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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나침반

사기[61]

샌. 2025. 12. 26. 11:41

신공(申公)은 노나라 사람이다. 고조가 노나라를 지날 때, 신공은 제자로써 스승을 따라 노나라 남궁에서 고조를 알현했다. 여 태후 때에 신공은 장안으로 유학 와서 유영과 함께 같은 스승을 모셨다. 얼마 뒤에 유영이 초나라 왕이 되자 신공을 태자 유무의 스승으로 삼았다. 그렇지만 유무는 학문을 좋아하지 않아 신공을 미워했다. 왕 유영이 죽자 유무가 초나라 왕으로 즉위하자 신공을 포승줄에 묶어 죄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신공을 이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노나라로 돌아와 집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평생 문밖에 나오지 않았고 빈객의 방문도 사절했다. 다만 노나라 공왕이 부를 때에만 갔다. 제자들 중에는 먼 곳에서 찾아와 수업을 받는 자들이 100여 명이나 되었다.

 

- 사기(史記) 61, 유림열전(儒林列傳)

 

 

사마천은 유림열전에서 공자로부터 내려온 유학의 전승 과정을 보여준다. 공자는 주나라의 예악을 회복하기 위해 애썼고, 육경을 편찬했다. 각지로 흩어진 공자의 제자들이 유학을 발전시켰는데, 진시황의 분서갱유 속에서도 명맥을 이어갔다. 제자백가의 난세에서도 살아남은 것이다. 한나라가 들어서며 유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음지에 있던 유학자들이 궁정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림열전에는 수십 명의 유학자가 나오는데 대부분이 한대의 학자들이다.

 

여기 나오는 신공은 그런 유학자들 중 한 명이다. 한나라 초기에 유학자가 온전한 대우를 받지 못할 때 이야기다. 신공은 초나라 태자의 스승이었으나 학문을 싫어하는 태자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태자가 왕이 되자 신공은 죄인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신공은 고향으로 돌아와 두문불출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당시에는 이런 유학자가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음지에서 제자들을 양성하여 학맥을 잇게 했고 훗날 유학이 번성하는 토대를 만들었다. 공자에서 시작된 유학은 신공 같은 학자들에 의해 중국이라는 토양 속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사마천이 기록하지 못한 알려지지 않은 유학자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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