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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본느낌

마이너 필링스

샌. 2026. 1. 20. 14:50

이 책의 작가는 캐시 박 홍(Cathy Park Hong)으로 이름에서 나타나듯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의 부모는 1966년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캐시는 1976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대학에서 여러 분야의 예술을 공부했으며 현재는 시인으로 시를 쓰며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 

 

작가는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성장하면서 경험한 인종차별과 그로 인해 내면화된 트라우마를 고백한다. '소수적 감정'으로 번역될 수 있는 '마이너 필링스'는 일상에서 겪는 인종적 체험의 앙금이 쌓이고 내가 인식하는 현실이 끊임없이 의심받거나 무시당하는 것에 자극받아 생긴 부정적이고, 불쾌한 인종화된 감정이다. 이를테면 어떤 모욕을 듣고 그게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뻔히 알겠는데도 "그건 전부 너의 망상일 뿐"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 소수적 감정이 발동한다. 그것은 굴욕과 수치심, 분노, 좌절, 불안, 자기 회의 등을 동반한다.

 

책에는 작가가 체험한 여러 인종차별 사례가 등장한다. 나는 1990년대에 독일에 한 달간 연수를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동양인을 은근히 깔보고 조롱하는 눈길을 느꼈다. 내 자격지심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책에서 작가가 그런 상황이 되면 자기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게 된다는 얘기에 공감이 되었다. 2010년대에 뉴질랜드에 갔을 때는 직접적인 협박을 받기도 했다.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일찍 마치고 일행과 떨어져 길거리에 있는데 일단의 젊은이들이 다가와서 뭐라고 지껄이며 위협을 가했다.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는 소리 같았다. 그중에 한 놈은 주먹을 쳐들고 내리칠 기세였다. 짧게 소동을 부리다 사라졌지만 유색인종에 대한 멸시에 많이 놀랐다. 하물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오죽하랴 싶다.

 

서구가 제3세계에 가한 만행은 씻을 수 없는 죄과로 남아 있다. 문명세계로 이끌었다고 자부하는 대가치고는 너무 많은 희생이 따랐다. 이런 서구의 파괴적인 유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다른 인종이나 이데올로기를 적으로 돌리면서 극단적으로는 우리 자신마저 적으로 삼게 만든다. 트럼프에 의해 새로운 인종주의와 국가주의가 도래하는 것 같다. 앞으로 경제 상황 같은 외적 조건이 악화하면 서구 사회에서 희생양으로 무엇을 선택할지 뻔하다. 호모 사피엔스가 인종의 편견을 극복하기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하면서 미국으로 향했지만 실상은 생각보다 심각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느낀다. 동시에 마이너 필링스는 딴 나라가 아니라 우리 땅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동남아 노동자들이 들어와서 일하고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어떤지 돌아본다. 다른 나라에서는 피해자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작가는 인종 편견과 고정관념에 맞서 용감하게 싸운다. 용기가 없었다면 이 책을 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성장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고 미국 사회에서 인정받는 인물이 된 작가가 이럴진대 다른 사람의 고뇌는 어떠했을까. 책 말미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는 일종의 연성 파놉티콘(panopticon, 소수의 감시자가 중앙 탑에서 다수의 수용자를 보이지 않게 감시해 규율을 내면화하도록 설계된 원형 감옥) 속에서 산다. 이것은 아주 미묘해서 우리는 이것을 내면화하여 자기를 감시하며, 바로 이것이 우리의 조건부 실존을 특징짓는다. 우리가 여기서 4세대째 살았어도 우리의 지위는 여전히 조건부이다. 만족을 모르고 사들이는 물질적 소유물이든 주류사회에 편입했다는 마음의 평화로서의 소속감이든 빌롱인(belonging, 소유물과 소속감이라는 이중 의미)은 언제나 약속되며, 아슬아슬하게 손 닿지 않는 곳에 있어서 우리가 유순하게 처신하도록 유도한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의식이 해방되려면 우리는 이 조건부 실존으로부터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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