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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기쁨

신선의 노래 / 허난설헌

샌. 2025. 12. 17. 10:13

영롱한 꽃 그림자 바둑판을 덮고

한낮의 소나무 아래 바둑을 두네

시냇가에 사는 흰 용을 내기 삼아

해 지면 그 몸 타고 신선 세계로 가리

 

玲瓏花影 覆瑤棋

日午松陰 落子遲

溪畔白龍 新賭得

夕陽騎出 向天池

 

- 신선의 노래(游仙詞) / 허난설헌(許蘭雪軒)

 

 

연말이 되자 바둑대회 결승이 잇달아 열리고 있다. 사흘 전에 강릉에서 제5회 난설헌배 여자바둑대회가 열렸는데 김은지 9단이 오유진 9단을 꺾고 4연패를 달성했다. 김은지는 바로 전 주에 열린 오청원배 세계 바둑대회에서는 최정 9단을 물리치고 정상에 오르면서 상금 1억 원을 받았다. 지금은 여자국수전 결승에서 최정과 대결하고 있다. 어제 1국에서는 난타전 끝에 불계승했다. 이번에도 이기면 올해에 다섯 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리게 된다. 바야흐로 여자바둑계에서는 김은지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2013년부터 작년까지는 최정의 독주 시대였다. 한 번도 랭킹 1위를 빼앗긴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김은지가 올라오더니 올해는 1위를 서로 주고받고 하고 있다. 후반부가 될 수록 힘의 균형이 김은지한테 기우는 느낌이다. 최정은 1996년생, 김은지는 2007년생이다. 흐르는 세월은 최정도 막을 수 없는가 보다. 최정은 지는 해고, 김은지는 떠오르는 해다.

 

오빠들이 바둑 두는 모습을 보며 난설헌은 바둑을 배우고 두기도 했을 것이다. 난설헌은 위와 같은 바둑 시도 남겼다. 그래서 난설헌배 바둑대회가 더욱 의미가 있어 보인다. 한복을 곱게 입고 바둑을 두는 두 기사를 보며 난설헌을 떠올렸다. 그러나 난설헌의 실제 삶은 녹록지 않았다. 그녀는 좌절과 고통을 이상향을 그리며 잊으려 했으리라. 이 시가 한없이 애처롭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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