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단풍은 낙제점이다. 비가 잦았던 탓인지 예년에 비해 영 시원찮다. 처제네와 강원도로 단풍 여행을 떠났지만 제대로 된 단풍은 구경하지 못했다. 아직 철이 약간 이른 탓도 있지만 단풍이 든 나무도 색깔이 선명치 못하고 한편에서는 말라버린다.
먼저 설악산 십이선녀탕에 들렀다. 여기는 작년에 왔다가 출입 시간인 12시가 지났다고 입장을 시켜 주지 않아 발길을 돌렸던 곳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통제를 안 한다. 자기들 멋대로 오락가락이다.
십이선녀탕 초입부는 초록 세상이고 한참을 올라가야 가끔 단풍을 만난다. 그마저도 차마 탄성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칙칙하다.
이 정도면 설악의 단풍이라 칭하기 어렵다.
남자 둘은 응봉폭포까지 걸었다. 두 여자가 뒤처졌기 때문에 깊게 들어갈 수는 없었다. 십이선녀탕 계곡에서 제일 유명한 용탕폭포(복숭아탕)까지도 염두에 뒀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초반부라 그런지 계곡길은 평탄하고 걷기 좋았다. 단풍의 아쉬움이 계속 남았지만...
켄싱턴 설악밸리에 짐을 풀고 속초관광수산시장에 나가 회를 포장해 왔다. 남포동 씨앗호떡집은 줄이 길어 한참을 대기했다. 저녁 식사 때는 다음날을 위해 소주 반 병에서 참았다.
일어나자마자 숙소에서 화암사까지의 산책로를 걸었다. 이 길도 단풍이 들면 참 예쁠 것 같은데 아직 때가 아니었다. 더구나 날은 잔뜩 흐렸고, 중간에 비를 만났다.
비를 맞으며 계곡에 흐르는 물을 긴 시간 촬영을 해 보았다.
남쪽으로 한 시간을 달려 오대산 소금강을 찾았다. 이곳 역시 한두 주는 지나야 제대로 물이 들 것 같다.
금강사(金剛寺).
위로 올라갈수록 소금강 계곡의 진면목이 나타난다. 숲은 아직 초록이 우세하다. 여기도 최소한 만물상까지는 가봐야 하는데 밑에서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일찍 발걸음을 돌렸다.
우리가 걸음한 중에서는 식당암(食堂岩) 주변 경치가 좋았다. 식당암은 신라말 마의태자가 군사들과 함께 식사하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율곡 이이도 이곳을 찬탄하며 식당암을 비선암(秘仙巖), 바위 아래 못을 경담(鏡潭), 골짜기를 천유(天遊)라고 불렀다고 한다.
짧게 소금강을 걸은 뒤에는 진고개를 넘어서 진부로 갔다. '진고개 신사'라는 유행가의 '진고개'가 여기인지 설왕설래했는데, 처제가 인터넷 검색을 하더니 서울에도 '진고개'가 있다고 한다. '진'은 비가 오면 땅이 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진고개 휴게소에서 잠시 쉬다.
오랜만에 진부 부일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했다. 돌아보니 30년 인연이 있는 식당이다.
일박으로 넷이서 떠난 여행이었는데 단풍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단풍만이겠는가, 무엇에건 적기를 맞추는 일이 쉽지 않다. 소위 타이밍이다. 같은 만남이라도 때가 언제냐에 따라 선연이 되기도 하고 악연이 되기도 한다. 현지에서는 아쉬움이 컸는데 그 또한 긴 여정의 한 인연일 뿐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일이 있고, 저절로 찾아오는 인연이 있다. 이를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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