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1980년대에 대하여 / 맹문재 본문
나는 그를 원망한다
그 때문에 노조원인 나는 안정된 직장을 잃었고
첫사랑을 빼앗겼다
거대한 여당에 표를 찍을 수 없었고
신문 사설에 밑줄 긋지 못했다
더 억울한 것은
종달새 소리와 흰나비를 쫓던 순진한 가슴에
적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 성실한 회사원이 되었을 것이다
적금 액수를 따지고
부서장의 성격에 관심을 갖고
승진과 아파트 가격에 신경 썼을 것이다
틈나는 대로 주식에 투자하고
주말이면 낚싯대를 챙기고 친목 바둑을 두고
직장간 친선 축구대회에 나가 공도 찼을 것이다
그 모든 기회를 잃어버리고
나는 불만만 많은 소시민이 되었다
산다는 것이 별것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분배와 정의와 환경오염을 괜히 문제 삼는다
술을 마시며 이데올로기까지 따지는
추상적인 인간이 된 것이다
부정의 가치를 운명으로 받아들인 나는
억울하지만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 1980년대에 대하여 / 맹문재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시인과 같은 1980년대를 경험한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다. 나이에 따라서 1960년대일 수도, 또는 1970년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젊었을 때 세상의 혁명/개혁을 꿈꾸지 않으면 청춘의 자격이 없다고 여기던 시대였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대학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공정을 강조하나 너무 개인이나 또래 이익에 치중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익이 충돌하면 갈등만 커진다. 과거에는 공정보다 정의의 가치를 우선했고, 그러면서 자기희생이 앞섰다.
시에 나오는 '부정의 가치'를 주목한다. '부정'이란 세속적인 가치에 등을 돌리는 용기를 말하는 게 아닐까. '사는 게 이게 아닌데'라는 의문을 끝까지 파고 들어가는 자세이기도 하다. 그래서 삶의 방향이 바뀌고 '불만만 많은 소시민'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멀리 앞서 가 있는 동기들을 바라보며 배 아파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인은 '억울하지만 다행스럽게 여긴다'라고 말한다. 내가 택한 삶에 대한 자부심이 아닐까.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라 읊은 이백의 마음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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