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사기[60] 본문
하루는 황상이 문학하는 학자들을 초빙하려 하면서 말했다.
"나는 정치를 일으켜 요순을 본받으려 하는데 어떻겠소?"
급암이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속으로 욕심이 많으면서 겉으로만 인의를 베풀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야 어떻게 요와 순의 정치를 본받을 수 있겠습니까!"
황상은 아무 말 없이 화가 나서 낯빛이 바뀌더니 조회를 끝냈다. 공경은 모두 급암을 걱정했다. 황상이 조정에서 돌아와 좌우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급암의 우직함이 너무 심하다."
신하 가운데 급암을 꾸짖는 자가 있었는데 급암이 오히려 말했다.
"천자께서는 삼공과 구경을 두어 보필하는 신하로 삼았는데, 신하 된 자로서 어떻게 아첨하여 천자의 뜻만 따라 폐하를 옳지 못한 곳으로 빠지게 하겠소? 또 그런 지위에 있는 이상 자기 몸을 아낀다 하더라도 조정을 욕되게 해서야 되겠소."
- 사기(史記) 60, 급정열전(汲鄭列傳)
'급정열전'에는 한 무제 때 신하였던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가 나온다. 이중에서 급암은 청렴하면서 황제에게 직간하기를 서슴치 않았다. 위의 일화는 급암이 얼마나 거리낌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무제가 요순을 본받는 정치를 하고 싶다고 하자, 급암은 정색하며 대답한다. 속으로는 욕심이 많으면서 겉으로만 인의를 베풀려고 한다면서 황제의 정곡을 찌른다. 절대군주 시대에 신하가 이래도 무사했는지 걱정될 정도다.
급암은 호탕한 기질을 가졌으면서 행실은 올곧았다. 달콤한 말을 속삭이는 신하보다 귀에 거슬리는 급암이 필요하다는 것을 황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직지신(社稷之臣)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해서는 편견에 빠지기 쉽다. 더구나 지도자가 그래서는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급암과 정당시는 밉보여서 한직으로 밀려났고 권력에서 멀어졌을 때는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고 가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함에도 자신들의 이익보다는 나라가 나갈 길을 우선 했다. 사마천이 당시의 순리(循吏)로 둘을 꼽은 듯하다. 사마천은 둘을 소개하면서 세상 인심의 야속함을 이렇게 적었다. 아마 자신의 신세를 대변하려는 마음이 있었으리라.
"급암이나 정당시 같은 현명한 사람도 세력이 있을 때는 빈객이 열 배로 늘었다가 세력을 잃으니 그렇지 못했으니 하물며 보통 사람임에랴? 적공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 내가 정위가 되었을 때는 빈객이 문 앞에 가득 찼지만, 파면되자 문 밖에 참새 잡는 그물을 쳐도 될 정도였다. 내가 다시 정위가 되자 빈객들은 예전처럼 모여들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문에 '한 번 죽고 한 번 사는데 사귀는 정을 알고,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유함으로써 사귀는 모습을 알며, 한 번 귀했다가 한 번 천해짐으로써 사귀는 정을 볼 수 있다'라고 크게 써 붙였다.' 급암이나 정당시에게도 이러한 말이 해당된다니 슬픈 일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