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사기[66-2] 본문
그때가 되어 서문표가 물가로 나갔다. 그곳에는 삼로와 관속과 호족과 마을의 부로가 모두 모였으며, 구경 나온 백성도 2000~3000명은 되었다. 무당은 노파로 일흔 살이 넘었다. 여제자 10여 명이 따르고 있었는데 모두 비단으로 된 홑옷을 걸치고 무당 뒤에 서 있었다. 서문표가 말했다.
"하백의 신붓감을 불러오면 그녀가 예쁜지 미운지 보겠소."
장막 안에서 처녀를 데리고 나와 서문표 앞으로 왔다. 서문표는 그녀를 본 뒤 삼로와 무당과 부로들을 돌아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 처녀는 예쁘지 않으니 수고스럽겠지만 무당 할멈은 하수로 들어가서 하백에게 '예쁜 처녀를 다시 구해 다른 날에 보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려 주시오."
바로 이졸들을 시켜 무당 할멈을 안아서 하수 속으로 던졌다. 조금 있다가 서문표가 말했다.
"무당 할멈이 왜 이렇게 꾸물거릴까? 제자들은 그녀에게 가 보라."
다시 제자 한 명을 하수 가운데로 던져 버렸다. 조금 지나서 말했다.
"제자가 왜 이리 꾸물거릴까? 다시 한 사람을 보내 그녀에게 가게 하라."
또다시 제자 한 명을 하수 속으로 던졌다. 모두 세 명을 던지고 서문표가 말했다.
"무당과 제자들은 여자이기 때문에 사정을 말씀드리기가 어려울 것이오. 수고스럽지만 삼로가 들어가서 하백에게 말씀드려 주시오."
다시 삼로를 하수 물속으로 던졌다. 서문표는 붓을 관에 꽂고 몸을 경처럼 굽혀 물을 향해 오랫동안 서 있었다. 곁에서 보고 있던 장로와 아전이 모두 놀라고 두려워했다. 서문표가 돌아보며 말했다.
"무당과 삼로가 모두 돌아오지 않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다시 아전과 호족 한 사람씩을 물로 들어가 재촉하려 하니,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이마가 깨져 피가 땅 위로 흐르고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다. 서문표가 말했다.
"좋다. 잠시 머물며 잠깐만 더 기다려 보자."
조금 있다가 서문표가 다시 말했다.
"아전들은 일어서라. 하백이 손님들을 오래 머물게 하는 것 같다. 너희는 모두 돌아가라."
업현의 관리나 백생은 크게 놀라고 두려워했으며 이때부터 감히 다시는 하백을 위하여 아내를 얻어 주자고 말하지 않았다.
- 사기(史記) 66-2, 골계열전(滑稽列傳)
서문표(西門豹)는 전국시대 위나라 사람이다. 서문표가 업 지방의 현령이 되어 부임해 보니 하수의 신인 하백(河伯)에게 처녀를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 업의 토호 세력과 무당이 결탁하여 백성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재물을 빼앗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업 지방은 딸을 데리고 도망가는 집이 많아지며 점점 가난해져 갔다. 서문표는 부임하자마자 이 악습을 위와 같은 방법으로 단칼에 도려냈다.
하백에게 처녀를 바치는 날, 서문표는 무당과 제자를 비롯해 업의 토호 세력인 장로를 하백에게 보고하고 오라는 핑계를 대며 차례로 수장했다. 통쾌한 척결이었다. 순리적으로 해결하려 했다면 엄청난 반발을 불렀을지 모를 일이다. 야비한 지배층이 백성을 속일 수 있었지만 현명한 서문표는 농락할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들의 꾀에 당한 것이다.
<사기>을 읽다 보면 아무래도 당시 정치적 상황을 지금과 비교하게 된다. 나쁜 관습이나 구악은 필요에 따라서는 일거에 도려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서문표 같은 능력 있고 강단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상대의 허점을 불시에 파고 들어 제 함정에 빠지게 해야 한다. 준비 없이 대응했다가는 도리어 되치기를 당할 수도 있다. 역사에는 성공보다 실패한 사례가 더 많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 집행이 정상 국가의 기틀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현명한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