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그 커피가 도대체 뭐라고, 감히 본문
스타벅스에서 하필 5월 18일에 '탱크 데이'라는 이벤트를 해서 공분을 사고 있다. 광주에서는 제4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리던 날이었다. 광고 문구를 보면 '탱크 데이 5/18'이라 적혀 있고, 더해서 옆에는 '책상에 탁!'이라고도 적어 놓았다. 대기업이 어쩌면 이다지도 무식하고 용감할 수 있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우리나라에서 5월 18일은 결코 가볍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아니다. 전두환 군부가 탱크를 몰고와 시민들을 학살한 비극의 날이다. 그걸 희화화하며 상술에 이용하다니 화가 나기보다 참담해진다. 더구나 '책상에 탁!'은 누가 봐도 1987년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시킨다. 생때같은 학생을 물고문으로 죽여놓고는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고 발표했다. 스타벅스에서는 하나라도 모자라 둘을 싸잡아 의도적으로 희롱한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도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5월 18일을 생각하면 나는 상당한 부채 의식이 있다. 죄스럽기도 하다. 5.18 뒤에 대학가를 중심으로 당시의 진상을 밝히면서 군부 독재를 타도하려는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나는 어중간한 위치였다. 너무 끔찍해서 차마 믿기지 않았다. 어느 대학에 갔다가 5.18 참상을 전하는 사진전을 보게 되었다. 그러함에도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설마'가 자리 잡고 있었다. '설마' 뒤에 숨어 외면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나는 비겁했다.
인간이라면 최소한의 지켜야 할 품위가 있는 법이다. 타인의 아픔이나 고통에 대해 조롱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마찬가지다. 사람이니까 속으로는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고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차마 밖으로 드러내지는 못하겠다. 그런데 그걸 커피를 팔아먹으려는 상술에 이용하다니, 이런 막장이 없다. 세월호 때 단식하는 유가족 앞에서 게걸스럽게 먹는 시위를 하던 무리들과 다를 바 없다.
나는 스타벅스에 가 보지 않아서 왜 스타벅스 커피가 인기인지 모른다. 특별히 커피 맛이 더 맛있을 것 같지는 않고, 이번과 같은 프로모션을 잘 하는가 보다. 어쨌든 길거리를 지날 때 스타벅스 매장 안을 보면 사람들로 바글바글한다. 지난 스승의 날 때 제자 하나가 카톡으로 스타벅스 선물을 보내주었는데 어떻게 써먹는지도 모르던 차에 아예 삭제해 버렸다.
"그 커피가 도대체 뭐라고, 감히" - 며칠 전 JTBC 뉴스 앵커의 멘트에 울컥했다. 시민과 소비자를 얼마나 호구로 봤으면 '감히' 이따위 짓거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앵커가 전한 말이다.
"1980년 5월 19일 오후 4시 50분. 광주고등학교와 계림파출소 사이 거리에서 19살 고등학생 김영찬 군이 쓰러졌습니다. 장갑차 위에서 뿜어져 나온 M16의 거친 비명이 봄날의 공기를 찢고 소년의 복부를 관통했습니다. "군인이 우리에게 총을 쏜다." 전날까지 곤봉과 대겸으로 가해지던 국가의 폭력은 시민을 향한 이 발포 뒤 더 악랄한 얼굴로 광주를 휘감았습니다. 국민을 지켜야 할 탱크는 육중한 굉음을 내며 시민을 향해 진군했고, 철제 궤도가 아스팔트를 짓누를수록 광주의 심장은 더 뜨겁게 뭉쳤습니다.
책장을 덮고 뛰쳐나온 학생 곁에 앞치마를 두른 상인, 운전대를 잡은 기사, 밥상을 차리던 주부가 섰습니다. 전차와 APC 장갑차, 500MD 무장헬기, 코브라 공격헬기, 자동화기, 수류탄 등의 살상 무기 앞에서 시민들은 어깨를 함께 하고 걸었습니다.
광주의 5월을 피로 물들인 그날로부터 46년이 흘렀습니다. 아스팔트 위에 흐른 피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마중물이었습니다. "전 임원에게 역사 교육을 하겠다." 고개를 숙였지만 비극의 역사를 가벼운 마케팅의 소모품으로 전락시킨 것은 쉽게 용서되지 않습니다. 그저 일상의 위로였어야 할 커피 한 잔이 상처를 후벼 파는 전차의 굉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커피가 도대체 뭐라고, 감히."
'길위의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소음 지나니 누수 (0) | 2026.05.18 |
|---|---|
| 마라톤 두 시간 벽이 무너지다 (0) | 2026.04.28 |
| 수학여행은 이렇게 우울하게 끝났다 (0) | 2026.04.25 |
| 아르테미스에서 본 지구 (0) | 2026.04.12 |
| 8000 (0) | 2026.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