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본문

읽고본느낌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샌. 2026. 1. 5. 10:52

사흘간 전주에 있는 동안 읽은 두 권의 책이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최은영 작가의 단편집으로 표제작을 비롯해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작가가 여성의 삶에 대해 관심이 높다는 것을 이 책에서도 확인한다. 그것은 약자의 편에 서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평화로운 풍경 속에 도사리고 있는 차별과 폭력을 작가는 담담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일곱 편 중에서는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답신'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이 주목된다. 등장하는 인물들에 모두 애틋한 연민을 느낀다. 여성이 종속적인 위치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갈 환경과 자의식에 대해 작가는 묻는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에서는 딸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기남의 처지가 안타깝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어린 시절, 화해하지 못하는 자매, 남편에게 맞서지 못하며 살았던 시간이 기남은 부끄러웠다. 그런데 '부끄러워도 돼요"라고 말하는 손주한테서 따스한 위로를 받는다. 

 

"마이클은 다정하구나."

"맞아요. 엄마가 그랬어요. 마이클은 너무 다정해. 한국 할머니처럼."

"정말?"

"근데 너무 다정하면 안 된대요."

마이클이 잠시 기남을 보다 말을 이었다.

"너무 다정한 건 나쁜 거래요."

따뜻한 통증이 기남의 등과 배에 퍼져나갔다.

 

<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는 영국의 물리학자인 짐 알칼릴리가 쓴 책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무엇으로 되어 있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려주는 물리학을 통해 자연의 경이를 음미하도록 도와준다. 제목 그대로 지은이는 정말 물리학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라고 느끼도록 열정이 가득 들어있는 책이다.

 

실재와 관념, 결정론과 무작위성 등에 대한 논쟁은 양자역학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인다. 양자역학이 단순한 수학 도구인지, 아니면 우주 본질을 말해주는지는 좀 더 시간이 지나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현재의 이론을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AI와 양자컴퓨터가 결합하면 어떤 돌파구가 열리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 책은 양자역학과 상대론을 두 축으로 물리학의 궁극이론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이 세계를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 재미있게 쓰여 있다. 물리학은 객관적 실재로서의 진리를 찾아가는 탐구 과정이다. 그러므로 의심하고 검증하며 현재의 진리가 진리가 아님을 믿으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과학이 진리를 추구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과학자들이 사물의 궁극적 본성에, 저 밖에서 발견되어 이해되기를 기다리는 객관적 실재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 끝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책에는 다중우주론에 대한 언급이 짧게 나오지만 나에게는 상당히 끌리는 이론이다. 왜 우리 우주가 이런 기묘한 상수들로 구성되어 물질과 생명이 만들어져 있는지를 설명하자면 다중우주론 외에 합리적인 설명이 없는 것 같다. 현재의 과학 기술로 검증할 방법은 없겠지만 우리가 '유일한' 빅뱅의 결과라고 자신할 수도 없지 않을까. 책의 끝 부분이다.

 

"인간의 조건은 측정 불가능할 정도로 풍부합니다. 우리는 미술, 시, 음악을 발명했습니다. 종교도 정치체계도 창조했습니다. 한낱 수학공식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풍부하고 복잡한 사회와 문화와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우리 몸속의 원자가 어디서 형성됐는지,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우주에 대한 모든 '왜'와 '어떻게'를 알고자 한다면, 물리학이야말로 실재의 진정한 이해로 가는 길입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우리 세상과 운명을 빚어낼 수 있습니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차의 꿈  (0) 2026.01.13
완전한 행복  (0) 2026.01.11
자연에 이름 붙이기  (1) 2025.12.28
집으로 가는 길  (0) 2025.12.22
하얼빈  (0) 2025.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