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7640

신기한 꿈

사람의 뇌는 불가사의하다. 뇌의 위치에 따른 기능은 자세히 조사된 듯하지만, 사고나 기억의 메커니즘은 아직 완전히 밝혀진 것 같지 않다. 더구나 무의식 영역까지 포함시키면 사람의 뇌는 신비라고 해야 할 것이다. 꿈도 마찬가지다. 기억의 저장 탱크에 있는 자료들이 무작위로 튀어나와 혼란스럽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모르는 뭔가의 신비한 메시지가 숨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예지몽 같은 것은 믿기에는 너무나 기이하지만 그런 사례들이 많기 때문에 무시할 수도 없다. 현재 인간의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뿐이다. 앞으로 물질과 정신을 통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이론이 등장할 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4차원 시공간에 갇힌 인간이 다차원의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가 꿈이 아닌가하는 상상도 해..

길위의단상 2006.08.22

TAO[45]

타오는 크게, 더 크게 돌아갑니다. 그러니 느릿느릿 굼벵이 같지요. 하지만 아무리 돌고 돌아도 지칠 줄 모른답니다. 타오는 텅 빈 우물 같아요. 하지만 아무리 퍼내고 퍼내도 마를 줄 모른답니다. 타오는 물이 바다로 흘러가듯이 굽이굽이 흘러 제 집을 찾아간답니다. 그리고 그 커다란 움직임은 너무 커서 모자라게, 서투르게 보인답니다. 타오와 함께하는 사람은 불평불만 늘어놓으며 말싸움하지 않으니까 어눌하게 보인답니다. 그래요, 헐레벌떡 뛰어다니면 추위는 이길 수 있겠지만, 화끈화끈 달아오른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는 것은 움직임 없는 고요함뿐이랍니다. 잔잔한 고요함만이 세상의 폭풍우를 잠재울 수 있답니다.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沖, 其用不窮.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躁勝寒, 靜勝熱, 淸靜爲天下正...

삶의나침반 2006.08.21

妻城子獄

집안이 답답해서 밖으로 나갔다. 힌두교에서는나이 오십이 넘으면 임서기(林棲期)라고 해서 처자를 떠나 숲속에서종교적 명상을 하며 산다고 한다. 처자 부양을 벗어난 남자에게 허용된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집안의 굴레에 갇혀 마누라 엉덩이나 만지고 아이들 재롱이나 보면서 지내서는 큰 공부나 깨달음은 불가능하다. 석가가 그랬고, 예수가 그랬다. 그래서승려들이나 성직자들, 수도자들이 독신을 고수하는 것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가정과 수도 생활을 동시에 이루어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꼭 수도 생활에만 국한시킬 필요없이 살다 보면 해 보고 싶은 일이 있을지라도 가족의 반대나 생계에 매여 포기해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을남자에게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고, 여자의 입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자 입장..

사진속일상 2006.08.21

무지개를 보다

저녁 산책길에 무지개를 보았다. 이른 저녁을 먹고 한강에 나갔을 때였다. 무지개를 본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 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만큼 하늘을 바라볼 시간이 없었다는 뜻일 것이다.도시 속의삶이란철저히 자연과 차단되어 있다. 빌딩 숲에 가려 하늘 조차 손바닥만하게 작아져 있다. '도시가 더 자연적입니다' - 이런 광고 카피를 보고 실소한 적이 있지만 그렇게라고 자위해야 이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서울은 한강이 있어 그나마 살아있다. 오늘 저녁은 멀리서 다가오는 태풍의 영향 때문인지 서늘한 바람에 더위도 가시고 가을 하늘처럼 맑고 넓은 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많은 시민들이 강변에 나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잠실지구에 들어서니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의 표정이나 말소..

사진속일상 2006.08.20

부용

부용(芙蓉)은 꽃색깔이 아름답다. 아름답다기 보다는 곱다고 해야 더 어울릴 것 같다. 마치 천연염색을 한 고운 치맛자락을 보는 것 같다. 부용이라는 이름처럼 참 예쁜 꽃인데, 흰색, 분홍색, 붉은색 등 여러 색깔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꽃말이 '섬세한 미모'로서, 어딘가여리면서 동양적인 미가 느껴지는 꽃이다. 대신에 꽃은 무척 커서 지나치다 싶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멀리서 보면 무궁화로 착각하기 쉬우나 무궁화에 비해 꽃잎이 훨씬 얇고 크다. 중국 원산으로 화단에 심기도 하고, 여름철에 도로가에서 가끔씩 이 꽃을 만나기도 한다. 그냥 휙 하고 지나가더라도 크고 예쁜 색깔 때문에 사람들 시선을 사로잡는 꽃이다. 한 친구는 이 꽃을 아주 좋아한다. 역시 색깔 때문이다. 이제 부용도 졌는데, 그러나 내년이 되..

꽃들의향기 2006.08.19

다시 그리는 나의 꿈

외딴 산기슭 조용한 곳에 백여 평 정도 되는 땅을 얻고 싶습니다. 경치는 중요하지 않지만, 반드시 양지바르고 배수가 잘 되는 땅이어야 합니다. 사람 사는 동네에서는 적당히 떨어져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호기를 부리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지만 많은 비용을 들여서야 내 성격으로는 감당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주위에는 여러 가지 과일나무와 꽃나무들을 심겠습니다. 마당에는 황토를 깔고 한 귀퉁이에는 조그마한 텃밭을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 평 남짓 되는 흙집을 내 손으로 직접 지어보겠습니다. 이번에 짓는 집은 친환경적인 소재만 사용할 것입니다. 말 그대로 생태적인 삶을 실천하며 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측간 역시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 것입니다. 사람에서 나온 것이 땅으로 들어가고 다시 ..

참살이의꿈 2006.08.19

이런 고요 / 유재영

하늘길 먼 여행에서 돌아온 구름 가족이 희고 부드러운 목덜미를 잠시 수면에 담그고 있는 동안 이곳에서 생애의 첫여름을 보낸 호기심 많은 갈겨니 새끼들이 물 밖으로 튀어 올랐다가 다시 수초 사이로 재빨리 사라진다 일순, 움찔했던 저수지가 다시 조용해졌다 - 이런 고요 / 유재영 도시로 돌아오니 문명의 소음이 제일 먼저 반긴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 때문에 잠이 들지 않는다. 여름밤이건만 풀벌레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는다. 아니 들을 수가 없다. 불쌍한 도시인들은 고요를 빼앗겼다. 이런 데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적당히길들여지는 길밖에는 없다. 문득 바쇼의 하이쿠가 떠오른다.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소리'

시읽는기쁨 2006.08.19

세미원의 연꽃

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세미원에 들렸다. 양수리의한강변에 자리한 세미원은 작년에 비해 규모도 커졌고 훨씬 깨끗하게 단장이 되어 있었다.연꽃의 아름다움이 주변의 한강 풍경과어울려서 아주 분위기 있는 곳이 되었다. 위로 고가도로가 지나가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과 여성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다. 폐장이 될 때인 저녁 무렵에 찾아가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빠른 걸음으로 한 바퀴 돌며 눈에 띄는대로 연꽃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연꽃에는 뭔가 탈속적이고 고결한 이미지가 느껴진다. 피안의 세계를 향한 희구랄까, 이곳 이름이 세미원(洗美苑)인 것도 연꽃의 그런 이미지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꽃들의향기 2006.08.18

나무수국

지난 번에 친구와 물향기수목원에 갔을 때 이 꽃나무를 보고 이름이 무엇인지 몰라 답답했었다. 수국 종류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많이 헷갈렸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나무수국이었다. 작은 꽃들로 이루어진 나무수국은 여름에 피는 꽃으로는 드물게 순백색의 꽃이다. 첫눈에 봤을 때는 수수꽃다리(라일락)의 이미지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가까이 다가가니 향기도 무척 진했다. 일본이 원산이고 관상용으로 주로 정원에 많이 심는다고 한다. 여름철에 흰색의 꽃을 만나기 힘든데 화려한 색깔의 꽃들 사이에 심어놓으면 잘 어울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강렬한 햇빛을 반사하는 한낮의 눈부심도 좋겠지만, 교교한 달빛 속에서 드러낼 듯 말 듯 은은하게 자랑하는 교태를 감상하는것도 멋질 것 같다.

꽃들의향기 2006.08.18

재미있는 라디오

여기는 일부러 TV를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인터넷도 되지 않습니다. TV를 안 보고 인터넷을 안 해도 별 아쉬움을 못 느끼니 다행히 저는 아직 문명에 덜 중독이 된 모양입니다. 대신에 세상과의 통로는 라디오입니다. 라디오는 하루에 두세 시간 정도 듣는 편인데, 다이얼은 MBC FM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아침에는 ‘여성시대’를 가끔 듣고, 저녁에는 8시에 시작되는 ‘재미있는 라디오’와 9시 뉴스를 듣습니다. 그 시간이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거나, 먹고 난 뒤의 휴식시간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낮의 열기도 식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거실에 누워 라디오를 듣는 재미가 무척 쏠쏠합니다. TV는 눈을 뜨고 집중해야 하지만 라디오는 눈을 감아야 도리어 제격입니다. 비슷한 정보를 전달받을 때 라디오가 훨씬..

참살이의꿈 2006.08.18

한 장의 사진(6)

아버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우선 엄하고 무섭다는 것이다. 내 기억창고에는 대부분 이처럼 부정적인 것들이 저장되어 있다. 고맙고 좋았던 일도 많았을 텐데 왜 그런 것들은 지워지고 아픈 이미지들만 남아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는 자식 사랑이 유별하셨다는데 장남인 나에게는 늘 엄한 아버지로 각인되어 있다. 십 년 아래인 막내는 아버지의 사랑을 귀찮을 정도로 듬뿍 받고 자랐다. 약주라도 드시고 퇴근하신 날이면 막내는 도망가고 아버지는 쫓아다니는 숨바꼭질을 즐기셨다. 그런 것이 우리들에게는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나에게는 공부에 대한 기대가 엄청나게 높으셨다. 초등학교 다니던 때, 아버지가 퇴근하실 때 내 책 읽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그날 저녁 집 분위기는 냉동고로 변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

길위의단상 2006.08.18

루오

100여 km를 달려 대전까지 간 것은 루오(G. Rouault)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였다. 현재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조르주 루오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루오는 예수를 비롯한 종교화와 사회 밑바닥 계층의 사람들을 많이 그렸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미제레레’ 연작 등 종교성 짙은 그림들과 루오가 사랑한 광대, 매춘부, 가난한 사람들의 그림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정물화와 풍경화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루오는 가난하고 천대 받는 사람들에서 영혼의 빛을 발견했다. 대신에 부자들과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은 멸시했다. 판사들, 오페라 극장의 귀빈석에 앉아있는 부르주아들의 얼굴은 탐욕스럽고 기괴하게 일그러진 채 그려져 있다. 대신에 곡마단 소녀의 얼굴은 예수의 얼굴을 닮아있다.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

읽고본느낌 2006.08.17

민달팽이 / 김신용

냇가의 돌 위를 민달팽이가 기어간다 등에 짊어진 집도 없는 저것 보호색을 띈, 갑각의 패각 한 채 없는 저것 타액 같은, 미끌미끌한 분비물로 전신을 감싸고 알몸으로 느릿느릿 기어간다 햇살의 새끼손가락만 닿아도 말라 바스라질 것 같은 부드럽고 연한 피부, 무방비로 열어놓고 산책이라도 즐기고 있는 것인지 냇가의 돌침대 위에서 오수(午睡)라도 즐기고 싶은 것인지 걸으면서도 잠든 것 같은 보폭으로 느릿느릿 걸어간다 꼭 술통 속을 빠져나온 디오게네스처럼 물과 구름의 운행(運行) 따라 걷는 운수납행처럼 등에 짊어진 집, 세상에게 던져주고 입어도 벗은 것 같은 납의(納衣) 하나로 떠도는 그 우주율의 발걸음으로 느리게 느리게 걸어간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아내가 냇물에 씻고 있는 배추 잎사귀 하나를 알몸 위에 덮어주자 ..

시읽는기쁨 2006.08.13

수국

수국(水菊)은 풍성하게 피어난 둥근 공 모양의 꽃이 탐스러우면서 복스럽다. 색깔은 보라, 분홍, 흰색 등 다양한데 그것은 수국이 자라는 흙의 산성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잿물을 뿌려주면 분홍색 꽃이 되고, 백반을 뿌려주면 청색 꽃이 된다니 신기하고 재미있다. 수국을 칠변화(七變花)라고도 부른다는데, 칠면조 마냥 색깔이 변하는 수국은 토양의 리트머스 시험지인 셈이다. 나른한 여름 오후에 마당 한 켠에 피어 있는 수국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모나게 살지 말라고, 나처럼 둥글둥글 원만하게 살아가라고 속삭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해인 수녀님의 '수국을 보며'라는 시가 있다. 기도가 잘 안 되는 여름 오후 수국이 가득한 꽃밭에서 더위를 식히네 꽃잎마다 하늘이 보이고 구름이 보이고 잎새마다 물 ..

꽃들의향기 2006.08.11

한미 FTA,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노무현 정부는 남은 임기 안에 한미 FTA(Free Trade Agreement)를 체결하려는 속셈이 있는 듯하다. 쉽게 말해 FTA는 한국과 미국 시장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과 같다. 관세도 없애고 무역의 규제 장벽도 허물게 된다. 그러면 경쟁력 있는 산업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세부적인 FTA의 내용과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뭔가 불안하다. 우선 한미 FTA가 체결되면 미국에 의한 예속화가 더 심해지면서 뭔가 모를 늪 속으로 더 깊숙이 빠져들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모든 것이 국익을 위해서라는데 그러나 누구를 위한 국익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 예로 농민의 희생을 전제로 한 국익이라면 결단코 반대한다. 그래서 결국 누구의 배를 ..

길위의단상 2006.08.11

비에도 지지 않고 / 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갖고 욕심은 없이 결코 화내지 않으며 언제나 조용히 웃는다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국과 약간의 야채를 먹고 모든 일에 타산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잘 보고 들어 행하고 이해하며 그리고 잊지 않고 들판의 숲 그늘 작은 초가에 살며 동쪽에 병든 아이 있으면 가서 간호해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그 볏단을 져 주고 남쪽에 죽어 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말해주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 있으면 부질없는 일이니 그만 두라 하고 가뭄이 들었을 때는 눈물을 흘리고 냉해의 여름에는 벌벌 떨며 걷고 모두에게 멍청이라 불리고 칭찬 받지도 않고 걱정시키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 비에도 지지 않고..

시읽는기쁨 2006.08.11

나의 종교관

나는 가톨릭 신자다. 10년 전에 영세를 받았고 지금도 매주일 미사에 참례하니 겉모습은 신자의 흉내를 내고 있다. 그러나 판공성사 같은 기본적인 가톨릭 신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니 전통적 입장에서 보면 사이비 가톨릭 신자다. 가톨릭의 기본 교리에도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고, 개신교를 포함해 현재 한국 기독교의 모습에도 부정적이며 비판적이다. 그런데도 신자의 흉내를 내는 것은 종교의 가르침에 대한 근원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비판하는 것은 현재의 기독교 모습과 일부 종교 지도자들, 또는 믿는 자들의 이중성 때문이지 기독교의 가르침 자체는 아니다. 이 글을 쓰는 것도 점점 보수화해 가고 민중으로부터 멀어지는데 일조하고 있는 가톨릭 지도자들의 언행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무척 조심스럽..

길위의단상 2006.08.10

원추천인국

원래 이름이 '루드베키아'인 원추천인국은 화려한 여름꽃이다. 불타는 듯한 정열적인 색깔의 이 꽃은 마치 작은 태양 같다. 가운데는 너무나 뜨거워서 새까맣게 타버린 것 같다. 열대지방 꽃인 줄 알았는데 북미가 원산지라고 한다. 생명력이 강해서인지도로변에 많이 심어져 있다. 자동차의 소음과 먼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 자란다. 그런데 너무 생명력이 강한 나머지다른 식물들은 이 근방에서 자랄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한다. 어느 제국주의 나라처럼 너무 당당하고 힘이 세도 탈이다. 사실 이런 꽃은 처음에는 사람의 시선을 빼앗지만 시간이 지나면 쉽게 싫증이 나기 쉽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우리 자생꽃의 은은하고 고운 자태가 훨씬 더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꽃들의향기 2006.08.10

學道 / 李珥

學道卽無著 隨緣到處遊 暫辭靑鶴洞 來玩白鷗州 身世雲千里 乾坤海一頭 草堂聊寄宿 梅月是風流 - 學道 / 李珥 도를 배움은 곧 집착 없으매라 인연 따라 이른 곳에서 노닐 뿐이네 잠시 청학동을 하직하고 백구주에 와서 구경하노라 내 신세는 천리 구름 속에 있고 천지는 바다 한 모퉁이에 있네 초당에 하룻밤 묵어가는데 매화에 비친 달 이것이 풍류로다 유학자였지만 유가의 경계를 넘어선 인물 - 율곡 이이. 율곡은 당시에는 이단에 가까웠던 노장사상을 연구하고 도덕경을 주석했으며 불교에도 관심이 많았고, 해동공자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유학의 대가였지만 유, 불, 선이라는 벽에 걸림이 없이 도(道)를 따라 산 자유인이었다. 도의 세계는 종교의 구분이나 사상의 벽을 넘어서 있다. 이 시를 보면 율곡은 도의 비밀을 살짝 열어 ..

시읽는기쁨 2006.08.10

혼자 있는 즐거움

이곳에 내려와 혼자 생활한지 일주일째입니다. 혼자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우선 불편하지 않느냐고 걱정합니다.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상이 남자가 하기에 귀찮고 힘들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내 한 몸 살아가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은 사실 그다지 힘들지도 귀찮지도 않습니다. 집에서 주부가 하는 일과는 비교가 될 수가 없지요. 그것도 어쩌다가 하는 일이니까요. 사람들이 걱정해 주는 말에 그냥 괜찮다고 답해주지만 사실 내 마음은 얼마나 좋고 흡족한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좋은 마음을 드러내놓고 자랑할 수는 없지요. 내가 여기서 즐거운 이유는 일상적인 삶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누구의 간섭도 없이 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습니다. 출근시간을 알리는 벨소리도 없고, 싫어도 해야만..

참살이의꿈 2006.08.10

꽃범의꼬리

요사이는 꽃범의꼬리를 자주 볼 수 있다. 북미 원산으로 우리 자생종이 아니기 때문에 들에서는 보기 어렵고, 도시의 인공적으로 조성한 화단에서는 쉽게 눈에 띈다. 꽃의 모양이 특이한데 물고기가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작은 꽃이 줄기를 돌아가면서 줄을 지어 붙어 있다. 꽃 색깔은 흰색과 분홍색을 주로 볼 수 있다. 특히 순백의 흰색은고우면서도 화사하다. 뿌리가 옆으로 퍼지면서 번식하기 때문에 하나만 심어놓아도 무리를 지어 무성해 진다고 한다. 길고 곧은 줄기를 따라 총총히 붙어 있는 꽃의 모양에서 범의 꼬리를 연상했을까? 그러고 보니 저 풀밭에 범 가족이 꼬리를 곧추세우고 모여 있는 것도 같다.

꽃들의향기 2006.08.10

제대로 밥 먹기

‘작은 것이 아름답다’ 8월호에 황대권 님의 ‘션찮은 반찬으로 맛있게 밥 먹기’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습니다. 새겨들을 만한 내용이어서 글을 부분적으로 발췌, 요약해 봅니다. 음식점에서 정식을 시키면 한 상 가득 찬과 요리가 나오고 밥은 가장 나중에 나온다. 밥을 먹을 때쯤이면 이미 과식 상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인들은 밥 먹으러 가자 해 놓고는 밥은 조금 먹고 찬만 잔뜩 먹고 오는 게 당연한 일처럼 되어 버렸다. 이것이 육식은 일상화되면서 생긴 식습관이다. 고기에 야채를 곁들여 먹으면 곡기가 없어도 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이미 고기 맛에 길들여진 몸의 요구를 어쩌지 못한다. 그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상당한 결심과 의지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찬이 아니라 밥 위주로 식사를 하는 것이다. 반찬은 그저 그런..

참살이의꿈 2006.08.10

올 여름 피서법

올 여름은 유난히 덥습니다. 수치상으로 나타난 기온은 예년에 비해 특별히 높다고 할 수 없는데 체감으로 느껴지는 더위는 훨씬 더합니다. 이곳은 한여름에도 선풍기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서늘하지만 올해는 다릅니다. 소나기 한 줄기 없이 십여 일째 땡볕 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선풍기를 틀어놓고 지내야 했습니다. 이런 때는 바깥일도 아침 해 뜨기 전 잠깐 뿐입니다. 저녁에는 해가 떨어지더라도 남은 열기 때문에 밖에 나가기가 싫습니다. 반면에 빨래를 말리는 쨍쨍 햇볕은 고맙습니다. 아침에 빨래를 널어두면 햇볕에 익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저녁에 바짝 마른 빨래를 만지면 뽀송뽀송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덩달아 방안의 이불까지 꺼내 햇볕 구경을 시켜줍니다. 태양의 맑은 에너지..

참살이의꿈 2006.08.10

젊은 날의 노트(6)

1978/1/2 오늘은 눈이 나리는데 갖가지 무쌍한 변화가 절로 감탄을 일게 한다. 싸락눈이 간지럽게 내리다가는 바람에 불려 소나기같이 빗기며 쏟아지고, 그러다가 한 닢 두 닢 드문드문 무겁게 떨어지더니 다시 이내 화려한 함박눈이 된다. 도저히 앞을 뚫고 나갈 수 없으리만큼 자욱하게 내린다. 눈 덮인 산야는 처량한 미를 지니고 있다고 느낀다. 오늘이 명절 연휴여서일까. 무엇을 기다리다 지친 그러나 기다릴 수밖에 없는 운명적 체념, 흰 들판은 그렇게 비치어진다. 눈 내리는 풍경을 보며 영희에게 회신 쓰다. 약간은 염세적인 내용으로 써내려가다 결국 마지막 줄에선 ‘雪片의 亂舞가 아름답구나’로 맺어진 것은 저 티 없는 순수를 외면할 수 없었음일까. 눈을 맞으며 길을 걸을 때 아다모의 곡도 흥얼거려 보고 어깨에..

길위의단상 2006.08.10

젊은 날의 노트(5)

1977/9/2 환경을 떠나서 인간이란 생각할 수 없다. 실로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인 인간이 이토록 철저히 자연에 지배당해 있다는데 놀라울 뿐이다.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행복해 하는 노예처럼 인간도 그런 것인가. 두뇌의 활동, 혈액의 순환, 감정, 의지 이 모든 것이 어느 하나 독립적이며 완전한 게 있는가. 다만 우리는 그것을 이상화시켜 추상하고 있을 뿐, 한 조그만 물질이 대자연의 물질에 종속되는 관계- 그런 보이지 않는 연관이 상호 작용되고 있다. 물질이 정신을 창조하고 그것이 인간이 되다. 인간의 운명은 저 모래알이나 다름이 없다. 이것을 긍정하는 건 지극히 괴로운 일이건만 그러나 행복으로 들어가는 문이 아닐까. 얼마나 기다렸는가, 포상 휴가라는 이름이 나의 것이 되기를.... 오늘 또 2명이 출..

길위의단상 2006.08.10

젊은 날의 노트(4)

1977/1/2 저녁,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새 석양 아래 반짝이는 피곤함 1977/1/9 들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은 차라리 내가 그렇게 하고 싶도록 그립다. 1977/1/30 일상의 모든 생활이 가면처럼 보인다. 모든 걸 훌훌 벗어 던지고 나 자신으로 돌아오면 막막한 허허벌판, 거기에 찬바람이 휘몰아친다. 인정에 울고 세상사에 울고 분내던 것, 이 모든 것은 이젠 타버린 재. 석양의 길을 홀로 걸으면 짓눌러오는 세월- 가슴으로 바람이 새 나간다. 유행말로 언제 끝나려나. 사회 공기가 그토록 감미롭게 느껴지지만 어디서나 인간 본연의 모습은 마찬가지겠지. 오늘도 신문엔 화려한 낱말이 사회면을 장식한다. 그 언어의 의미가 왜 사라졌는가. 체험적으로 그걸 느끼려는가. 새로 탄생하려면 옛 것은 버려져야 하..

길위의단상 2006.08.10

젊은 날의 노트(3)

1973/10/3 ‘어떻게 살 것인가?’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가 나의 관심사가 된다는 것은 人生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딴 사람의 각본대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애통한 일인가! 타인의 눈을 살필 필요가 없다. 나의 약점을 감출 필요도 없다. 굳건한 生의 목표를 잡았으면 - 아니 아직 그런 것이 없다 할지라도 일시적인 행동의 좌표는 있을 것이다 - 거기에 맞는 행동을 하면 되는 것이다. 세상은 속일지라도 나 자신을 배반할 수는 없다. 나는 결국 cynical해져야 한다. heroism을 가져야 한다. 音樂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哲學과 音樂에 미쳐보고 싶구나. 밤새도록 감미로운 音樂에 취해 봤으면.... 나는 英雄도 못되고 졸부도 아닌가? 중간 존재란 얼마나 ..

길위의단상 2006.08.10

젊은 날의 노트(2)

1973/9/2 목사의 설교에서 극동방송과 권신찬 목사에 대한 비판이 신랄했다. 몇 달 전 권목사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는 나로선 이 상반된 異見에 적잖이 당혹할 수 밖에 없었다. 비판 요지는 다음과 같다. ‘권목사는 극동방송을 통해서 무교회사상을 제창하고 있다. 그는 구원과 부활을 강조하면서 교회는 타락했으며 목사는 ××꾼이고 헌금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라는 말로서 신도를 현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구원과 부활에 대한 강조는 좋다. 그러나 교회로 통하지 않고 구원의 확신을 얻은 사람이 누가 있는가? 교회와 목사가 좀 부족하다 하다라도 그 필요성은 충분히 있는 것이다.’ 권목사의 설교를 들을 때는 아무 느낌도 없이 들었는데 그는 그 때 이렇게 강조한 것 같다. ‘현재의 교회는 타락하고 썩어있다. 오직..

길위의단상 2006.08.10

젊은 날의 노트(1)

1973/8/3 (持續의 原則) 모든 現象은 對象 자체로서의 持續的인 것을 포함하고 있다. 또 持續的인 것의 規定이며 對象이 存在하는 방식인 可變的인 것을 포함하고 있다 (生産의 原則) 生起하는 모든 것은 어떤 것을 前提하며 그것에 뒤쫓아서 하나의 規則에 따라 繼起한다 이것의 認識은 a priori한 表象으로 돌려야겠다. 當爲를 證明한다는 것은 當爲에 맞게 채색하는 論理的 誤謬를 범할 可能性이 恒存하기 때문이다 몽테에뉴錄에서 「賢人이란 정반대의 行動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여기서 行動뿐만 아니라 思想까지 포함시킨다면 정곡을 찌른 틀림없는 鐵則이 될 것이라 믿는다. 雜多한 知識만 알고 있는 자가 賢人이 될 수 없고 그 知를 理解, 자기 것으로 消化하여 확고한 자기 思想을 완성한 信念을 가진 자만이..

길위의단상 2006.08.10

아름다운 저녁 시간

늦은 감자를 캐고 옥수수의 첫 수확을 했다. 감자고 옥수수고 올해는 결실이 영 시원찮다. 수 년 중 최악의 결과다. 이것은 주인장의 마음 탓이고, 중간 관리를 제대로 안해 준 탓이다. 초라한 수확물을 들여다보니 주인을 잘못 만나 제대로 영글지도 못했는가 싶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얘들아, 잘 돌봐주지 못해서 미안해!" 두 주 전에 밭고랑의 풀을 뽑고,뽑은 풀로 고랑을 덮어 두었다. 다른 풀들이 자라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풀들이 다시 뿌리를 내리며 살아나고 있다. 지난 번 막바지 장맛비에 힘을 얻었는가 보다. 그래서 다시 뒤집어 주어야 했다. 다행히 아직은 뿌리가 깊지 않아 땅에서 잘 떨어진다. 어찌 보면 잔인한 노릇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작물 가꾸기란 인간의 필요에..

참살이의꿈 2006.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