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아무도 모른다 / 김사인 본문
나의 옛 흙들은 어디로 갔을까
땡볕 아래서도 촉촉하던 그 마당과 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개울은, 따갑게 익던 자갈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앞산은, 밤이면 굴러다니던 도깨비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도 의젓했던 옛 동네어른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님들, 수국 같던 웃음 많던 나의 옛 누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배고름들은 어디로 갔을까 설익은 가지의 그 비린내는 어디로 갔을까 시름 많던 나의 옛 젊은 어머니는 나의 옛 형님들은, 그 딴딴한 장딴지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의 옛 비석치기와 구슬치기는, 등줄기를 후려치던 빗자루는, 나의 옛 아버지의 힘센 팔뚝은, 고소해하던 옆집 가시내는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무덤들은, 흰머리 할미꽃과 사금파리 살림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봄날 저녁은 어디로 갔을까 키 큰 미루나무 아래 강아지풀들은, 낮은 굴뚝과 노곤하던 저녁연기는
나의 옛 캄캄한 골방은 어디로 갔을까 캄캄한 할아버지는, 캄캄한 기침소리와 캄캄한 고리짝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의 옛 나는 어디로 갔을까, 고무신 밖으로 발등이 새까맣던 어린 나는 어느 거리를 떠돌다 흩어졌을까
- 아무도 모른다 / 김사인
"아직도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 아니야?" B가 내 사진과 글의 일부를 보고 나서 짖궂게 물은 말이다. 나는 내 정조의 바탕에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이 깔려 있다고 답했다. 그게 사람일 수도 있고, 사라져 간 것에 대한 아쉬움일 수도 있다. 내 자신도 그것의 실체가 명확하지 않다. 안갯속에 있는 것처럼 뿌옇기만 하다.
이 시를 읽으니 내 그리움의 저변에는 읽어버린 유년의 추억도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상실감의 일종일 수도 있다. 고향에 어머니가 계시니 자주 내려가는데,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현실의 고향은 내 마음속 고향을 쫓아내기만 한다. 그런 갈등이 그리움을 점점 짙게 만드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차라리 눈으로 보지 말고 상상으로 그리고만 싶다.
정말로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나는 어디로 갔을까, 고무신 밖으로 발등이 새까맣던 어린 나는 어느 거리를 떠돌다 흩어졌을까"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980년대에 대하여 / 맹문재 (0) | 2026.06.08 |
|---|---|
| 조태 칼국수 / 고형렬 (0) | 2026.05.30 |
| 사슴 / 노천명 (0) | 2026.05.20 |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0) | 2026.05.12 |
| 즐거운 편지 / 황동규 (0) | 2026.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