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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본문

읽고본느낌

완전한 행복

샌. 2026. 1. 11. 12:17

내용을 전혀 모른 채 선입견 없이 소설을 읽을 때가 있다. 이 소설도 그랬다. '완전한 행복'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 따스한 내용일 것이라 지레짐작을 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소설 초반에서 유나가 이렇게 말한다.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멋있는 말이라 여기고 메모장에 옮겨 적었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아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완전한 행복>은 피비린내 나는 스릴러 소설이다. 작가가 <7년의 밤>을 쓴 정유정임을 깜빡했다.

 

이 소설은 유나라는 극단적인 나르시시스트가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파멸시키는 이야기다. 인간은 누구나 나르시시스트적 경향이 있다. 그래야 이 험한 세상을 버텨내며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화의 산물로 보이는 자기애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좋지만, 너무 과해서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되면 문제가 생긴다. 소설의 유나는 이런 병리적 나르시시스트면서 사이코패스다. 자기중심적으로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고 자존심이 하늘을 찌른다. 정작 자아는 텅 비어 있어 위험한 존재다. 내면의 결핍을 외부 환경을 조종함으로써 자기 손아귀에 넣으려 한다. 겉으로 보면 매력적인 인물이나 여기에 포획되면 삶이 무너진다.

 

어릴 때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유나는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맡겨진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억울함과 언니인 지유에 대한 원망이 뼛속 깊이 사무친다. 소설에 나오는 유나의 심성이 황폐화하는 배경이다. 이후 유나는 자신을 버린 이들을 제거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들이 없어져야 자신이 행복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성격장애가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유나는 극단적 경우라 하더라도 요사이 아이들은 다소간 이런 성향으로 길들여진다고 작가는 염려한다. 책 뒤에 나오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언제부턴가 사회와 시대로부터 읽히는 수상쩍은 징후가 있었다. 자기애와 자존감, 행복에 대한 강박증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애와 자존감은 삶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미덕이다. 다만 온 세상이 '너는 특별한 존재'라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개인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에서 고유성을 존중받아야 한다. 그와 함께 누구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 또한 인정해야 마땅하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 믿는 순간, 개인은 고유한 인간이 아닌 위험한 나르시시스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없으면서 자존심만 하늘을 찌르는 인간을 상상해 보라. 이런 인간들이 다수가 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할까. 요사이는 자녀를 하나만 낳고 왕자나 공주처럼 떠받들어 키운다. 그런 아이들은 자신이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하고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소설의 유나처럼 여기에 특별한 경험이 합치면 악인이 될 소지가 충분히 있다. 작가는 이런 시대적 위험을 이 소설로 경고하려 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