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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노동이 아니라 운동이야

아침 출근길이었다. 땀을 흘리며 무거운 신문뭉치를 나르던 한 청년이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이건 노동이 아니라 운동이야!”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렇게 자기암시를 하면서 일을 해야 하는지 청년의 얼굴을 안쓰럽게 쳐다보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같은 일을 하더라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지겨운 노동이 되기도 하고, 즐거운 운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청년의 말을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생존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언가의 일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일이라도 직업이 되면 대개 고되고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일에 매달려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자신의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소수의 혜택 받은 사람도 있겠지만, 현대 조직의 특성상 일에서 보람을 찾거나 즐기는..

길위의단상 2006.07.13

장맛비가 쏟아지다

태풍이 지나가고 나니 장맛비가 쏟아진다. 오늘 새벽부터 지금까지 서울 지방에는 시간당 최고 40 mm의 비가 내려 총 250 mm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경기 북부에 집중되었는데, 고양에는 한때 시간당 100 mm에 달하는 비가 퍼부어 몇 시간 동안에 총 300 mm 이상 내렸다. 지하철역이 침수되어 3 호선 지하철이 불통되고 도로 곳곳이 물에 잠겼다. 비가내리는 날이면 물에 취약한 터가 늘 걱정이 된다. 내 염려 여부와 관계없이 내릴 비는 내릴 테고, 피해 하나라도 줄이지 못할 것이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란 것이 거기에 매달려 불안하기만 하다. 좁은 땅이지만 자연 재해는 우신(雨神)이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희비 쌍곡선을 그리게 된다. 오늘은 대규모 FTA 반대 집회가 이곳 광화문을 중심으로 예정..

사진속일상 2006.07.12

인생 / 이선영

내 인생이 남들과 같지 않다고 생각됐던 때의, 외딴길로 밀려나 있다는 낭패감 그러나 내 인생도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을 때 이윽고 그 남다르지 않은 인생들이 남다르지 않게 어우러져 가는 큰길에 줄지어 서서 이 늘비함을 따라 가야 할 뿐 슬며시 도망 나갈 외딴길이 없다는 낭패감 - 인생 / 이선영 인생은 난해하고 복잡하다. 홀로 있어도, 함께 있어도 우리는 늘 갈증을 느낀다. 외딴길로 밀려나 있다는 낭패감에 큰길로 들어서면, 이제는 도망 나갈 외딴길을 찾지 못해 다시 낭패감에 빠진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제대로 된 길을 발견할 수 있을까? 아니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헤매기만 하다가 이 생을 마칠 것 같다. 그런 과정이 인생인가 보다. 인생이란 본래 그런 것인가 보다.

시읽는기쁨 2006.07.11

태풍이 지나간 아침

제 3호 태풍 에위니아(EWINIAR)가 어제 낮에 한반도에 상륙해서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다가 밤 10시에 홍천 부근에서 소멸하였다. 지난 7월 1일에 괌 남서쪽 1000 km 해상에서 발생한 뒤 10 일간의 일생을 마친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로는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어 큰 피해를 주지 않았다. 이번 태풍의 특징은 비구름이 한쪽으로 심하게 편향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어제 저녁 5시에 찍은 아래 비구름 사진을 보면 태풍의 중심은 충청남도 서천 부근에 있는데, 비구름은 동해안을 따라서만 활 모양으로 발달되어 있다. 태풍 중심이 서쪽 지방을 지나갔지만 경상도나 강원도 지역을 제외하고는태풍이 지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였다. 이곳 서울에서도 밤에는 태풍 중심이 100 km이내로 접근했건만 비..

사진속일상 2006.07.11

능소화

이곳 단독주택가의 골목길을 걸어가다 보면대문가에 능소화가 피어있는집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노란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진 능소화는 지금의 계절과 잘 어울리는 꽃이다.나팔 모양으로 생겼는데 영어 이름도'trumpet creeper'라고 한다. 한때는 이 꽃의 꽃가루가 실명의 원인이 된다고 해서 많이 베어지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이 동네에는 아직도 능소화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능소화는 옛날에는 양반의 꽃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능소라는 한자 뜻이 웅비의 기상을 가졌다는데 과거에 급제해서 입신양명하려는 양반들과 어울리는 꽃이어서 그랬는 것 같다. 따라서 상민들이 이 꽃을 키우다가는 곤장을 맞기 일쑤였다고 한다.신분사회의 슬픈 단면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능소화는덩굴식물로 다른 나무라든가 인공의 구조물을 타고..

꽃들의향기 2006.07.10

TAO[39]

하나는 숫자 중에 가장 작은 숫자지요. 하지만 하나는 모든 수의 시작이며, 모든 수의 바탕이랍니다. 타오는 모든 것을 낳아 기르는 힘. 타오에서 하나를 받은 하늘은 맑고 맑은 푸른 하늘이 되었답니다. 하늘에서 하나를 받은 땅은 넓고 넓은 대지가 되었답니다. 대지에서 하나를 받은 신은 순수 그 자체, 골짜기에는 물이 넘쳐흐르고 그곳에 사는 모든 것은 생명력으로 충만했답니다. 임금은 임금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하나의 길을 걸어갔답니다. 그런데 차츰차츰 욕망의 문명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타오의 하나를 멀리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를 잃은, 맑고 맑은 푸른 하늘은 점점 시꺼멓게 되었답니다. 이러다 하늘이 무너지면 어쩌죠? 넓고 넓은 대지는 점점 황폐해졌답니다. 이러다 땅이 갈라지면 ..

삶의나침반 2006.07.10

공중에 뜬 수도꼭지

점심을 먹으러 간 어느 이태리 음식점 마당에서 공중에 떠있는 수도꼭지를 보았다. 공중부양을 하고 있는 모습도 신기했고,파이프도 없는데물이 계속 쏟아지고 있는 모습은 더욱 신기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원리는 이해되었는데 상식과 고정관념을 깨는 발상이 무척 재미있었다. 비록 눈속임이기는 하지만 저 그림은 수도물이 나오기 위해서는 파이프가 있어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비웃고 있다. 또한 그런 정상으로부터의 일탈이사람을 즐겁게 해준다. 그런데 점심으로 먹은 스파게티는 정말 입에 맞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맛있다면서 잘도 먹는데 이런 곳에 오면 세대 차이만 듬뿍 맛보고 간다. 그러나 그것도 서양 음식에 대한 하나의 고정관념일지 모른다. 음식 자체가 아니라 색다른 것에 대한 거부감이 원인일 수도 있다. 편안한..

사진속일상 2006.07.07

카미노 데 산티아고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야곱이 예수의 처형 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스페인까지 걸어왔다고 한다. 야곱은 후에 순교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묻혔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졌다. 그런데 9세기 초, 어느 기독교 수행자가 외진 골짜기에서 그의 유골을 발견하면서 그 위에 성당을 짓고 성지로 되었다. 그때로부터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산티아고로의 성지순례를 시작했고, 교황 알렉산더 3세는 산티아고를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기독교 3대 성지로 선포했다. 12세기에 순례는 절정에 달했고, 순례자를 위한 숙소가 길 위에 생겨났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소수의 사람들만 이 길을 찾았으나 1987년 유럽연합이..

길위의단상 2006.07.07

퇴근길의 걷기

날씨가 좋고 시간 여유가 있으면 퇴근하다가 중간에서 전철을 내려 한강으로 나간다. 뚝섬역에서 내리면 바로 청담대교가 있는 뚝섬유원지 지역인데 거기서부터 집에까지 가는데 거리로는 약 4 km, 시간으로는 1 시간 정도가 걸린다. 요사이는 낮이 길어서 저녁 8 시가 되어도 주위가 훤하다. 서울에 살면서 제일 아쉬운 점은 조용히 걸을 만한 길이 적다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에 남산길이라든가 서울숲과 같은 큰 공원이 생기긴 했지만 자동차 소음이나 매연을 피할 수 있는 장소는 드물다. 그나마 가장 접근성이 좋은 곳이 한강이나 여러 천변들이다. 그것들마저 없다면 서울은 더 삭막한 도시가 될 것이다. 장마철이어서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 덮여있다. 그래도 자주 내리는 비로 인해 부옇게 매연이 내린 칙칙한 풍경은 사라져서..

사진속일상 2006.07.06

조개나물

조개나물은 할미꽃처럼 양지 바른 무덤가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본 대부분의 경우도 무덤의 잔디 사이에서였다. 조개나물은 줄기와 잎이 흰털로 빽빽이 덮여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보얗게 보일 정도로 털이 가득 나 있다. 그리고 잎 사이에 작은 자주색 꽃이 돌아가며 피어 있다. 그 꽃이 핀 모양이 마치 조개가 살을 쏘옥 내밀고 있는 모습과 닮아서 조개나물이라고 이름이 붙었으리라. 조개나물 삼 형제가 나란히 키를 맞추며 서 있다. 깨끗이 단장되어 있는 천진암의 한 묘역이었는데 잔디를 깎는 사람이 이 꽃은 일부러 피해 간 것 같다. 그 마음씨가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

꽃들의향기 2006.07.05

뒤편 / 천양희

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퍼진다 저 소리 뒤편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 뒤편 / 천양희 나이가 든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도리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그리고 화려함 뒤에 숨어있는 아픔을 읽을 줄 아는 것이다. 행복한 웃음 뒤에 있는 쓸쓸함과 외로움을 보는 일이다. 남루한 행색의 나그네에게도 나름대로의 기쁨과 감사가 있음을 이해하는 일이다. 아름다운 종소리 울려퍼지는 성당 안에서는 지금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하는 일이다.

시읽는기쁨 2006.07.04

독백

내가있는 이곳이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 내가 왜 여기 있지? 마치 혈관 속에 모래가 들어간 듯 마음은 온통 서걱거린다. 내가 터를 정하고, 손수 집을 짓고, 땅과 혼이 들어간 곳인데, 사방을 둘러보면 내 손길 닿지 않은 곳이 없는데 마치 못 올 곳에 온 것처럼 서먹서먹하다. 밖은 장맛비가 내리는 저녁이다. 철수를 생각하니 더욱 허전해진다. 그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나에게는 내 전부를 걸었던 이상의 포기와 마찬가지다. 선전포고한 전쟁에서 항복의 의미이기도 하다. 단지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두려운 것이다. 슬픔에 빠지게 하는감정에는 집착이 들어있다. 애착, 비애, 고독, 쓸쓸함과 같은 진한 감정들도 마찬가지다. 인정하기 싫지만 버린다고 하면서 또 다른 집착에 매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상승할 때보다..

참살이의꿈 2006.07.03

한 장의 사진(5)

오늘 신문 1 면에 실린 사진 한 장이 눈을 붙잡는다. 중국과 티베트를 연결하는 칭짱(靑藏)철로가 난공사 끝에 드디어 개통되어 운행을 시작했는데, 고원지대를 지나가는 기차를 티베트 아이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는 사진이다. 티베트고원을 통과하는 이 철길은해발 4천 미터 이상인 지대를 지나는 곳만도 거의 1천 km가 된다는데 '천로(天路)'라고 부를 정도로 지구상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철로라고 한다. 이 열차 개통에 대해 티베트 망명정부측에서는 문화적 대학살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반면에 중국에서는 낙후된 티베트를 개발하고 문명의 혜택을 전하는 전령사 역할을 할 것으로 선전하고 있다. 중국은 1950 년에 티베트를 침략하고 점령했다. 달라이라마는 인도로 피신하여 망명정부를 세웠고,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억압정책..

길위의단상 2006.07.03

엉겅퀴

엉겅퀴는 무언가 강인한 생명력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이름이 주는느낌 탓도 클 것이다. 엉겅퀴 잎은 험상스럽게 생겼고 가시도 있어서쉬이 손이 가지 않지만, 그러나 꽃은 부드럽고 예쁘다. 어찌보면 이름 때문에 괜히 손해를 보는 것 같다. 초여름이 되면 우리나라 들판 어디에서나 피어나서 쉽게 볼 수 있는 우리와 친근한 꽃이다. 엉겅퀴는 여러가지 약효를 지니고 있는데 그 중에서 지혈작용 때문에 아마도그런 이름이 붙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농사일을 하다가 손을 베이게 되면 엉겅퀴 잎을 찧어서 상처를 눌러 주었다고 한다. 엉겅퀴는 피를 엉기게 한다는 말로 자연스레 연결된다. 척박한 땅에서 억센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엉겅퀴는 온갖 핍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민초를 또한 연상시킨다. 그런 면에서 엉겅퀴는 서러움과 한의 ..

꽃들의향기 2006.07.01

TAO[38]

덕(德)이라고 함은 변화무쌍한 타오의 에너지가 이 세상에서 빛을 발하는 힘(power)을 말합니다. 타오의 힘, 덕과 맺어진 사람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자신만 바라본답니다. 다른 데 한눈팔지 않으니 내면의 에너지가 가장 환한 빛을 발할 수 있지요. 가장 빛나는 힘, 이것이 가장 밝은 덕이지요. 하지만 세상의 도덕가들은 덕을 의식하며 자신이 아닌, 덕만 바라보니 에너지가 부드럽게 흐르지 못한답니다. 에너지가 부드럽게 흐르지 못하니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없지요. 이것은 가장 어두운 덕이지요. 하루하루의 생활도 마찬가지랍니다. 억지로,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에너지가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한답니다. 타오의 힘을 믿고 억지로 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큰 힘을 얻어 그것이 삶의 희망으로 이어집..

삶의나침반 2006.06.30

아까시가 죽어간다

교정에 오래된 아까시나무가 있다. 고목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키도 크고 오래 되었다. 아까시의 수명이 40여 년 정도라니 이 나무의 나이도 그쯤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근래에 이 아까시의 나뭇잎이 노랗게 변하며 땅에 떨어지고 있다. 이렇게 아까시나무가 죽어가고 있는 것은 전국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건강 때문에 매일 산에 다니는 아내에게서도 같은 애기를 들었다. 바닥에 떨어진 노란 아까시 낙엽이 산길을 가득 덮고있더라는 것이다. 신문 보도를 보니 이런 현상은 이미 4, 5 년 전부터 진행되어 왔다고 한다. 산림 관계자들은 이제야 관심을 가지고 원인 찾기에 나선 모양이다. 여기서도 천대 받는 아까시나무의 현실을 볼 수 있다. 만약 소나무나 다른 나무였다면 이렇게까지 무관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까시는..

사진속일상 2006.06.29

Dust in the wind

'Dust in the wind'를 듣는다. 이 노래는 내가 좋아하는 팝 중의 하나이다. 특히 사라(Sarah Brightman)의 목소리로 듣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에 이 노래를 눈물을 흘리며 듣곤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무엇인가의 상실감 때문이었을까, 인생의 허무함 때문이었을까, 하여튼 그때는 이 노래를 들으며 무척 슬퍼했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그 슬픔을 즐기기도 했었다. 지금은 그런 기분이 많이 정리되었지만 기본 정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 노래는 경박하게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특효약이다. ‘I close my eyes / 난 눈을 감아요 Only for a moment, and the moment's gone / 잠깐 동안, 그리고 그 순간은 지나가죠 All my dreams..

길위의단상 2006.06.28

강가에서 / 김수영

저이는 나보다 여유가 있다 저이는 나보다도 가난하게 보이는데 저이는 우리집을 찾아와서 산보를 청한다 강가에 가서 돌아갈 차비만 남겨놓고 술을 사준다 아니 돌아갈 차비까지 다 마셨나보다 식구가 나보다도 일곱 식구나 더 많다는데 일요일이면 빼지 않고 강으로 투망을 하러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반드시 4킬로 가량을 걷는다고 한다 죽은 고기처럼 혈색없는 나를 보고 얼마전에는 애 업은 여자하고 오입을 했다고 했다 초저녁에 두번 새벽에 한번 그러니 아직 늙지 않지 않았느냐고 한다 그래도 추탕을 먹으면서 나보다도 더 땀을 흘리더라만 신문지로 얼굴을 씻으면서 나보고도 산보를 하라고 자꾸 권한다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는데 남방셔츠 밑에는 바지에 혁대도 매지 않았는데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고 그는 나보다도 짐이 무거..

시읽는기쁨 2006.06.27

장마가 그린 그림

지난 주부터 장마가 시작되었다. 최근에는 장마의 시작과 끝도 불명확해져 기상 관계자들을 당황케 한다고 한다. 게릴라성 폭우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란다. 어찌 됐든 기상학적으로는 한반도가 장마전선의 영향을 받고 있는 기간이 장마철이라고 하면 맞을 것이다. 다만 장마 끝, 햇빛 쨍쨍이라는 공식은 더 이상 들어맞지 않는다. 밤에 비를 뿌리더니 오늘 낮은 하루 종일 이슬비가 오락가락한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하다. 길 위에 고여있는물에떨어지는 빗방울이 둥근 파문을 만들고 있다.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이 순간 아름다운 그림으로 변했다. 무엇인가에 젖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일생에 한 번은 무엇엔가에 온전히 젖어볼 일이다. 내가 너에게 온전히 젖을 수 있다면 내 삭막한 마음에는 너를 그리..

사진속일상 2006.06.26

솔나물

솔나물은 여름꽃이다. 꽃대를 중심으로 자잘한 노란꽃이 총총이 달려있다. 다른 꽃들의 노란색과 달리 솔나물의 노란색은잔잔하고 부드럽다. 그래서 산길을 따라노랗게 피어있는 솔나물은 온통 녹색 천지의 세상에서 눈을 환하게 해준다. 솔나물이라는 이름은 잎이 솔잎 모양으로 생겨서 붙여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름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어린 순은 나물로도 먹는다고 한다.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이면 꽃대가 가늘고 약해선지 솔나물은 기우뚱 하고휘어져 몸을 눕힌다. 그 모습이 많은 꽃을 달고 싶어 무리를 하다가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는 나 자신과 닮은 듯하여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꽃들의향기 2006.06.26

밤꽃 향기에 젖다

여기는 밤꽃 향기에 젖어 있습니다. 산에서도 들에서도 어디서나 밤나무를 볼 수 있고, 마을의 정자나무도 밤나무입니다. 밤꽃 향기는 산과 들을 채우고는 넘쳐 흘러 마을로 밀려옵니다. 마을은 온통 야릇한 밤꽃 향기의 바다에 잠깁니다. 거실에 가만 누워 있으면 그 눅눅한 향기에 마취가 될 정도입니다. 향기를 무게로 잴 수 있다면 밤꽃 향기는 쇳덩이 마냥 무거운 것 같습니다. 그 향기에 취한 사람들의 발걸음 또한 무거워집니다. 그것은 뭔가 호기심을 일으키면서 무언가가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듯한 냄새입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 무겁습니다. 오전에 밭일을 하러 나갔지만 1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들어와 버렸습니다. 머리가몽롱해져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생겼습니다. 방에 들어와 피곤한 몸을 누이며 ..

참살이의꿈 2006.06.25

TAO[37]

타오는 억지로 하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모든 것을 새롭게 바꿔 주지요. 그리고 그 새로움은 저절로 균형을 잡아 가지요. 그러니 굳이 사람들에게 억지로 할 필요가 없답니다. 마찬가지로 타오와 함께 하는 리더가 타오의 움직임에 모든 것을 맡긴다면 아랫사람들에게는 절로 평화가 찾아온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달라붙은 욕망의 덫을 쓸데없이 헤집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스스로 덫에서 빠져나와 소박한 삶을 누리게 될 테니까요. 道常無爲而無不爲.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노자는 천성에 대한 낙관주의자이다. "그대로 두어라!" - 이 말은 천도(天道)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가까이는 가정에서 내 자식들에게 하는 간..

삶의나침반 2006.06.23

종교 신념 환자

이 시대의 가장 반종교적인 과학자라면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아닐까 싶다. 우리들에게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생물학자인데, 종교와 종교적 신념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며 과학적 사고로 세상을 보기를 강조하는 과학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종교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그러나 새겨들어야 할 부분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종교인들이면 그의 비판에 한 번쯤 귀를 기울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종교 교리를 정신 바이러스에 비유하고, 종교인을 잘못된 신념 환자들이라고 부른다. 그에게 있어 종교 활동이란 정신적 사기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미숙한 정신이며, 아직도 청동기 시대를 살고 있는 어리석은 정신이다. 그는 9. 11 테러로 상..

참살이의꿈 2006.06.22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 이문재

햇볕에 드러나면 짜안해지는 것들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햇살이 닿으면 왠지 슬퍼진다 실내에 있어야 할 것들이 나와서 그렇다 트럭 실려 가는 이삿짐을 보면 그 가족사가 다 보여 민망하다 그 이삿짐에 경대라고 실려 있고, 거기에 맑은 하늘이라도 비칠라치면 세상이 죄다 언짢아 뵌다 다 상스러워 보인다 20대 초반 어느 해 2월의 일기를 햇빛 속에서 읽어보라 나는 누구에게 속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진다 나는 평생을 2월 아니면 11월에만 살았던 것 같아지는 것이다 -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 이문재 인생은 고단하고 슬프다. 겉으로는 웃음으로 가리고 있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모두 외롭고 아픈 존재들이다.속을 감추려 우리는 양파처럼 수많은 껍질로 내면을 감싸고 있는지 모른다. 인생..

시읽는기쁨 2006.06.21

벌노랑이

벌노랑이는 석 장의 노란색 꽃잎으로 되어 있다. 키는 60 cm 정도로 자란다. 꽃의 모양은 무척 귀엽고 앙증맞다. 색깔은 노란색 꽃들이 보통 그렇지만 샛노랗다는 표현대로 눈을 부시게 한다. 꽃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갓난아이의 얼굴이 떠올라 절로 미소가 머금어지며 쉽게 눈을 떼지 못한다. 벌판의 노란 것들이라는 뜻으로 벌노랑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아니면 꽃의 생김새가 노란 벌을 닮아서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하늘에서 내려온 노란 별이라는 이름이 변해서 벌노랑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을 해 본다. 경복궁 서쪽 뜰에는 이 벌노랑이가 가득 피어있다. 인공적으로 파종한 것이지만 그래도 시원하게 피어있는 이 꽃을 보러 일부러 길을 돌아 지나가곤 한다.

꽃들의향기 2006.06.20

뱀은 여전히 두렵다

풀을 베러 현관을 나서는데 바로 앞에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여기가 뱀이 많긴 하지만 한낮에 이렇게 집 앞에까지 나와있는 것은 처음이다. 갑자기 뱀을 맞닥뜨려서 깜짝 놀랐다. 뱀도 놀랐는지 처음에는 꼼짝도 안 하다가 소리를 지르니 스르르 도망을 간다. 길이가 거의 1 m나 되는 큰 뱀이다. 뒤따라가며 위협을 해서 쫓아내었다. 뱀은 생긴 모양 자체가 징그럽고 섬뜩하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괜히 기분이 좋지 않고 적대적인 느낌이 든다. 특히 길을 가다가 갑자기 발 밑에서 뱀을 만나게 되면 공포심은 극에 달한다. 아마 우리들 유전자에는 뱀에 대한 경계를 위해 공포심이 각인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선천적 본능이 아닐 수도 있다. 갓난아이를 데리고 밭일을 하러 나간 여자가 있었다. 아이를 ..

참살이의꿈 2006.06.19

풍경(3)

썰물 때 바닷가 갯벌은 생명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조수의 들고남에 따라 생명이 움직인 자국들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었다. 갯벌은 화판이 되고, 바다와 뭇 생명들은 신의 손이 되어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 무엇하러 다니느라 이런 길을 만들었을까? 인간은 직선의 길을 만들지만 자연은 곡선을 만든다. 곡선은 부드럽다. 그리고 곡선에는 여유로움과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이 멋진 그림은 누가 그렸지? 어느 유명한 화가가그린 나무도 바다가 그린 이것 만큼 아름다운 것은 보지 못했다. 아마 바다는 진심으로 나무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나 보다. 이건 누구의 집이지? 흙을 파내서 둥글게 울타리를 쌓고 자신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저 구멍 속으로 들어가면 따스한 스위트 홈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거기는 늘 파도 소리..

사진속일상 2006.06.17

패자의 눈물

월드컵이 시작되고 우리나라는 토고와의 첫 경기에서 2:1로 이겼다. 축구 열풍이 다시 온 나라를 태풍처럼 몰아치고 있다. 승리를 기원하고 축하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어떨 때는 좀 지나치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4 년 전 우리나라가 4 강까지 올라간 월드컵 때는 나는 우리나라 경기를 한 게임도 보지 않았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기도 했지만, 온 나라 사람들이미쳐버리지 못해 안달하는 듯한 분위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중계를 애써 외면했었다. 그 시간에는 다행히 서로 공감하는 사람이 있어서 같이 구석에서 술을 마시거나 야외에 나가 있었다. 그때는 삐딱한 그런 분위기를 즐겼다. 중계가 있던 어느 날의 저녁 시간이 기억난다. 지하철을 탔는데 승객은 서너 사람밖에..

길위의단상 2006.06.16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 이기철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 놓아보렴 입던 옷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 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벚꽃 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 놓아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놓고 사랑도 미움도 벗어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보렴 더 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도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통장도 벗어놓고 벚꽃 그늘처럼 청정하게 앉아보렴 그러면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는 우리 삶 벌떼 잉잉거리는 벚꽃처럼 넉넉해지고 싱싱해짐을 알 것이다 그대..

시읽는기쁨 2006.06.15

TAO[36]

타오는 움직입니다. 아주 신비롭게 움직이지요.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신비로움 속에서 이 세상 돌아가는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답니다. 날뛰는 것은 더 날뛰게 하세요. 그럼 기어갈 테니. 강한 권력에는 더 강한 힘을 쥐어 주세요. 그럼 약해질 테니. 퍼지고 있는 것은 더 퍼지게 놓아두세요. 그럼 수그러들 테니. 그러니 만약 갖고 싶은 게 있다면 먼저 많이 주어야 하지요. 부드러움이 딱딱함을 녹인다는 진리, 약함이 강함을 누른다는 진리, 그것은 모두 타오의 신비로운 움직임 때문이지요. 아름답지만 눈부시지 않은 부드러움 때문이지요. 아름다운 물고기가 깊은 연못을 떠나 살 수 없듯이 눈부시도록 서슬 퍼런 칼날은 칼집을 떠나면 금새 무디어진답니다. 그러니 제발 눈부신 칼은 제자리에 넣어 두세요. 아름답지..

삶의나침반 2006.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