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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본느낌

자연에 이름 붙이기

샌. 2025. 12. 28. 11:01

올해 읽은 책 중에 인상적인 것을 고르라면 문학 분야에서는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를 비롯한 몇 단편들과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이었다. 비문학 분야에서는 최근에 읽어서인지 모르지만 룰루 밀러가 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밀러가 이 책을 쓰게 된 영감을 <자연에 이름 붙이기>에서 얻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어떤 책인지 궁금하던 차에 이번에 읽게 되었다. 작가의 이름이 '케럴 계숙 윤'이어서 더 호기심이 생겼다.

 

케럴 계숙 윤(Carol Kaesuk Yoon)은 한국계 아버지와 일본계 어머니를 둔 과학자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이다. 예일대학교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코넬대학교에서 진화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경력에 나와 있다. 전공이 분류학인데 <자연에 이름 붙이기>는 분류학사를 설명하면서 인간이 자연의 생물 세계를 이해하고 질서를 지으려 한 과정, 그리고 우리가 자연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흥미진진하면서 감동적으로 설명한다.

 

이 책에서 중심 단어를 꼽으라면 '움벨트(Umwelt)'이다. 움벨트는 '지각된 세계'를 뜻하는 독일어로 한 동물이 감각으로 인지한 세계를 의미한다. 각 종이 지닌 특수한 감각 및 인지 능력에 의해 키워지고, 그 종에게 결핍된 부분에 의해 제한된 결과 그 종이 특유하게 지니게 된 시각이다. 인간은 인간만의 자연을 보는 선천적인 시각이 있는데, 이것이 인간의 움벨트다. 움벨트 역시 생존을 위한 진화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뇌의 특정 부분이 손상되면 움벨트가 마비되고 생물을 구분하는 능력을 잃는다. 이런 환자들과 민속분류학의 연구를 통해 작가는 인류 공통의 움벨트가 있음을 보여준다. 유아들의 생물에 대한 선천적인 호기심이나 소년기에 나타나는 공룡에 대한 관심이 - 분류하기와 명명 - 움벨트의 발현인 것이다. 움벨트가 직관적이며 자연친화적이지만 주관적이고 비과학적이기도 하다.

 

책 전반부에는 칼 린나이우스(우리가 교과서에서 린네로 배운)와 다윈이 나오는데 이들이 자연을 본 비전이 움벨트였다. 자연에 체계를 세우고 생명의 계보를 밝히려 한 배경에는 인간이 감각하는 자연의 질서에 대한 움벨트적 시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중반부터 수리분류학, 분자분류학, 분기학이 등장하면서 사태가 일변했다. 전통 분류학이 도전을 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충격적인 선언까지 나왔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누구나 어리둥절할 것이다. 분기학자는 연어, 폐어, 소를 예로 들며  가까운 종은 어느 것인지 묻는다. 누구나 물고기에 속하는 연어와 폐어가 닮았고, 소는 다르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외형이 아니라 내부 구조와 기능을 보면 폐어와 소가 더 가깝다는 게 분기학자의 주장이다. 공통 조상에서 연어와 먼저 분기되었고, 그 뒤에 폐어, 소 순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 인지하는 어류는 없다. 어류를 말하려면 소까지 넣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컴퓨터와 숫자, DNA 분석이 도입되면서 차가운 과학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 결과 생물 분류는 정확해졌을지 몰라도 인간을 자연과 분리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분류학만은 아니겠지만 여러 현상이 복합적으로 어울려 현대과학은 인간을 자연과 멀어지게 하고 있다. 현대인은 생물 대신 상품과 로고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소비하는 인간에서 벗어나 자연과 호흡하는 따스한 인간이 되기 위해 움벨트를 회복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과학자들만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다고 믿어온 결과, 우리는 생명의 세계를 우리 자신의 시각으로 볼 수 없게 되고 생명의 언어를 말할 수 없게 되었으며, 생명이 있는 존재들과 단절되고 그들에게서 관심을 거둔 채 쇼핑몰만 헤매다니고 있다. 다들 뭔가에 너무 정신이 팔려 있어서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멸종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지경이 됐다. 우리에겐 우리 스스로 해야 할 일이 있다. 죽어가는 우리의 세계를 되살리고 구하기를, 그 세계와 우리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바란다면, 그 세계에 대한 우리의 비전에 작은 생명을 다시 불어넣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은 물고기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름을 붙이는 건 구분하고 분류하는 행위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피아를 분별하고 무엇이 이롭고 해로운지 나눌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름에 갇히면 망상의 포로가 된다. 본질을 보지 못하고 껍질에 매달리게 된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라는 제목을 보면서 나는 <도덕경>의 첫 구절이 떠올랐다. "도가도비상명 명가명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생물학자들은 생물 종에 이름을 붙이고 진화상 계보를 밝히기 위해 계통수를 그린다. 하지만 그 이름이며 그 곁가지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자연을 보는 냉철한 과학자의 시선이 아니라 우리 선조가 자연 속에서 살며 가졌던 마음으로 돌아가자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 할머니들이 뜨거운 물을 버릴 때 "워 워"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들에게 경고를 보내던 그런 마음 말이다. 어류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무슨 대수란 말인가. 소중한 것은 가까이 사는 생물과 교감을 나누면서 자연을 사랑하고 관심을 가지는 마음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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