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낙화 / 조지훈 본문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낙화 / 조지훈
조지훈 시인의 작품을 연속으로 찾아보게 된다. '완화삼' '승무'에 이어 이번에는 '낙화'다. 가슴을 저미게 하는 이 시들은 틈날 때마다 암송하며 즐긴다. 청록파 시인들의 서정성과 애상이 늙바탕에 들어선 내 마음 무늬와 잘 어울린다.
그래선지 이번에는 '묻혀서 사는 이의 / 고운 마음을'이라는 연이 귀하게 다가온다. 묻혀서 산다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현재도 마찬가지고, 아마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라 해도 좋겠다. 그걸 시인이 일깨워 주면서 내 마음에 따스하면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시를 향유하는 즐거움이라 하겠다.
* '우련'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특별히 가엾게 여김'이라 나와 있다. 한자로는 '優憐'이라 쓴다. 그런데 '우련하다'라는 형용사는 '빛깔이 엷고 희미하다'라는 뜻이다. '우련하게 붉다'가 무엇인지 감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