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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단상

카보베르데

샌. 2026. 7. 5. 10:45

축구에는 관심이 없다. 월드컵일지라도 마찬가지다. 그저께 아침 어쩌다 TV를 켰는데 월드컵 축구 중계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화면 상단에 뜬 '카보베르데'라는 나라 이름이 생소했다. 생판 처음 듣는 나라였다. 이런 나라가 조별 예선을 통과하고 아르헨티나와 32강 경기를 벌이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더구나 연장전인데 스코어가 2:2였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카보베르데(Cabo Verde)는 아프리카 서쪽 대서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로, 10개의 화산섬으로 되어 있고 인구는 53만 명 정도다. 우리나라 성남시 인구와 비슷하다. 카보베르데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가 1975년에 독립했다고 한다. 이런 소국이 월드컵에 진출했고 아르헨티나에 지긴 했지만 32강에 진출하는 성과를 냈다. 우리나라나 중국과 비교하면 국력 차이가 어마무시한 데 말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TV 앞에서 카보베르데를 응원했다. 힘센 나라만 잘한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전 우리나라의 예선 통과가 걸린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시합을 하던 때 나는 당구를 치고 있었다. 붐비던 당구장이었는데 그날은 썰렁했다. 사람들은 집에서 축구를 보느라 안 나온 모양이었다. 넓은 당구장에는 우리 팀만 있었다. 당구장 한쪽 벽에 걸린 TV로 축구 중계가 되고 있었지만 당구장 주인만 그 앞에 있었을 뿐 나는 경기가 끝나고서야 졌다는 걸 알았다. 국가 대표팀 감독이 홍명보이고 전부터 비난을 많이 받고 있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으니 축구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자격이 없는지 모른다. 

 

2002년 붉은 물결로 뒤덮이던 한일 월드컵 때가 떠오른다. 그때 나는 세상적인 것으로부터 절연된 삶을 살고 있었다. 군중의 환호로부터 멀어지려 했고 의도된 고독을 택했다. 4강까지 올라간 우리나라 게임을 일부러 하나도 보지 않았다. 관심도 없었지만 국뽕에 취한 열광의 분위기가 싫었다. 어느 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은 온통 흥분의 도가니였다. 젊은이들은 지하철 안에서도 "대한민국"을 외쳐댔다. 그런데 지하철 한쪽 구석에서 가만히 책을 읽고 있는 한 여자가 있었다. 붉은색 속에서 유독 흰색의 옷이 돋보인 그녀는 차내의 소란을 아랑곳하지 않고 책에만 시선을 주고 있었다. 나는 동지를 발견한 듯 고맙고 감사했다. 2002년의 추억에서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이다.

 

스포츠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너무 승패에 집착하면 상대를 혐오하고 적대적이 된다. 홍명보 감독은 순식간에 역적이 되고 미국으로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다. 최근 배재고 사태도 과다한 승부 몰입이 야기한 후유증이 아닌가 싶다. 지나친 집단적 열정은 이성을 마비시킨다. 히틀러 같은 파쇼주의자의 선동에 쉽게 넘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재 정권이 3S 정책으로 민중의 관심을 딴 데로 유도하려 했다는 의심도 있다.

 

축구를 모르는 사람으로서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선수들이 시합을 할 때 헤딩을 자주 하는데 과연 머리가 괜찮은지 하는 걱정이다. 젊었을 때 단 한 번 축구를 한 적이 있는데  - 그것도 선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 헤딩을 하다가 죽는 줄 알았다. 어지러워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머리가 받는 충격이 엄청 컸다. 선수들은 연습과 시합을 통해 무수히 헤딩을 할 것이 아닌가. 그 충격을 어떻게 감당할까. 내 생각에는 심각한 뇌 손상을 유발할 것만 같아 우려가 된다. 

 

카보베르데 때문에 잠깐이나마 축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카보베르데가 아르헨티나를 이기고 16강에 나갔다면 아마 응원했을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선수가 없으니 약자 편이다. 카보베르데는 15세기에 포르투갈에 의해 발견되었다. 무인도였는데 개발을 하면서 흑인을 이주시킨 게 역사의 시작이었다. 대서양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오랫동안 노예 무역의 거점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알고 보니 카보베르데도 아픈 역사를 가진 나라다. 대양의 한가운데 보이지 않게 숨어 있던 카보베르데라는 나라를 알게 된 것도 이번 월드컵이 준 소득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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