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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본느낌

모비 딕

샌. 2026. 5. 19. 07:58

사놓은 지가 여러 달 되었다. 70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이어서 자꾸 미루다가 이번에야 읽게 되었다. 젊었을 때도 몇 번 읽을 시도를 했지만 손에 잡았다가는 놓은 적이 있었다. 그때 책 제목은 '흰 고래'를 뜻하는 <백경(白鯨)>이었다.

 

<모비 딕(Moby Dick)>은 허먼 멜빌이 19세기 중반에 쓴 소설이다. 고래를 쫓다가 파멸에 이르는 이 소설의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강렬한 힘이 있다. 에이헤브 선장의 모비 딕에 대해 복수하려는 집착이 거친 바다와 만나면서 장렬한 서사를 만들어낸다. 세 명의 항해사가 나오는데 그중에서 스타벅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커피 전문점인 '스타벅스'는 여기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소설의 화자는 이슈메일인데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증언자다. 그리고 야만인 출신의 키퀘크가 있다. 각 인물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만하다.

 

소설에는 고래에 관한 풍부한 지식이 나온다. 과거 포경 산업이 어떠했는지도 알 수 있다. 그때는 오직 고래 기름을 얻기 위해 먼바다로 나가 고래를 사냥했다. 석유가 나오기 전이라 불을 밝히는 고래 기름의 수요는 엄청났다. 그중에서도 향유고래가 제일 인기 있었다. 기름을 가장 많이 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비 딕은 거대한 흰색 향유고래다. 에이헤브는 모비 딕에게 다리를 잃은 뒤 광기에 가까운 원한을 품게 된다. 그의 외침이다.

"나를 파괴하여 영원히 의족에 의지하는 가엾은 신세로 만든 건 바로 그 가증스러운 흰 고래였다. 나는 희망봉을 돌고 혼 곶을 돌고 노르웨이 앞바다의 소용돌이를 돌고 지옥의 불길을 돌아서라도 놈을 추적하겠다. 그놈을 잡기 전에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대륙의 양쪽에서, 지구 곳곳에서 그놈의 흰 고래를 추적하는 것, 그놈이 검은 피를 내뿜고 지느러미를 맥없이 늘어뜨릴 때까지 추적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항해하는 목적이다."

 

한 사람의 원한 때문에 결국 모든 선원이 희생되고 만다. 스타벅이 제동을 걸지만 한계가 있었다. 작가는 에이헤브의 욕망을 통해 당시 제국주의/기독교를 비판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반면 야만인이라 부르고 무시하는 키퀘크에게는 고결한 성품을 부여하고 있다. 포경선에 타긴 했지만 자연과 생명을 존중할 줄 안다. 작가가 대비시킨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비 딕>을 읽으며 고래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영상과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내가 유튜브에 들어가면 고래 항목이 제일 많이 뜬다. 미국 어느 곳에서는 바다로 고래를 보러 가는 투어가 있는 모양이다. 귀신고래를 손으로 만져볼 수도 있다. 참 멋진 경험이 될 것 같다. 이 소설을 읽다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보게 되었다. 이제 향유고래, 귀신고래, 대왕고래, 혹등고래, 범고래, 돌고래, 벨루가 정도는 구별할 수 있다. 제주도 남쪽 바다 연안에는 남방큰돌고래가 살고 있다는데 운이 좋으면 볼 수도 있다고 한다. 제주도 여행을 간다면 유의해야겠다.

 

내가 읽은 책은 작가정신 출판사에서 펴낸 <모비 딕>이었다. 김석희 선생이 옮겼는데 유려한 문체로 번역이 잘 되어서 좋았다. 소설가이시기도 하기에 문장이 자연스러웠다. 자세한 역주도 도움이 되었다. <모비 딕>은 'Call me Ishmael'로 시작한다. 이걸 직역하면 '나를 이슈메일이라 불러달라'가 될 것이다. 그런데 김 선생은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 두자'로 옮겼다. 느낌에서 미묘한 차이가 난다. 당연히 뒤쪽이 훨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