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빨리 낫겠다는 어머니의 의지를 북돋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

 

 

어머니와 있으면 어린 아이를 대하는 것 같다. 투정이나 불만, 어리광이 아이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살살 달래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나도 짜증이 나면 타박을 하게 된다. 마찰이 생길 때는 주로 식사할 때다. 어머니는 입맛이 없다며 무조건 덜 먹고 안 먹겠다고 한다. 어린애와 똑같다. 밥만 또박또박 먹어줘도 얼마나 고마울 것인지.

 

 

셋째 날은 기어코 방앗간에 가서 고추를 빻았다. 어머니는 한 시간 내내 자리를 지켰다. 몸은 아파도 농사에 대한 집착은 버리지 못한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옛 국민학교 모교를 둘러보았다. 원래는 거무튀튀한 단층 건물이었는데 외형이 완전히 탈바꿈했다. 근사해진 외모에 비해 교정은 적막하다. 6학년 전체 학생수가 67명에 불과하다. 그것도 인근 학교와 통합한 결과다. 우리가 다닐 때는 한 학교에만 700명이었다. 드문드문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60여 년 전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어머니는 돌아와서 마늘 정리를 하셨다. 평생을 일에 묻혀 살다 보니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사는 게 지루해 죽겠다"가 입에 붙어 있다. 생의 지루함을 일로 잊어 왔지만, 일이 없어지거나 할 수 없게 된 다음에는 어떡할 것인가. 누구나 자신의 노년을 대비해야 할 것이다.

 

 

동네 산책길에 셀카를 찍었는데 나온 사진을 보고 어머니는 무척 만족스러워 하셨다. 두 노인의 얼굴이 매끈하게 나온 것은 오로지 카메라 소프트웨어 덕분인 것을. 

 

 

뒷 시간에는 토성 느티나무를 보러 갔다. 오일장을 오가던 어머니는 이 나무 아래서 쉬곤 했다. 그 옆에 작은 꼬맹이가 있었다. 고향에 오면 발길 닿는 곳, 눈길 가는 곳 모두에 얽힌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주로 책을 읽으면서 보낸다. 이번에는 소설 <나폴리 4부작> 1, 2권과 최진석 선생의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를 가지고 왔다. 책이 있으니 지루하지 않다. 나에게는 책만한 친구가 없다. 사람이 없어도 일거리가 없어도 유유자적 책과 더불어 놀 수 있다. 사람들은 묻는다. 심심해서 어떻게 지내느냐고. 나는 도리어 그런 질문이 의아하다. 

 

이곳 생활도 시설 좋은 리조트에 책을 싸들고 휴가를 왔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효도 흉내를 낼 수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여섯째 날, 바람이 세게 불어 어머니는 집안에 갇혔다. 나 홀로 마을 부근을 거닐었다. 

 

 

길에서 뱀 다섯 마리를 보았다. 11월이면 땅 속으로 들어갔을 터인데 아직 눈에 띈다는 건 날씨가 그만큼 따뜻하다는 뜻이다. 외부 온도에 민감한 뱀은 지구온난화의 한 지표라고 할 만하다. 

 

 

어머니의 장점은 뒷끝이 없는 것이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에 언짢은 반응이 나오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본인 스스로 잘 안다. 그만으로도 고맙다.

 

단점은 다정(多情)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따스하고 인자한 어머니 상이 아니다. 이때껏 자식에게 어떻게 지내느냐는 전화 한 통 받은 적이 없다. 이 점은 단점이기도 하고 장점이기도 하다. 따뜻한 사랑은 못 받았지만 대신 자식에게 뭘 요구하거나 귀찮게 하는 일이 없다. 성격이나 자존심이 강한 분이다. 자식 신세를 져야 하는 이 상황이 어머니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일곱째 날, 동네 친구분과 골목에서 만났다. 앞으로는 두 분이 함께 산책하는 걸로 약속시켰다. 자식 도움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둘 늘어난다. 

 

 

환자인 노인을 돌보며 함께 지내보니 기력을 많이 앗긴다. 특별히 힘든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감정 소모가 큰 탓이다. 얼핏 경험하고 있지만 간병은 감정 노동인 것 같다. 앞으로도 한 달에 일주일은 고향에 내려가서 동생의 부담을 덜어줘야겠다.

 

일흔 줄에 든 지 한참 되었는데 여전히 어머니와 장모님이 생존해 계신다. 이제는 내 몸 처신도 힘들어지는데 두 분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내 팔자이고 내 몫인 걸 어쩌겠는가. 잘 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도리,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팽개치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은 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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