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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샌. 2025. 12. 22. 10:44

사진작가인 김희중(에드워드 김, 1940~2019) 선생의 사진집 겸 자서전이다. 선생의 작품이나 일생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나 이 책을 읽으며 대단한 분이었다는 걸 재삼 확인했다. 꽤 되었지만 선생의 에세이집인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를 읽었을 때의 감동이 되살아났다. 선생의 사진에서는 인간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느껴져서 좋다.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선생은 고교 재학 시절에 사진전에서 특상을 받고 전시회도 열었던 사진에 재능을 타고난 분이었다. 일찍 미국 유학길에 올라 포토저널리즘을 전공하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편집장으로도 활동한 세계적 사진가였다. 1970년대에 최초로 북한을 취재한 걸로도 유명하다. 이 책에서는 카메라를 접하게 된 때부터 한국으로 돌아와 일하다가 돌아가시기까지의 과정을 자신이 찍은 사진과 함께 설명한다. 한 편의 인간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선생의 사진에서 인상적인 작품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1958년 작인 '신작로 따라 나들이'다. 고등학생일 때 찍은 사진이다.

 

 

책에는 이 사진을 찍은 당시 상황이 잘 설명되어 있다. 어느 일요일 무료하게 집에 있다가 날씨가 좋아서 카메라를 들고 교외로 나갔다고 한다. 안양을 거쳐 수원까지 가서 사진을 찍다가 쉬고 있는데 신작로에 흰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들이 걸어 가더란다. 달려가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마침 세워져 있는 트럭이 있어 적재함에 올라가 구도가 좋은 이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내가 이 사진에 애틋한 감회를 느끼는 것은 미루나무가 늘어선 신작로 풍경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때 고향 집 앞에는 사진과 같은 신작로가 8km나 뻗어 있었다. 동네 밖에 나서면 왼쪽에서 오른쪽까지 180도로 펼쳐진 신작로였다. 그 길을 따라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학교를 오가면서 쌓인 많은 추억이 신작로와 연관되어 있다. 이 사진은 60여 년 전으로 돌아가서 애틋하게 신작로와 노인들을 바라보게 한다.

 

이 책 제목으로 쓰인 '집으로 가는 길'도 비슷한 사진이다. 1957년에 평택에서 찍은 것으로 아낙들이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5, 60년대에는 우리나라 어디나 이런 신작로가 있었다. 바람이 불면 미루나무 잎들의 차르르 웃는 소리가 명랑했고, 가을이면 길 따라 코스모스가 총천연색으로 빛났다. 가끔 꼬리에 먼지를 잔뜩 달고 차가 지나갔는데 정류장이 따로 없었고 손만 들면 세워줬고 내리고 싶은 데서 내렸다. 신작로는 아이들의 쫓고 쫓기는 놀이터이기도 했다. 중학생이었을 때는 이 길을 따라 덜컹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왕복 20km가 되는 거리였다. 소나기가 쏟아지던 날, 내리막길을 비에 흠뻑 맞으며 내달렸던 시원한 기억도 난다. 내 유소년 시절은 신작로와 미루나무를 빼고 연상할 수 없다.

 

선생의 사진을 보면서 우리가 살아온 지난 반세기를 따스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이 책의 부제가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이다. 작가의 열정의 결과물인, 인간과 삶의 온기가 느껴져서 참 좋은 사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