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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O[49]

마음을 비운 사람, 이 세상에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믿는 사람. 그런 사람이 리더가 되면 이 사람의 생각도 저 사람의 느낌도 모두 받아들인답니다. 타오와 함께 하는 리더가 말합니다. "좋은 것은 좋아서 좋고, 나쁜 것은 나빠서 좋습니다. 그것이 타오의 참된 좋음이지요. 정직한 사람은 정직해서 믿음직하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정직하지 못해서 믿음직합니다. 그것이 타오의 참된 믿음이지요." 이렇게 말하는 타오와 함께 하는 리더의 몸은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없으며, 그의 마음은 세상에 없지만 세상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눈과 귀와 입을 총동원해서 제 자랑을 늘어놓지만 타오와 함께 하는 리더는 어린아이와 같이 미소 지을 뿐이랍니다.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삶의나침반 2006.09.14

꿈의 해석

꿈에 C가 집으로 찾아왔다. 집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씬하고 예뻐져서 예전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C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무척 반가웠다. 집안 탁자에 마주앉았다. 아내는 자리를 피했다. 그동안 많이 아팠다고 했다. 나에게 연락하기 위해 편지를 보냈는데 나는 편지를 받지 못했다. 옆에는 다른 사람이 개봉해서 열어본 그 편지가 있었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났고, C는 그때와 다르게 연약하고 가냘팠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만든 장갑을 선물했다. 털장갑인데 색실의 예쁜 무늬가 놓여 있었다. 옛 얘기도 하고 당시 사람들의 안부를 물어보려는데 잠이 깨었다. 오늘 새벽에 꾼 아주 선명한 꿈이었다. C는 20대일 때 교회에서 만났다. 잠시 청년회 활동을 같이 했는데 같은 대학교에..

길위의단상 2006.09.14

블로그 3년

블로그를 시작한지 3년이 되었다. 되돌아보면 뭐든지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은데 이 3년은 무척 길게 느껴진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니 여기에는 나의 전심이 들어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판단이 든다. 거의 매일 글을 올리며 그중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나름대로는 진지하게 글을 썼다. 인생을 진지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은 마음을 블로그에 글을 쓰며 확인하고 더 강화하고 싶었다. 그런 무게감 때문에 내가 느끼는 시간 감각이 3년을 길게 느끼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 블로그 이름만 한 번 바뀌었을 뿐 다섯 개 카테고리와 형식은 처음 시작할 때와 똑 같다. 나에게 있어서 블로그는 처음부터 개인적 독백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꽃과 인용하는 시도 그때그때의 내 마음의 반영에 다름 아니다. ..

길위의단상 2006.09.13

가을 아침

가을이 되면 내 몸에서는 우울호르몬이 마구 솟아나기 시작한다. 첫서리를 맞은 풀처럼 몸과 마음이 생기를 잃고 무기력의 늪에 빠진다. 세상은 나를 등지고 돌아앉았고 나는 외톨이가 된 듯한 느낌에 시달린다. 가을이 갑자기 찾아오듯 이런 느낌은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덮친다. 삶은 무미건조해지고 살 맛을 잃는다.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이런 현상은 남성 갱년기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도 같다. 나에게 가을은 무척 힘든 계절이다. 외롭고 쓸쓸하다. 이것은 사람을 만나거나 재미있는 일에 집중하더라도 해결될 병이 아니다.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나 자신은 견딜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데 문제가 있다. 나를 둘러싼 음의 기운이 옆에 있는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는 것이 나에게도 괴롭..

사진속일상 2006.09.13

깃털처럼 살기

마음공부란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아가는 공부입니다. 자신을 얽어매는 집착과 애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공부이지요. 잘 산다는 것은 제대로 자신을 알아가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종교를 갖고, 수도생활을 하는 목적이 여기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공부를 멀리 특별한 장소에 가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 여기가 바로 그런 수행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어느 분의 글에서 본 내용인데, 이분은 자신의 마음공부를 ‘깃털처럼 살기’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이분은 이걸 수첩에 적어두고 적어도 하루에 두서너 개씩은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

참살이의꿈 2006.09.12

당나귀가 나는 좋아

가을이 큰 걸음으로 한 발자국 성큼 다가왔다. 맑고 상쾌한 가을이 열렸다. 오후에는 아내와 같이 어린이대공원을 산책했다. 아내는 지난 한 달 동안 허리 통증으로 고생했다. 여러 군데 병원을 다녔지만 뚜렷한 원인은 나오지 않았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는데 몸 상태를 확인해 볼 겸 가까운 공원으로 나가 본 것이다. 다행히 허리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그간 집에서 쉬기만 한 탓으로 한 시간여의 걸음에도 쉽게 지쳤다. 두 주일 전에 갔을 때 대공원 정문 가까이 있는 연못에 부레옥잠이 환하게 피어 있었는데 다시 보러 찾아갔더니 벌써 꽃은 다 저버렸다. 공원 안은 좋은 날씨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왠지 이방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도 한 ..

사진속일상 2006.09.11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타는 목마름으..

시읽는기쁨 2006.09.10

왜 / 야마오 산세이

왜 너는 도쿄 대학에 갈 생각을 않느냐고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물었다 저는 와세다 대학에 가고 싶습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그때 나는 키에르케고르 전집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미 시험 공부할 사이가 없었다 왜 너는 대학을 그만 두냐고 대학 3학년 때 아버지는 물었다 나는 방자하게도 입학할 때부터 졸업할 생각이 없었고 졸업장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비겁한 사람이나 하는 일이고 중학교만 졸업한 아버지의 길에도 거스르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왜 너는 아나키스트가 되었냐고 올 삼월에 암으로 죽은 친구가 물었다 그 친구는 깊은 연민과 힘을 가지고 평생을 사랑 하나로 일관한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 어디나 다 중심이고 또 거기에는 그 나름의 질서가 있으니 정부 따위는 필요없는 게 아니냐고 대답하..

시읽는기쁨 2006.09.09

풀협죽도

풀협죽도는 도시의 공원이나 길거리 화단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아메리카 원산으로 진홍빛의 꽃은 밝고 화려하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래종이대개 그렇지만 끈질긴 생명력 때문에 관리하기가 쉽고 잘 죽지 않으니 도시 미화용으로 애용하는 것 같다. 경복궁 화단에서도 이 꽃을 보았는데 고궁 같은 데서는 가능하면 우리꽃을 기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나라를 가르고 원산지를 구별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소개하는 고궁에서까지 외국꽃을 심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협죽도라는 나무가 있는데 이 꽃이그것과 닮아서 풀협죽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비록 바다 건너서 오기는 했지만 우리의 여름을 환하게 해주는 꽃이 풀협죽도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우리 풍토에도 적응해 야생의 상태로도 ..

꽃들의향기 2006.09.08

스물다섯 송이 장미

사람이 평균 수명을 산다고 할 때 부부가 같이 살 수 있는 기간은 대략 50년이 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결혼 50주년이 되는 때를 금혼식으로 축하하고, 그 반이 되는 25년은 은혼식으로 해서 축하한다. 비록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긴 하지만 두 사람에게 있어 50과 25는 상당히 의미 있는 숫자임에 분명하다. 아내에게 줄 목걸이 선물을 인터넷으로 고르다가 옆에 있는 동료에게 들통이 나 버렸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 멋진 남자로 오해를 받았다. 그런데 난생 처음 해 보는 것이라 선택하기도 어려운데다 배달 기간이 맞지 않아 결국 헤매기만 하다가 포기했다. 선물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지라 고르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아내에게 같이 나가서 골라 보자고 했더니 목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목걸이를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사진속일상 2006.09.08

전시작전권 환수를 반대하는 사람들

지난달부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가 이슈가 되어 있다. 정부 측에서는 조기에 환수 받으려고 하고 한나라당이나 보수단체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개인적 입장으로는 환수를 빨리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고, 그래서 퇴역장군들이나 전임 국방장관들이 안보 공백을 이유로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저께는 인문계 대학교수를 중심으로 환수에 반대하는 700여명이 서명을 하고 성명을 발표했다. 그 명단에 내가 평소에 존경하는 박 모 철학교수가 들어있어 무척 놀랐고 동시에 실망을 했다. 정말 전시작전통제권을 지금 환수 받으면 큰일 나는 것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 물론 모든 사안에 대해서 같은 의견이어야 ..

길위의단상 2006.09.07

TAO[48]

누구나 처음에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지식을 하나하나 쌓아 갑니다. 하지만 타오와 함께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비우기 위해 쌓아 놓은 것을 하나하나 놓아 버립니다. 비우고 또 비우다 텅텅 비워지면 참된 자유를 맛보게 되지요. 그것을 무위라 부릅니다. 그것은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킨 사람이 이 세상 모든 것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는 상태, 조화를 이룬 다음에는 마음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조용히 지켜보는 행동을 이릅니다. 정말로 천하를 다스릴 자는 무위의 사람. 무위를 모르는 자, 명령만 내리는 자, 천하를 다스릴 그릇이 못 되지요.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取天下, 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비우고 버리기는 무위에 이르는 길이다. 또한 세상의 모든 가르침의 ..

삶의나침반 2006.09.07

작아 10년 전시회

‘작아’(작은 것이 아름답다) 창간 10년을 기념해서 작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작아’는 녹색평론과 함께 내가 정기 구독하는 잡지다. 이 잡지를 아끼는 사람으로서 어제 친구와 같이 갤러리 ‘다’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를 다녀왔다. 남산 아래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갤러리도 소박해서 좋았고, 조촐하지만 정성들여 준비한 전시회도 가족적인 자축 분위기로 가득해 아주 좋았다. 실내 전시장에는 작아에 글을 올리시는 분들의 사진이나 그림, 글씨 등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바깥 뜰에는 환경 도서들과 오래된 느티나무를 이용한 환경사랑 마당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거기서 야마오 산세이의 책을 한 권 샀다. 특히 반갑게 맞이하고 안내해 준 작아 일꾼들이 고마웠고, 그분들이 전부터 아는 사이인 양 아주 친근하..

사진속일상 2006.09.06

금불초

금불초(金佛草)는 여름에 피는 국화과의 노란색 꽃이다. 그래서 하국(夏菊)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가는 꽃잎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이 특징인데, 세어보니 하나의 꽃에 들어있는 꽃잎이 50여 개나 된다. 그래선지 아기자기하고 귀엽게 느껴지는 꽃이다. 꽃말 또한 '상큼함'이라고 한다. 화사한 노란색역시 눈길을 사로잡는다. 군락을 이룬 모습도 좋고, 홀로 피어있어도 결코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이 꽃의 이름을 '금불(金佛)'이라고한 것을 보니 옛 사람은 이 꽃에서 부처님의 모습을 떠올렸는 것 같다. 가는 꽃잎이 아마 부처님 얼굴을 둘러싼 광배를 연상시켰는가 보다. 작은 꽃 한 송이가부처님의 얼굴이고, 자연이 곧 경전이다. 나에게는 책으로 쓰인 경전에서보다 자연에서 받는 감동과 가르침이 훨씬 더진실되게 다가온다...

꽃들의향기 2006.09.05

정의를 위한 주님의 기도

자선 행위가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주는 것이라면 사회 정의는 그 구조를 변화시켜 지나치게 빵을 많이 갖는 사람도, 빵을 얻지 못하는 사람도 없도록 하는 것이다. 만연히 이웃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자선 행위라면 구체적으로 인종 차별을 다루는 것이 사회 정의이다. 전쟁의 피해자들을 돕는 것이 자선 행위라면 전쟁을 유발하는 궁극적 요인을 지닌 세계의 질서를 바꾸는 것이 사회 정의이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돕도록 유도하는 것이 자선이라면 가난한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한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 정의다. 제도적 이해가 중요한 것은 개인적으로 좋은 사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윤리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이 좋은 개인으로서 살 수 있다(교회에 잘 나가고 기도하며,..

읽고본느낌 2006.09.05

가을 부근 / 정일근

여름내 열어놓은 뒤란 창문을 닫으려니 열린 창틀에 거미 한 마리 집을 지어 살고 있었습니다 거미에게는 옥수수가 익어가고 호박잎이 무성한 뒤뜰 곁이 명당이었나 봅니다 아직 한낮의 햇살에 더위가 묻어나는 요즘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일이나, 새집을 마련하는 일도 사람이나 거미나 힘든 때라는 생각이 들어 거미를 쫓아내고 창문을 닫으려다 그냥 돌아서고 맙니다 가을 바람이 불어오면 여름을 보낸 사람의 마음이 깊어지듯 미물에게도 가을은 예감으로 찾아와 저도 맞는 거처를 찾아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 가을 부근 / 정일근 무더웠던 여름도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젠 아침 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선선하다. 시인과 마찬가지로 여름내 열어놓았던 뒤켠 보일러실의 창문을 나도 닫았다. 거기에 거미줄이 엉켜있는 걸 ..

시읽는기쁨 2006.09.04

반달과 반딧불이

반달이 떠있는 밤이다. 전깃불을 끄니 달빛이 살아나 방안으로 스며든다. 달빛에 온몸이 젖도록 자리를 잡고 눕는다. 창문 한 구석에 달이 걸려있다. 맑은 밤하늘에 떠있는 달은 밝지만 바로 쳐다보아도 눈부시지 않다. 같은 태양빛이건만 달에 머물다 온 빛은 달의 마술에라도 걸린 듯 은은하고 요염하다. 오늘 밤은 달도 무척 외롭게 보인다. 달은 무엇이 그리워서 저렇게 남의 빛을 빌려서까지 자신을 환하게 불 밝히고 있을까? 달이 서산으로 질 때까지 잠을 들지 못하다. 이곳에서의 생활도 이젠 안녕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방안으로 반딧불이 한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선지 방충망에 붙어 계속 깜박거린다. 그러나 나가는 길 찾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들어오기는 쉽지만 나가기는..

참살이의꿈 2006.09.04

나의 나 / 이시영

여기에 앉아 있는 나를 나의 전부로 보지 마 나는 저녁이면 돌아가 단란한 밥상머리에 앉을 수 있는 나일 수도 있고 여름이면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날아가 몇 날 며칠을 광포한 모래바람과 싸울 수 있는 나일 수도 있고 비 내리면 가야산 해인사 뒤쪽 납작바위에 붙어앉아 밤새 사랑을 나누다가 새벽녘 솔바람 소리 속으로 나 아닌 내가 되어 허청허청 돌아올 수도 있어 여기에 이렇듯 얌전히 앉아 있는 나를 나의 전부로 보지 마 - 나의 나 / 이시영 내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나'가 들어있다. 하늘을 닮은 나, 땅을 닮은 나, 늑대 같은 나, 양 같은 나, 어느 날은 군자가 되고, 어느 날은 소인이 된다. 가정과 직장의 안온한 울타리에 만족하지만 때로는 일탈을 꿈꾼다. 내 속에는 성인도 들어있고, 창부도 들어있다...

시읽는기쁨 2006.09.02

올 8월의 기후 특성

금년 8월 날씨에 대한 기상청 발표가 나왔다. 사람들이 느낀 대로 올 8월은 1973년 종합적인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두 번째로 더운 날씨였다고 한다. 다음은 오늘 발표된 기상청의 공식브리핑 내용이다. 자료를 보니 올 8월은 유별나게 더웠고 비가 적었던 달이었다. 1. 기상청에서 전국 60개 관측지점을 대상으로 1973년 이후 8월 월평균기온과 월강수량, 강수일수를 분석한 결과, 금년 8월 전국 평균기온은 26.5도로 1994년(26.6도) 이래 가장 더웠음. 월강수량은 127.4mm로 1973년 이래 5번째로 적었고, 강수일수도 10.5일로 10번째로 적었음. 2. 목포(28.0도), 합천(27.4도), 부안(27.3도) 등 9개 지점은 창설 이래 월평균기온 최고값을 경신하였음. 특히 1904년에 창..

사진속일상 2006.09.01

동창회 유감

얼마 전에 초등학교 총동창회가 모교서 열렸다. 기별로 조촐하게 모이던 동창회가 몇 전부터 매년 전체 졸업생이 한꺼번에 모이는 큰 행사로 변했다. 여름이나 가을이면 1박2일의 총동창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학교마다 걸리는 것을 보면 이것은 전국적인 현상이지 싶다. 이번에 거의 십 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가 보았다. 옛 친구들을 만나니 반갑고 고마웠다. 그러나 너무 오랜만에 만나 서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색함도 있었다. 특히 여자 동창들은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한 학년 학생이 백여 명 정도 되는 작은 시골 학교였는데도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졸업한지 40 년이 되었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동창회 모임은 이틀에 걸쳐 했는데 첫째 날은 전야제였고 둘째 날은 운동회로..

길위의단상 2006.09.01

과꽃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과꽃은 아내가 좋아하는 꽃이다. 수수한 꽃색깔이 나도 마음에 든다. 화단에 주로 심는 화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과꽃은 예외다. 뭔가 은은하고 소박한 분위기가 좋다. 요사이는 여러가지 종류의 원예종으로 개량되어 색깔이 다양해졌지만 그 중에서도 엷은 색깔의 과꽃이 나는 좋다. 너무 진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꽃은 왠지 눈길이 끌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내가 좋아하는 여자도 보통의 그저 평범한 사람이 좋다. 화단에 핀 과꽃처럼 다른 꽃에 비해 드러나진 않지만 바라볼수록 은근한 매력을 풍기는 사람이 좋다. 올 봄에 화단에 과꽃씨를 뿌렸다. 땅에 거름기가 없어서인지 처음에는 잘 자라지 못하..

꽃들의향기 2006.08.31

TAO[47]

타오의 길은 온 세상으로 뻗어 있지요. 하지만 온 세상 돌아다니며 일일이 찾아 헤매지 않네요. 인터넷 창문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많지요. 물어물어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멀어지고 정보를 모으면 모을수록 점점 더 멍청해지지요. 하지만 타오와 함께 하는 사람은 문 밖에 나가지 않아도 온 세상과 만날 수 있지요. 여기저기 기웃기웃하지 않아도 훤히 꿰뚫고 있지요. 두리번두리번 돌아다니지 않아도 온 세상을 훤히 보고 있지요. 그러니 억지로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이루어 가네요 - 당신의 마음 속에서 不出戶, 知天下, 不窺유, 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是以聖人, 不行而知, 不見而名, 不爲而成. 여행을다녀온 사람들로부터어디를 가든 사람 사는 모습은 똑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멀리 낯..

삶의나침반 2006.08.30

바닷가 우체국 / 안도현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쳐다보았다 키 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 우체국이 한 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였으나 나는 곧 그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다 나는 세월에 대하여 말하지만 결코 세월을 큰 소리로 탓하지는 않으리라 한번은 엽서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다가 줄지어 소풍 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내 어린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우체통이 빨갛게 달..

시읽는기쁨 2006.08.29

화양동 느티나무

내가 살고 있는 광진구에는 서울시 기념물 2호로 지정된 나무가 있다. 화양동 110번지에 있는 이 느티나무다. 원래 이 자리에는 조선시대 세종 14년(1432)에 세워진 화양정(華陽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있다. 나무 옆에는 그 위치를 알리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화양정 아래로는 말을 키우던 목장이 있어서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말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세종 임금은 이곳에 별장을 짓고 휴식을 취하곤 했다고 안내문에 적혀 있다. 또한 세조에게 쫓겨난 단종 임금이 영월로 귀양 갈 때 하루 밤을 울며 지새웠다는 애사가 서린 곳이 화양정이기도 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화양정을 검색해 봤더니 세종 때 기록은 나오질 않고 총 14 건이 검색 된다. ‘신빈(愼嬪)이 온양으로부터 돌아오니, 세..

천년의나무 2006.08.28

무대공포증

나는 여러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떨리고 두렵다. 특히 부담이 되는 자리라던가, 시끌시끌한 오락성의 자리일수록 더한 편이다.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릿속은 하얘져서 마음에 담은 얘기조차 제대로 전할 수 없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누구에게나 이런 경향은 있겠지만 나에게는 정도가 심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누구하고나 잘 어울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두 사람과는 서로 교감하며 대화 나누는 것을 즐긴다. 그런데도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는 괜히 무언가가 불편하고 스스로 의기소침해져 버린다. 내 유년과 소년 시절을 돌아보면 자신감이 없고 열등감에 많이 시달렸던 것 같다. 나이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께서는 일찍 학교에 가서 한글이나 깨우치라면서 초등학교에 가입학..

길위의단상 2006.08.28

기대하지 않기

요사이는 비도 사납게 내린다. 국지성 집중호우라 부르는데 짧은 시간에 엄청 퍼붓고는 씻은 듯 사라진다. 꼭 게릴라의 행동을 닮았다. 어제 밤에도 천둥 번개가 치면서 쏟아져 몇 번을 잠을 깨었다. 낮이 되니 가끔 이슬비가 내리면서 밤처럼 요란을 떨리지 않는다. 비가 내린 뒤의 흐린 날은 산책하기에 좋다. 도시의 탁한 공기도 정화되었고, 여름 햇빛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강으로 나갔다가 다시 시내로 들어가 도시 길을 걸어본다. 자동차 소음만 무시할 수 있다면 그런대로 걸을 만하다. 도로를 따라 걷기도 하고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가 보기도 한다. 서민들이 사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에서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좋다. 굳이 무엇을 본다거나 어디로 가야하는 목표는 없다. 그저 발길 가는대로 몸과 마음을 맡기고 몇..

사진속일상 2006.08.27

TAO[46]

세상이 타오의 가르침을 가까이할 때는 전쟁에쓰는 군마조차 밭에 거름을 주어 땅을 비옥하게 만든답니다. 세상이 타오의 가르침을 멀리할 때는 새끼 밴 말조차 전쟁터에 끌려가 머나먼 변방에서 망아지를 낳는답니다. 세상은 하나인데 이렇게 천국 같은 세상, 지옥 같은 세상이 왜 생기는 걸까요? 모두 사람이나 나라나 만족할 줄 모르고 다 많이 갖고 싶어 하는 욕심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탐욕이지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허물은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욕심이지요.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아는 사람 그 사람만이 지금의 행복을 누릴 수 있지요. 그렇다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버리라는 얘기는 아니랍니다. 그저 어느 선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그칠 줄 알아야 그곳이 천국이 된다는 그..

삶의나침반 2006.08.25

부석사 무량수 / 정일근

어디 한량없는 목숨 있나요 저는 그런 것 바라지 않아요 이승에서의 잠시 잠깐도 좋은 거예요 사라지니 아름다운 거예요 꽃도 피었다 지니 아름다운 것이지요 사시사철 피어 있는 꽃이라면 누가 눈길 한 번 주겠어요 사람도 사라지니 아름다운 게지요 무량수를 산다면 이 사랑도 지겨운 일이어요 무량수전의 눈으로 본다면 사람의 평생이란 눈 깜짝할 사이에 피었다 지는 꽃이어요, 우리도 무량수전 앞에 피었다 지는 꽃이어요, 반짝하다 지는 초저녁별이어요 그래서 사람이 아름다운 게지요 사라지는 것들의 사랑이니 사람의 사랑 더욱 아름다운 게지요 - 부석사 무량수 / 정일근 해가 지지 않는다면 밝음의 의미를 모를 것이다. 꽃이 시들지 않는다면 그 꽃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지 못할 것이다. 모든 존재는 유한하고 끝이 있어서 애틋..

시읽는기쁨 2006.08.24

공작초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이 꽃을 많이 기르고 있다. 뱀의 접근을 막는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는 유독 뱀이 많다. 여름이 되면 꼭 한두 사람씩은 뱀에 물려 병원에 실려 간다. 마을 사람들은 뱀에 대해 무척 조심하는 편이고, 그래서 여름이면 집의 경계를 따라 심어진 이 꽃을 늘 볼 수 있다. 뱀이 냄새에 예민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 꽃은 향기가 매우 강하다. 향기라기 보다는 고개를 돌리고 싶을 정도의 독한 냄새다. 아마 이냄새를 뱀이 싫어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뱀이 이 꽃을 피하는지는 의문이다. 어떤 사람은 아무 효과가 없더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공작초는 멕시코 원산으로 강렬한 색깔과 냄새가 특징이다. 외래종이 대개 그렇지만 생명력 또한 강하다. 옮겨 심어도 쉽게 뿌리를 내리고 잘 자란다. 그러..

꽃들의향기 2006.08.24

산다는 것 / 배현순

산다는 것이 무언지 아세요 새처럼 가벼워지는 일 나무처럼 뿌리를 깊이 내리는 일 바다처럼 깊고 푸르르는 일 바람처럼 춤추는 일 꽃잎처럼 감싸안는 일 들풀처럼 다시 일어나는 일 햇살처럼 반짝이는 일이지요 때론 비처럼 울어도 볼 일 가랑비에 젖어도 볼 일 안개에 묻혀 숨어도 볼 일 이슬처럼 또르르 굴러도 볼 일이지요 벼랑끝에 핀 선홍빛 진달래 아스라이 피었다 지는 일 열두 폭 치맛자락에 엎어져 울다 울다 지쳐 꿈꾸어 보는 일이지요 - 산다는 것 / 배현순 산다는 게 뭔지 나는 몰라요. 뭔가 보물이 들어있는 것 같기도 하고, 실없는 농담 같기도 하고 이루어야 할 그 무엇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 헛일 같기도 하고 경쾌한 행진곡 같기도 하고, 음울한 장송곡 같기도 하고 짖궂게 짜여진 각본 같기도 하고, 우연..

시읽는기쁨 2006.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