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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향기

15년 친구, 제라늄

샌. 2026. 5. 3. 18:38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집에 들였으니 15년을 함께 한 친구, 제라늄이다. 초기에는 주기적으로 분갈이를 하고 잎도 정리해 주고 정성껏 관리했으나 언제부턴가는 거의 방치하기에 이르렀다. 분갈이는 고사하고 물 주는 것도 잊어버려 고사 직전까지 가서야 귀찮은 듯 호스를 집어든다. 그럼에도 쉼 없이 꽃을 피운다. 그 끈질김이 고맙고 대단하다. 어느 친구가 이처럼 지극한 일편단심을 보여줄까.

 

'무궁화(無窮花)'라는 말은 그 누구보다도 제라늄에게 어울린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꽃을 보여준다. 더우나 추우나 밝으나 어두우나 매일 새로운 꽃봉오리를 터뜨린다. 누가 쳐다보나 쳐다보지 않으나 늘 그 자리에서 환한 미소를 짓는다. 이런 친구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으랴.

 

유럽에 가 보면 집 창틀에 예쁜 꽃들이 핀 화분이 놓여 있다. 주로 제라늄이다. 서양 사람들 꽃 사랑이 대단하다 싶었는데, 실은 저 혼자서 잘 자라고 꽃을 피우는 제라늄의 본성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는 것이다. 존경하고픈 생명력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우리 집 제라늄도 마찬가지다.

 

의자에 앉아 밖을 내다보면 항상 제라늄 꽃이 눈에 들어온다. 있는 듯 없는 듯 늘 그 자리를 지킨다. 15년 동안 제라늄만큼 나와 눈을 맞춘 친구도 없으리라. 내 쪽에서 따스한 정을 준 적은 없는데 이 친구는 늘 화사하게 웃는다. 일방적인 사랑이다. 미안하고 미안할 뿐이다.

 

이 친구가 언제까지 버텨줄지 모르겠다. 제라늄도 수명이 있겠지. 인터넷에 '제라늄 수명'이라고 입력해 보니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제라늄은 관리가 잘 되면 20년 이상 살 수 있으며, 심지어 40년 이상까지도 가능하다. 다만 실제 수명은 빛, 물, 배수, 통풍 등의 관리에 크게 좌우된다."

이 기준이라면 우리 집 제라늄은 노년기에 접어든 셈이다. 무관심으로 방치한 것치고는 오래 생존한 편이다. 반면에 무관심한 것이 도리어 제라늄의 자생력을 키워준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든다. 네 생이 다할 때까지 함께 해 보자꾸나. 고마워, 제라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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