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바위 / 유치환 본문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 바위 / 유치환
시인이 이 시를 쓴 때는 1940년대 초로 일제의 식민지 정책이 가장 악랄해진 시기였다. 문인들은 일제에 협조하며 식민지 청년을 전쟁터로 내모는 글을 쓰도록 강요받았다. 일부는 일제에 부역했고, 일부는 절필이나 도피를 하기도 했다. 캄캄하고 암울한 시대에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시대 상황을 생각하면 이 시를 쓸 당시의 시인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될 듯도 싶다. 바위가 되고 싶다는 현실적인 소망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양심의 소리에 부끄럽지 않겠다는 외침이 아닐까.
'생명의 서'에서 보였던 시인의 초월 의지가 여기서는 끝간 데까지 간 느낌이다. 죽어서 바위가 되리라는 것은 지금 바위가 되고 싶다는 바람에 다름 아니다. 인간이 사는 곳은 어느 곳 어느 때나 야만 세상이기 마련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상호간 욕망의 충돌로 불꽃이 튄다. 그 불꽃은 상대를 태우고 자기 자신도 불사른다. 이럴 때 연약한 영혼은 무엇을 지향하게 될까. 어제 산책길에는 이 시를 읊으며 걸었다. "바위가 되리라"에 공감이 되어선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옆을 지나치던 사람이 무슨 일인가,라고 돌아봤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