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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장미는 사랑의 꽃이다. 그 황홀한 자태와 향기는 사람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다.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꽃 일순위는 아마 장미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장미를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은 로마인들이었다고 한다. 로마의 공식 축제인 '바쿠스제'가 열리면 장미로 치장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군인이 전쟁에 나갈 때도 장미로 몸을 장식했고, 장미를 기념하기 위한 공휴일도 있었다. 그리고 네로 황제는 만찬장 천장에 파이프를 설치하고 손님들 머리 위로 장미향수를 비처럼 뿌렸다고도 한다. 어느 황제의 즉위식 때는 하객들에게 너무 많은 장미꽃잎을 뿌려 그 향기에 질식하는 사람들도 생겼다고 한다. 이같은 로마인의 장미 사랑을 안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바닥에 장미꽃을 두껍게 깔아둔 방으로 안..

꽃들의향기 2006.10.21

숨 막히는 서울

비 내리지 않는 가을이 계속되고 있다. 또 도시의 매연이 안개와 겹친 스모그 현상도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다. 도시의 시야는 수백 미터를 넘지 못하고 종일 뿌연 연무에 가려져 있다. 하루를 마치면 목이 칼칼하고 따갑다. 요사이는 최악의 가을 날씨다. 기상청 자료를 찾아보니 9월에 서울 지방에 내린 비의 양은 11mm, 10월은 고작 0.2mm에 불과했다. 그나마 5mm 이상 온 날은 하루도 없었다. 두 달 동안 제대로 된 비는 한 번도 내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땅은 건조해져서 밟으면 먼지가 인다. 푸른 가을 하늘을 못 본지도 오랜 것 같다. 시원한 빗소리가 그립다. 숨 막히고 답답한 것이 꼭 매연 뿐이겠는가. 어제는 마음이 통하는 동료들과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자정이 넘도록 토론했다. 술과 담..

사진속일상 2006.10.20

TAO[53]

내면의 빛으로 바라본다면 타오의 길이 평평하고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이것을 안다면 당신은 골목길로 가지 않을 거에요. 많은 사람들은 울퉁불퉁하고 좁은 길을 좋아하지만 거기에는 서로를 누르고 다른 사람 위에 서려는 경쟁만이 있을 뿐이랍니다. 경쟁에서 이긴 자들은 정치와 경제를 지배하지만 결국 자신의 몸치장에만 힘쓰고 거대한 빌딩만을 세우고 쓸데없는 무기만 만들지요. 오직 먹고 마시는 일을 위해 재물만 쌓아 올릴 뿐이랍니다. 이러한 모습은 다름 아닌 도둑의 모습이지요. 저 커다란 타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답니다. 언제나 변함없는 진리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랍니다.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大道甚夷, 而民好徑,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

삶의나침반 2006.10.19

교실 풍경 / 신현수

(너무나 감격스러운 어조로, 약간 눈물도 글썽이며) 너희들이 태어나던 해에 우리나라 남쪽에서 아주 불행한 일이 있었단다 어떤 욕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무런 죄도 없는 많은 사람들을 총으로 칼로 죽였단다 그 후에도 그 일을 다른 곳에 알리고자 한 사람 그 일이 잘못되었다고 말한 사람들이 계속 피를 흘리면서 죽어갔단다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 이제 정부에서 그 공로를 인정하고 그날 이후의 희생된 넋들을 기리기 위해 오늘부터 기념일로 제정하기로 했단다, 얘들아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선생님! 그럼 내년부터 5월 18일날 놀아요? - 교실 풍경 / 신현수 막막한 벽을 마주치는 곳이 어디 교실 뿐이겠는가? 요즈음 처럼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지배 계급의 이념이다'라는 칼 마르크스..

시읽는기쁨 2006.10.18

마시멜로 이야기

옆의 동료가 자신이 읽고 있던 책을 권한다. 마시멜로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하면서.... 목차를 살펴보니 성공이라는 단어가 제일 많이 눈에 띄어 별로 탐탁치 않았으나 그래도 삶의 작은 지혜나마 들어있지 않을까 싶어 읽어 보았으나 많이 실망했다. '마시멜로 이야기'는 내가 보기에 세속적 성공 지향의 처세술에 관한 그저 그런 책에 불과하다.어찌 보면 이 시대에 통용되는 가치관과 어울리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고 베스트 셀러가 되는가 보다. 그러나 삶에대한 진지한 고뇌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책의 짜임도 사장이운전 기사에게 돈을 많이 벌고 출세를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어드바이스를 하는 내용이다. 책의 원어 제목이 'Don't Eat the Marshmallow..

읽고본느낌 2006.10.17

미국쑥부쟁이(2)

미국쑥부쟁이는 가을이면 들판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쑥부쟁이에 비해서 꽃의 크기가 작다.꽃이 옹기종기 달려있어 멀리서 보면 마치 안개꽃을 보는 것 같다. 북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인데 이제는 전국으로 퍼져 있다. 이젠 꽃 이름에 미국이 붙어도 괜히 기분이 언짢다.빠른 시기에 전국으로 퍼져나가 토종을 밀어내는 것이 밉살스럽기도 하다. 실제 미국이라는 이름이 붙은 식물치고 억세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꽃에 무슨 죄가 있으랴. 미국쑥부쟁이도 선입견만 갖고 보지 않는다면 가을의 분위기를 돋워주는 작고 귀여운 꽃이다. (이 꽃을 2년 전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만 잊어 버렸다. 여기에 올리는 꽃의 종류가 200종 가까이 되다 보니 자꾸 중복되는 것이 생긴다. 그런데 미국쑥부쟁이를 바라보는 느낌이 당시의 글을 ..

꽃들의향기 2006.10.17

2006 노벨 평화상 - 그라민 은행

“'가난'이란 말은 의미를 상실하고, 다만 역사적 의미로만 존재했으면 하고 소망한다. 가난은 박물관에나 전시되는 과거의 유물이 되어 있고, 문명화된 세계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박물관을 찾은 초등학생들이 이 과거의 유물을 보면서 지난 시대에 창궐했던 끔찍한 모습을 떠올리며 치를 떨 것이다. 그러면서 그 아이들은 21세기 초두에 이르도록 조상들은 어째서 그런 처참한 불행을 그대로 방치하였는지 의아해할 것이다.” 올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그라민(Grameen) 은행의 창립자인 유누스(M. Yunus)의 말이다. 유누스는 그라민 은행을 통해 ‘가난 없는 세상’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남아도는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지 못해 고민하는 나라가 있고, 한 쪽에서..

길위의단상 2006.10.16

TAO[52]

어머니는 우리를 낳아 기르시고, 타오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낳아 기르니, 타오는 이 세상 모든 것의 어머니. 그러니 타오는 우리의 어머니랍니다. 우리는 모두 타오라는 어머니의 자식들이지요. 우리가 타오의 자식임을 알아야 비로소 타오의 높고 큰 사랑을 알 수 있답니다. 마치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듯이. 그리고 그런 참사랑을 느낀다면 우리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속에 안길 수 있답니다. 우리는 자라면서 눈과 코와 귀와 입을 빌려 세상을 배웁니다. 그러면서 몸도 마음도 점점 지쳐 가지요. 그럴 때 문득 생각나는 사람, 어머니. 어머니의 품속으로 돌아가세요. 그러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진답니다. 사노라면 눈과 코와 귀와 입을 빌려 지식의 조각들을 주워 담는 시간도 필요하겠지요. 그 의식의 조각 그 조각들로..

삶의나침반 2006.10.16

재중이네를 보니 / 임길택

돈이 없으면 안 쓰고 옷이 없으면 기워 입고 쌀이 없으면 굶기도 하면서 할머니와 둘이서 살아가요 가난해도 어떻게든 살아가요 - 재중이네를 보니 / 임길택 가난하지만 마음은 부자인 사람들이 있다. 적은 것에 만족할 줄 알고 이웃을 살피며 배려할 줄 안다. 반면에 부유하지만 마음은 가난뱅이인 사람들도 있다. 있을수록 더 많이 차지하려 하면서 늘 불만과 갈증에 시달린다. 그런데 요사이는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극악스럽기는 별로 다를 게 없다. 현대인들은 모두 탐욕이라는 병에 걸린 환자들이다. 예전에는 가난했지만 사람들 마음이 이렇게 황폐화 되지는 않았다. 이 동시는 가난하지만 결코 타락하지 않은 맑고 깨끗한 마음이 눈물겹게 읽혀진다. 남보다 앞서 가려고 정신 없이 바쁘게 살면서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이고..

시읽는기쁨 2006.10.14

그리운 사람은

꽃은 산 속에 있을 때, 넓은 들판에 피어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홀로 피어있어도 무리를 지어 피어있어도, 비 내리면 비를 맞고 바람 불면 흔들리며 자신의 자리에서 자라는 모습이 아름답다. 내 곁에 두고 싶어 손을 대는 순간 꽃은 시든다. 그리운 사람은 그냥 가슴 속에 담아두자. 아름다운 사람, 예쁜 당신은 그저 멀리서 바라보자. 소롯이 그리워하며 애틋이 아껴보며 그냥 옆에서 지켜보자.

길위의단상 2006.10.13

덕수궁을 산책하다

비 없는 가을이 계속되고 있다. 사무실 벽을 덮고 있는 담쟁이덩굴이 제대로 붉은 단풍을 뽐내지도 못하고 말라죽어가고 있다. 대기도 건조해서 바람이 부는 날이면 모래 먼지가 운동장을 휩쓸고 지나간다. 그런데 어제는 모처럼 맑고 파란 가을 하늘이 나타났다. 창 밖 풍경이 문득 야외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밝은 햇살을 받으며 들길을 걷고 싶었다. 조금 일찍 자리를 떠서 덕수궁을 찾았다. 문 하나만 들어서면 도심의 번잡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가을 산책을 나온 시민들이 한가로이 경내를 거닐고 있었다. 사람들 표정에서는 가는 계절에 대한 아쉬움이 배어 있으면서도 뭔가 원숙하고 내성적인 분위기가 고궁과 잘 어울렸다.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느릿느릿 산책을 하기도 했다. ..

사진속일상 2006.10.13

구절초(2)

구절초는 가을의 향기를 담뿍 머금은 꽃이다. 쑥부쟁이, 벌개미취 등 통칭 들국화라 부르는 비슷한 꽃들이 많지만 구절초만큼 가을 분위기를 진하게 느끼게 해주는 꽃도 없다. 구절초는 처음 봉오리일 때는 연분홍이지만 나중에는 점점 흰색으로 변한다. 구절초의 흰색은 정갈하며 소박하다. 화장을 하지 않은 여인의 얼굴이랄까, 인위적으로 꾸민 아름다움이 아닌 자연 미인을 보는 것 같다. 예전에 비해서 구절초를 자주 만날 수 있다. 인간의 손에 의해많이 퍼진 탓이리라. 그만큼 구절초는 가을꽃으로 가장 사랑을 받는 꽃이다.코스모스 보다도 훨씬 더 향토적이며 고향 냄새가 난다. 시에서 처럼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꽃이다.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

꽃들의향기 2006.10.12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기 때문이죠

교양강좌 세 번째 시간은 한비야 님과 만났다. 그녀의 인기를 반영하듯 강당은 간의의자까지 들여놓아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다. 특히 젊은 여자들이 많이 찾았는데 아마 그녀의 자유로운 삶에 대한 동경이 모든 여자들의 가슴속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녀를 직접 만나보니 역시 당차고 똘똘한, 그리고 에너지가 넘치는 매력 있는 여성이었다. 세 가지 주제를 얘기했는데, 그 중에서 ‘가슴 뛰는 일을 하며 살자’라는 얘기가 제일 인상적이었다. 여행가에서 월드비전에서의 긴급구호활동으로 전환하게 된 결정적 계기를 그녀는 이렇게 설명했다. 긴급구호활동이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팀을 따라 케냐의 난민캠프에 갔다고 한다. 불결한 환경으로 안질 환자가 많기 때문에 그곳에도 이동 안과병원이 있었는데, 의사는..

길위의단상 2006.10.11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

암 투병중인 친구와 통화를 했습니다. 어느 날 불현듯 암 선고를 받고 지금은 직장도 그만 두고 통원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수술도 어렵다고 합니다. 그의 고통을 헤아리기 어려운 나는 전화 통화하기도 미안합니다. 그런데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가 예상외로 밝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명절 다음 날 친구들 몇이서 근교에 놀러갔다 왔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중병에 걸린 사람 같지가 않았습니다. 나 같으면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리고 숨었을 것입니다. 평소에 낙관적이고 밝은 성격의 친구다워서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도리어 친구는 내 처지를 걱정해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해 보지 못한 경험을 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야.” 한계 상황에 처한 친구가 아무 것도 아닌 일의 나를 위로해 주었습..

참살이의꿈 2006.10.10

어느 부부

그녀의 머릿속에는 아파트와 땅이 가득 들어있다. 그녀는 돈 되는 아파트를 찾아나서는 촉수만 발달한 불가사리다. 해외여행은 이제 시들해졌고, 요사이 그녀는 골프에 미쳐있다. 그녀는 톡 하고 건드리면 자동으로 아파트와 골프 얘기가 튀어나오는 자동기계다. 그의 머릿속에는 예쁜 여자의 몸뚱어리가 가득하다. 그가 꿈꾸는 것은 젊은 여자와의 화끈한 정사다. 마누라를 안고 있을 때도 그는 이웃집 여자의 찰랑거리는 생머리를 잊지 못한다. 그의 지갑은 언제나 두둑하다. 그것이 여자를 유혹하는 가장 좋은 미끼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둘은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에 나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다.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것이 예수를 잘 믿는 길이라는 것을 그들은 믿으려 한다. 하나는 멍청하고, 다른 하나는 좀더 멍청하다..

길위의단상 2006.10.10

하늘과 땅 / 산도르 마라이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산다 불멸의 신적인 것을 가슴에 품고 있지만 방 안에 혼자 있으면 코를 후빈다 내 영혼 안에는 인도의 온갖 지혜가 자리하고 있지만 한번은 카페에서 술취한 돈 많은 사업가와 주먹질하며 싸웠다 나는 몇 시간씩 물을 응시하고 하늘을 나는 새들을 뒤좇을 수 있지만 어느 주간 신문에 내 책에 대한 파렴치한 논평이 실렸을 때는 자살을 생각했다 세상만사를 이해하고 슬기롭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때는 공자의 형제지만 신문에 오른 참석 인사의 명단에 내 이름이 빠져 있으면 울분을 참지 못한다 나는 숲 가에 서서 가을 단풍에 감탄하면서도 자연에 의혹의 눈으로 꼭 조건을 붙인다 이성의 보다 고귀한 힘을 믿으면서도 공허한 잡담을 늘어놓는 아둔한 모험에 휩쓸려 내 인생의 저녁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리고..

시읽는기쁨 2006.10.09

쇠비름

쇠비름꽃은 이번에 처음 보았다. 밭둑을 걸어가다가 발밑에 조그만 노란 꽃이 눈에 띄어 허리를 굽히고 보니 쇠비름꽃이었다. 뽑히고 발에 밟히며 농부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쇠비름도 이렇게 예쁜 꽃을 피운다는 걸 처음 알았다. 쇠비름이라면 나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맛의 추억이 있다. 중학교 다닐 때 외할머니는 이 쇠비름을 나물로 무쳐서 잘 해 주셨다. 보리밥에 고추장을 비벼 먹으면 몰랑하며 약간 미끌거리는 감촉과 함께 너무나 맛있었다. 당시는 내가 제일 좋아했던 나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먹느냐며 의아해 했는데 그러나 한번 맛을 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뒤로는 이 나물을 맛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아내에게 말했지만 한번 해먹어 보자고 대답하는데 아직 상에 오르지는 못하고 있다..

꽃들의향기 2006.10.08

이사하는 꿈

사무실의 자리를 옮기다. 옆방으로 옮겨달라는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다. 그런데 새로운 자리는 책상도 좁고 바닥도 울통불퉁하여 의자가 제대로 놓이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다. 사람들도 어색하기만 하다. 괜히 옮겼다는 후회를 하다. 집이 이사를 하다. 새로 이사한 집은 도심 가운데 '동아' 전철역 옆에 있는 한신아파트 100동 800호다. 집을 어떻게 찾아가느냐고 물으니 아내와 아이들이 그렇게 대답하다. 중학교 동창들이 그집으로 많이 찾아오다. 그런데 집에 들어가는데 벽을 기어올라서 창문으로 들어가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의심없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행동하다. 오늘 새벽에 꾼 꿈이다. 요사이는 직장을 옮기거나 이사하는 꿈을 연속으로 꾸고 있다. 대부분의 꿈이 무질서하고 의미없게 보이지만,이렇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꿈..

길위의단상 2006.10.08

2006 추석

올 추석은 8일 동안의 휴일이 주어졌다. 2일과 4일의 징검다리 근무일이 모두 재량휴업일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주와 영주의 처가와 고향집을 모두 다녀올 수 있었다. 어머님을 찾아뵙고 형제 친척들을 만나는 것이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힘들어지는 것 또한 어찌할 수 없다. 긴 거리를 오랜 시간 움직여야하는 몸의 피곤보다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또 병약한 모습의 어른들을 뵙게 되는 정신적 피로함이 훨씬 더하다. 이번 길에도 처가 쪽에서는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는 큰어머님과, 본가 쪽에서는 암투병중이신 이모부님을 병원으로 찾아뵈었다. 종이처럼 얇고 창백한 모습에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특히 치매 요양원에 계신 노인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나고 병들고 죽는 것이 생명을 가진 존재의 운명이..

사진속일상 2006.10.07

산책길의 동방신기

어제 저녁에는 아내와 같이 산책을 나갔다. 한강변의 늘 걷던 길을 벗어나 광진교를 건너 잠실 쪽으로 갔다. 가을 강바람은 시원했고, 서울의 야경 또한 볼만했다. 강북 쪽 강변에는 그런 여유 공간이 없지만, 강남 쪽 둔치는 자리가 넓어 여기 저기 자리를 잡고 앉아 가을밤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젊은이들은 무엇을 축하하는지 작은 불꽃을 밤하늘로 쏘아 올렸다. 우리도 강가에 앉아 조금은 소란한 그런 풍경을 재미있게 구경했다. 잠실교를 건너 돌아오려다가 좀더 걸어 내려갔다. 두 시간 정도 시간이 걸렸으니 아마 10km 정도는 걸었지 않았나 싶다. 아내가 발이 아프다고 해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종합운동장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운동장 안에서 무슨 콘서트가 열리고 있는지 안에는 여학생들의 환호성과 빛과 ..

사진속일상 2006.10.01

TAO[51]

타오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낳습니다. 타오가 낳은 만물을 옴직이게 하는 힘, 그 힘을 덕이라 부릅니다. 타오가 낳은 것을 덕이 기르는 것이지요. 기르고 키워서 모양을 만들고 존재할 수 있는 토양도 가꾸어 주지요. 그러기에 우리는 타오를 존경하고 덕을 소중히 여겨야 한답니다. 우리가 타오를 그의 덕을 존경함은 타오가 그의 덕이 우리에게 억지로 시키지 않기 때문이지요. 저절로 태어나서 그 본래의 힘을 심어 주기 때문이지요. 타오와 그의 덕은 법률이나 사회 도덕이 아닌, 마음 속에 흐르는 힘이랍니다. 그러니 타오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낳고, 기르다 마침내 그 열매가 맺히고 땅에 떨어지면 조용히 묻어 준답니다. 타오는 낳았으나 가지려 하지 않고 길렀으나 기대려 하지 않는답니다. 사람들 위에 있으나 지배하여 맘대..

삶의나침반 2006.09.30

백일홍

수녀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백일홍 꽃밭이 있다. 수녀님들이 제단 장식용으로 쓰기 위해 가꾼 꽃밭이다. 그런데 백일홍 꽃밭을 바라보면 왠지 마음이 푸근하고 편안해진다. 꽃이 깔끔하지 않고 자라는 키도 제각각이지만 멋 내지 않고 수더분한 인상이 마음씨 좋은 옆집 아줌마 같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백일홍은 다른 꽃에 비해 오랫동안 피어있다. 여름꽃이지만 가을이 짙어가는 지금까지도 볼 수 있다. 어떤 때는 “너, 아직도 피어있니?”하고 묻고 싶을 정도이다. 수녀원에서 백일홍을 심은 이유도 아마 이 탓이 아닌가 싶다. 오래 피어있다는 것이 꽃에게는 단점이기도 하다. 물론 사람의 기준이겠지만 그것은 꽃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수명이 짧은 꽃일수록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꽃들의향기 2006.09.29

언젠가는 / 제임스 카바노

언젠가는 떠나련다 자유로워지련다 무미건조한 것들을 지나 안전한 밋밋함을 떠나 연락처도 남기지 않으련다 황량한 광야를 가로질러 그곳에 세상을 떨구기 위해 아무런 근심 없이 떠돌련다 한가한 지도책처럼 - 언젠가는(Some Day)/ 제임스 카바노(James Kavanaugh) 새장 속에 새들이 있다. 그들은 새장 안에서 태어나 새장 안에서 죽는다. 그들은 새장 안 좁은 공간이 온세계라 알고 있다. 그중의 한 마리가 새장 밖의 세계를 꿈꾼다. 자유와 해방을 꿈꾼다. 항구에 정박한 배는 안전하고 편안하다. 그러나 그것이 배를 만든 목적은 아니다. 거센 바람과 거친 파도를 헤치며 전진할 때 배는 살아있다. 이 시를 읽으면 또한 갈매기 조나단도 연상된다. 사회에 잘 적응하는 사람보다는길들여지기를 거부하고 자주적 사..

시읽는기쁨 2006.09.28

분단시대의 올바른 인식

교양강좌 두 번째는 강정구 교수님을 초대하여 얘기를 들었다. 강 교수님은 지난해에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이 한창일 때 ‘6.25는 통일전쟁’이라고 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고, 대학 측에서는 직위해제 시켜 지금은 강의를 할 수 없는 처지다. 그 사건의 과정은 우리 사회 및 국민의식을 보여준 대표적인 것이었다. 토론과 논의를 통해 충분히 의견 수렴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반공의 성역은 역시 신성불가침임을 증명해 보였다. 진실을 찾는 학문의 영역에서조차 우리 사회는 아직 두터운 터부의 장막을 쳐놓고 있다. 주장의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한 인간의 사상의 자유를, 그리고 학문을 통한 논쟁조차 금기시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진실은 서로 다른 견해가 충돌할 때 드러나는 법이기..

길위의단상 2006.09.28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외롭지 않은 때가 언제 있었으랴. 그러나 가을이 되면 더욱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이 느껴지면 이 정체모를 괴물은 어디선가 스멀스멀 기어 나와 나를 에워싼다. 가을이 되면 어디엔가 숨어있던 외로움이 아픈 생채기를 만들며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손에 잡히지 않는 는개에 젖어들 듯 마음은 외로움에 빠져 헤어나기 힘들어진다. 가을의 외로움은 특정인에 대한 그리움 때문은 아니다. 가을의 외로움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독과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의 숙명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외로우니까 사람인 것이다.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시고, 갈대숲도 도요새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심지어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가을의 외로움은 채워지지 않은 영혼의 갈증이다. 인간..

사진속일상 2006.09.27

[펌] 행복은 이미 충분하다

어떤 한 경계에서 가슴 시린 쓰라린 아픔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법을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성공만을 바라고 바라는 대로 잘 되어지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겠지만, 사실 늘상 성공만 하고 바라는 바대로 이루기만 하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내면의 뜰은 공허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실패 속에서 또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나는 그 속에서 더 강인해 질 수 있을 것이고, 바라는 바가 좌절되어지는 그 속에서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지혜로움이 생겨나며, 세상을 얕보지 않을 수 있고 좀 더 겸손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요가를 가르치는 분이라거나 몸 다스리는 법에 대해 강의하는 분들 얘기를 들어보니 그 분들 비슷한 공통점이 어렸을 때 죽고 싶을 만큼 몸이 너무 ..

길위의단상 2006.09.26

TAO[50]

사람은 태어나서 살아가고 죽어서 떠나갑니다. 30살까지는 젊고 건강해서 삶과 친구가 되고 60살 넘어 30년 동안은 늙고 병들어 죽음과 친구가 되어 간답니다. 그 둘 사이, 30살부터 60살까지는 삶과 친구가 되었다, 죽음과 친구가 되었다 왔다 갔다 갈팡질팡한답니다. 왜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죽음과 친구가 되어 갈까요? 지나치게 삶에 집착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삶과 죽음이 같은 길에 있음을 알아 삶과 죽음, 모두에게 너그러운 사람은 여행을 가도 결코 맹수가 날뛰는 곳은 가지 않는다지요. 군대에 가도 결코 무기를 들어야 하는 곳에는 가지 않는다지요. 그러니 그 사람의 인생은 호랑이의 발톱과 마주치지 않으며 서슬 퍼런 칼날과 마주치지도 않는답니다. 그건 다 삶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삶을 소..

삶의나침반 2006.09.25

은총에 눈을 뜨니 / 구상

이제사 비로소 두 이레 강아지만큼 은총에 눈이 뜬다 이제까지 시들하던 만물만상이 저마다 신령한 빛을 뿜고 그렇듯 안타까움과 슬픔이던 나는 죽고 그 덧없음이 모두가 영원의 한 모습일 뿐이다 이제야 하늘이 새와 꽃만을 먹이고 입히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공으로 기르고 살리심을 눈물로써 감사하노라 아침이면 해가 동쪽에서 뜨고 저녁이면 해가 서쪽으로 지고 때를 넘기면 배가 고프기는 매한가지지만 출구가 없던 나의 의식 안에 무한한 시공이 열리며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소중하고 모든 것이 아름답다 - 은총에 눈을 뜨니 / 구상 '종교'보다는 '종교성'이라는 말이 좋다. '축복'보다는 '은총'이라는 말이 좋다. 벽돌로 지은 사원보다는 내 마음 안 그분의 거소가 더 진실되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

시읽는기쁨 2006.09.22

아침의 비틀기

두 번의 자명종이 울리고서야 잠에서 깬다. 아이도 아직 떠지지 않은 눈을 비비며 비틀비틀 화장실로 들어간다. 참 이상하다! 이런 규칙은 누가 만들었을까? 아침의 태양과 인사를 나눌 시간은 누가 빼앗아갔는가? 좀 늦게 일어나고, 게으름을 부리면 안 되는 걸까? 그러나 아이는 이런 일상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도리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믿을 것이다.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을 채찍질 하면서.... 시간에 맞추어, 종소리에 맞추어 생활해야 된다는 순치된 습관은 어릴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주범은 역시 학교다. 지각하면 혼이 나고, 결석이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개근상이 최고로 가치 있다고 배웠다. 그렇게 해서 산업사회의 길들여진 노동자로 자라났다. 기계에게나 어울릴 법한 그런..

사진속일상 2006.09.21

고려엉겅퀴

엉겅퀴는 나라를 지킨 공로로 스코틀랜드의 국화로까지 지정되어 있지만, 고려엉겅퀴는 이름 그대로 우리나라의 특산식물이다. 엉겅퀴라는 말이 주는 거친 이미지와는 달리 고려엉겅퀴는 생김새가 단아하고 예쁘다. 곤드레나물이라고도 하는데 어릴 때의 순은 맛있는 나물이 된다. 곤드레나물밥을 아직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밥과 섞어 먹으면 쌉싸레한 향기가 일품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보릿고개를 넘기는 구황식물이었을 것이다. 사진의 고려엉겅퀴는 10년 전에 후배와 같이 백운산에 갔을 때 만난 것이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지만 처음 그 이름을 알고 부르게 되는 만남은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아 있게 된다. 쌓아둔 것이 많아서 더욱 불편한 삶 누리고픈 것이 많아서 더욱 괴로운 삶 그것 말고도 우리에겐 버릴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꽃들의향기 2006.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