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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나침반

사기[64]

샌. 2026. 1. 31. 10:39

노나라 주가(朱家)는 고조와 같은 시대 사람이다. 노나라 사람이 모두 유가로써 가르쳤으나 주가만은 협객으로서 소문이 났다. 그가 숨겨 주어 목숨을 건진 호걸만도 100명을 헤아리고, 그 밖에 평범한 사람들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러나 그는 평생 자기 재능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덕행에 스스로 즐거워했다. 오히려 전에 자신이 은혜를 베푼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될까 두려워했다. 남의 어려움을 도울 경우에는 우선 가난하고 신분이 천한 사람부터 시작했다. 그의 집에는 남아도는 재산이 없고, 옷은 낡아서 무늬도 온전하지 않았으며, 먹는 것은 두 가지 이상의 반찬을 먹지 않고, 타고 다니는 것도 소달구지에 지나지 않았다. 남이 위급한 상태에 놓인 것을 보면 진심을 다해 구제하고, 자기 일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일찍이 몰래 계포 장군을 위협에서 벗어나게 한 적이 있었다. 계포는 존귀한 신분이 된 뒤에 그를 찾았지만 끝내 만나지 않았다. 함곡관 동쪽 지역 사람치고 목을 늘이고 그와 사귀기를 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 사기(史記) 64, 유협열전(游俠列傳)

 

 

유협(游俠) 또는 협객(俠客)이란 자신의 이익보다 공의를 추구하면서 억울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불의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법을 무시하고 살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가 순수했기에 사람들은 의인으로 평가하며 존중한다. 우리가 의사(義士)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사마천은 '유협열전'을 쓰면서 이렇게 말한다.

"유협은 그 행위가 비록 정의에 부합되지는 않아도 그들의 말에 믿음이 있고 행동은 과감하며, 한번 승낙한 일은 반드시 성의를 다해 실천하고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남에게 닥친 고난에 뛰어들 때에는 생사와 존망을 돌아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뽐내지 않고 그 덕을 자랑하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유협은 춘추시대부터 등장했고 통치자들에게는 마땅찮은 존재였다. 사마천 시대였던 한 무제도 마찬가지였다. 사마천이 무제에게서 형벌을 받은 이유를 보면 약간의 유협 기질이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유협의 역할을 사마천은 높이 평가한다. '유협열전'에는 주가를 비롯해 여러 명의 유협이 나온다.

 

어느 시대에나 권력자는 힘없는 백성을 억압하고 수탈한다. 반하여 유협은 사회 질서 유지가 아닌 대의를 기반으로 행동한다. 권력자가 아니라 민중의 편에 서서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백성을 위한다고 하면서 뒤로는 호박씨를 까는 쥐새끼 같은 인간이 얼마나 많은가. 불의를 응징하는 유협이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부 유협은 따르는 사람들을 규합해 나라를 뒤집어엎기도 했다. 그러나 권력을 잡으면 대부분이 사나운 얼굴로 변하고 민중의 적이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유협은 유협인 채로 죽어야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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