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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기쁨

조태 칼국수 / 고형렬

샌. 2026. 5. 30. 10:00

눈이 우르릉거리는 사나운 날엔 국수를 해 먹는다. 애 곤지 알이 명태머리 꼬리가 처박는 폭설. 된장을 푼 멸치국물이 가스불에 설설 맴도는, 까닭없이 궁핍한 서울. 엉덩이 들고 홍두깨로 민 반죽을 칼질하고 밀가루 뿌려놓은 긴 국숫발. 바다 모래불 가 눈발을 그리는 20년 객지, 하며 창밖에 펄펄 날리는 하늘 눈사태 바라보는 나는 이런다,

 

이런 날은 조태 칼국수만이

저 을씨년하고 어두운 날씨를 이길 수 있다.

 

- 조태 칼국수 / 고형렬

 

 

명태는 이름도 많구나. 명태, 생태, 동태, 황태, 먹태, 북어, 코다리, 노가리는 자주 또는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조태는 처음이다. '조태(釣太)'는 그물이 아닌 낚시로 잡은 명태라고 한다. 그물로 잡은 것보다 더 싱싱하다니 생태보다 더 상급인가 보다.

 

시인은 강원도 삼척이 고향이다. 어린 시절에 먹었을 조태 칼국수가 눈 오는 날 쓸쓸한 타지 생활에서 그리웠나 보다. '눈이 우르릉거리는 사나운 날' '까닭없이 궁핍한 서울'이라는 표현이 시인의 마음을 드러낸다. 누구에게나 을씨년하고 어두운 날을 이길 수 있는 고향의 맛이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음식일지 단번에 떠오르지 않는다. 지난번 고향에 갔을 때 초등학교 동기가 하는 청국장집에서 "그래, 이 맛이야"라고 감탄하며 밥을 한 공기 넘게 비운 적이 있었다. 내 근사치는 된장찌개 정도로 해 둬야겠다. 그러고 보니 콩비지찌개도 좋아한다. 가끔 아내가 해 주면 거기서 고향의 맛을 느낀다. 어렸을 때 나는 유난히 콩을 좋아했다. 옛날에는 감옥에 가는 걸 '콩밥 먹는다'라고 했는데, "너는 죄를 지어도 걱정 없겠다"라는 놀림도 받았다.

 

이젠 조태는 찾아볼 수 없을 테니 조태 칼국수도 사라진 음식이 되었을 것이다. 조태는 고사하고 명태조차도 동해에서는 잘 잡히지 않아 러시아에서 수입을 해 오는 모양이다. 가장 흔했지만 이젠 우리 곁에는 없다. 사라지고 떠나보낸 것들이 어디 한둘이랴. 쓸쓸한 날들을 어찌 견디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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