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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나침반

사기[62]

샌. 2026. 1. 9. 11:13

질도(郅都)는 사람됨이 용감하고 기개와 힘이 있으며 공정하고 청렴했다. 그는 사사로운 편지를 받으면 뜯어 보지도 않고, 남이 보내온 선물도 받는 법이 없으며, 남의 청탁이나 의뢰하는 말을 들어준 적이 없었다. 그는 늘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이미 어버이를 등지고 벼슬살이하는 이상 이 몸은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고 절개를 지키다가 죽을 뿐이니 끝내 처자식조차 돌보지 않을 것이다."

질도는 중위로 승진하였다. 승상 조후는 매우 고귀한 신분이었으나 질도는 그를 만날 때마다 읍할 뿐이었다. 당시 백성은 순박하여 죄를 받을까 두려워하여 스스로 조심했으나 질도만은 엄하고 가혹한 법을 제일로 여겨 법을 적용할 때는 귀족이나 외척도 피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후나 황족들은 질도를 볼 때마다 곁눈질로 보고 보라매(융통성이 없는 가혹한 관리라는 뜻)라고 불렀다.

 

- 사기(史記) 62, 혹리열전(酷吏列傳)

 

 

순리(循吏)가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면서 사람을 우선하는 인자한 관리인데 비해, 혹리(酷吏)는 법을 가혹하게 집행해서 백성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관리다. 혹리가 사익을 취하고 부정부패를 저지르면 탐관오리가 된다. 사마천은 이 편에서 자신과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혹리 열 명을 소개한다. 그렇다고 혹리가 전부 나쁜 관리란 말은 아니다. 혹리 중에서도 청렴결백하며 권력에 아부하지 않은 관리가 있었다. 다만 법을 지나치게 엄격히 집행하여 원성을 들었다.

 

질도는 효경제 때 중랑장 등 여러 직책을 맡은 관리다. 질도가 황제를 따라 사냥터인 상림원에 간 적이 있었다. 황제의 애첩인 가희가

변소에 갔을 때 멧돼지가 변소로 뛰어들었다. 황제가 질도에게 그녀를 구해 주도록 눈짓을 했으나 질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황제가 몸소 무기를 들고 나아가려 하자 질도가 막으며 말했다.

"희첩 한 명을 잃으면 또 다른 희첩을 얻으면 됩니다. 천하에 어찌 가희 같은 여자가 부족하겠습니까? 폐하께서 만일 스스로를 가볍게 여기신다면 종묘나 태후는 어떻게 합니까?"

질도가 제남군 태수로 있을 때 아무도 손을 못 대던 그 지역의 토호 세력을 엄한 법 적용으로 척결했다. 그 뒤로 제남군에는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 가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관리로서의 처신이나 사람됨이 이러했다.

 

질도는 타인에게 적용한 잣대를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했다. 공정 청렴했으며 사리사욕을 취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질도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황실에 비위를 맞추지 못하는 질도가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원칙을 지키다가 태후의 분노를 산 질도는 결국 목이 베이고 말았다. '절개를 지키다가 죽을 뿐, 처자식조차 돌보지 않겠다'는 결의가 서릿발 같다.

 

겉으로는 법과 원칙을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법과 원칙을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 이용해 먹는 인간들이 많다. 권력을 빌미로 남모르게 뇌물을 받아먹다가 들통나서 패가망신하기도 한다. 근자에 들리는 뉴스도 그런 인간들의 무지몽매와 욕심을 보여준다. 다 허망한 짓거리가 아니겠는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을까. 우리나라 관리들이 질도의 반의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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