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죽은 다음 본문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다. 장례지도사이기도 한 희정 작가가 썼다. 작가의 실제 경험과 함께 죽음과 장례에 관계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죽음의 의미를 들여다본다. 죽음이란 '있다가 없어지는 일'이라는 명쾌한 정의로 시작한다.
죽은 다음의 절차는 복잡하다. 시신 검안, 사망진단서 발급, 빈소 마련, 부고 알림, 문상객 맞이, 소렴과 대렴, 입관, 발인, 운구, 매장및 화장, 빈소 정리, 유골함 봉안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진행할 수 있다. <죽은 다음>은 이런 절차를 차례대로 안내해 준다. 그렇다고 단순한 장례 절차에 대한 안내서는 아니다.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며 삶의 의미를 찾게 한다.
죽음을 마주하고 고인을 보내는 데 대한 질문은 곧 삶에 대한 질문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장례를 치르는 진정한 뜻은 고인에 대한 애도일 것이다. 절차에 신경 쓰다 보면 뜻을 놓치고 허례에 빠지기 쉽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애도가 되는 것이다. 어느 장례지도사의 이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사람들이 사는 데 급급해서 정작 사는 걸 모르고 있는 느낌이에요. 사람들이 정말로 살아 있는 것처럼 살지 않고 꿈꾸듯이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심리학에서 페르소나라고 하잖아요. 그 가면이 나인 줄 알고 휘둘려 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아요. 장례 문화만 봐도 사별자가 이거를 진짜로 하고 있는 게 아닌 거예요. 울어야 할 것 같아서 울고, 사람들한테 보이는 거를 신경 쓰다 보니까 진짜 슬퍼할 수 없는 거예요."
책을 읽으며 젊었을 때 맏상제로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던 때가 떠올랐다. 옛날 전통식 장례였는데 형식을 따라가느라 너무 힘들었다. 형식적인 곡을 하느라 아버지에 대한 애도는 사라져버렸다. 조문객이 빠져나가고 조용한 밤중이 되어서야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아픔이 살아났다. 현대 장례식장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요사이 대안적 장례 문화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가족장 같은 작은 장례가 많아지고 있다. 작가는 장례 형식보다 추모식을 강조한다. 추모식의 핵심을 두 가지다. 하나는, 떠나보내는 사람을 기억하는 자리. 둘은, 상실감과 슬픔을 표현하는 시간이다. 정해진 틀은 없지만 가족 중심으로 진정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에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에 소개된 한겨레두레공제조합 같은 단체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작가는 빈부 차이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 문제도 다룬다. 돈에 따라 장례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좋은 집에 살던 사람이 명당에 묻히고, 가난한 사람은 초라하게 떠난다. 번듯하게 장사 지낸 집 자손들이 명당에 묘를 썼다는 이유로 대대손손 복을 누리는 건 아무래도 경우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세상사 이치라면 이 세상이 도리에 맞지 않다. 무연고자의 장례를 대신 치러주며 작가는 기원한다. "평온하세요. 아니, 평등하시길."
<죽은 다음>의 끝에 나오는 글을 옮긴다.
이 말을 좋아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이 말을 떠올리면 왠지 슬픔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의 옆에서 뽀얀 쌀밥을 한 숟가락 퍼담아 건네은 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먹고 힘내라는 마음, 힘내어서 살건, 힘내어서 싸우건, 힘내어 애도하건, 우선을 힘을 내야 한다. 취재차 만난 어떤 이는 '생때같다'고밖에 표현하지 못할 자녀를 중대재해로 잃었다. 빈소에 우두커니 앉아 몇 날 며칠을 보내다가 눈앞에 놓인 육개장에 숟가락을 떠 넣을 때, "자식을 먼저 보내도 밥은 들어간다. 사는 게 다 그렇다"라고 누군가 흘려 하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 후로 그는 밥을 먹지 못했다. 나는 이따금 그 일을 생각한다. 환청이었을까.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런 말을 한 사람 같은 건 없다고 믿고 싶었다. 대신 나는 누군가 쌀밥을 한 숟가락 가득 퍼서 그의 입에 가져가는 장면을 그린다. 그런 사람이 우리 곁에 있다고 믿는다. 산 사람은 그래서 산다.
산 사람은 살라는 말은 죽은 사람은 잊고 상처는 묻고 기억은 지우라는 말이 아니다. 남은 사람들은 살아갈 일을 생각해야 한다. 그건 내일 밥을 먹고 모레 잠을 자는 일이 아니다. 어떤 세상에서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일이다. 내 자식의 죽음 같은 일이 반복되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 그 마음으로 산다.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한강 작가는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지' 물었다. 우리는 이 답을 안다. 언제나 죽은 이는 산 자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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