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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기쁨

회귀 / 김지하

샌. 2026. 4. 22. 09:51

목련은 피어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돌아

흙으로 가데

 

가데 

젊은 날

빛을 뿜던 친구들 모두

짧은 눈부심 뒤에 남기고

이리로 혹은 저리로

아메리카로 혹은 유럽으로

하나 둘씩 혹은 감옥으로 혹은 저승으로

 

가데

검은 등걸 속

애틋했던 그리움 움트던

겨울날 그리움만 남기고

무성한 잎새 시절

기인 긴 기다림만 남기고

봄날은 가데

목련은 피어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돌아

흙으로 가데

 

가데 

젊은 날

빛을 뿜던

아 저 모든 꽃들 가데

 

- 회귀 / 김지하

 

 

인생 후반부의 삶 때문에 김지하 시인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다. 6, 70년대 그 엄혹했던 시절을 시인은 온몸으로 맞서 싸웠던 사람 중 하나였다. 긴 감옥 생활의 고통을 체험하지 않은 내가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내가 과연 그분을 비판할 자격이나 있는지 의문이다. 나는 그 시절을 어떻게 살았느냐를 돌아볼 때 아무 할 말이 없다. 그러함에도 1980년대까지 생명 사상을 주창하던 시인까지만 기억하기로 한다.

 

목련은 잠깐 세상을 환하게 밝혔다가 그저 스러져간다. 땅으로 내린 목련은 그 모습 때문인지 더욱 허망하다. 흰빛만 하늘로 올라간 때문인가 보다. 동지들을 이리저리로 보내고 - 감옥으로 저승으로 - 뒤에 남은 시인의 마음을 생각한다. 시의 제목이 '회귀'다. 시인이 평생 외친 자유와 생명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헤아려볼 수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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