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AI 바둑과 놀기 본문
한 달 전부터 AI와 바둑 두는 재미에 빠져 있다. 보통 인터넷으로 바둑을 많이 두지만 나는 성격상 아무 사람과 상대하는 게 피곤하다. 온라인에서는 무례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는 바둑을 승부보다는 기도(棋道)나 기예(棋藝)로 생각하려 한다. 시간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음미하며 즐겨야 한다. 주로 속기로 진행되는 인터넷 바둑은 이런 성격과는 대척점에 있다. 바둑을 두면서 왜 그리 쫓겨야하는지 모르겠다.
AI 바둑의 장점은 시간이 무제한이라는 점이다. 오래 생각해도 눈치 주지 않는다. 시간이 무제한이어도 AI는 금방 둔다. 시간을 끄는 것은 인간인 나다. 불공평하긴 하나 어쨌든 마음이 편하다. AI와 바둑을 두면서는 바둑의 정수(正手)를 배울 수 있다. AI는 엉터리 수를 두지 않는다. 또 AI는 수읽기가 뛰어나다. 급소를 잘 짚고 사활은 귀신 같이 알아낸다. 내가 AI와 바둑을 두는 이유는 바둑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바둑이 끝나면 복기를 통해서 어느 수가 잘못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어 좋다. 다른 최선의 수를 가르쳐주니 이보다 훌륭한 바둑 선생이 없다. 부지런만 하다면 실력이 일취월장할 것 같다. 그리고 AI에는 감정이 들어있지 않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 상대가 사람이면 은근 경쟁심이 유발된다. <장자>에 나오는 '허주(虛舟)' 비유가 딱 맞다. 나와 부딪쳐도 빈 배임을 알면 화를 내지 않는다. 여러 가지로 나와 벗하기 좋은 AI 바둑이다.
이러다가 미래에는 피곤한 인간을 상대하는 대신 모든 면에서 AI 로봇을 선호하게 될 지 모르겠다. 집안에 AI 로봇을 들여놓고 일상을 함께 하는 날이 멀지 않아 찾아올 것 같다. 자질구레한 심부름은 물론이고 만물박사인 AI와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특히 노인들에게 지극한 시중을 들어준다면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이 있겠는가. 좀 더 오래 살아서 이런 혜택을 받아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내가 들어가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여러 수준의 AI 바둑이 있다. 나는 4단짜리 AI와 바둑을 둔다. 그한테는 내 실력이 모자라 승률이 좋지 않다. 대신 3단 AI한테는 자주 이기는 편이다. 지금 AI를 기준으로 한 내 수준은 3단과 4단 사이다. AI한테 트레이닝을 받아 5단에 도전할 실력이 되었으면 좋겠다.
AI와 바둑을 두면서 내 바둑이 너무 허술하다는 걸 깨닫고 있다. AI에게 급소를 찔려서 비명횡사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나를 돌보지 않고 상대 집을 탐낸 결과다. 무엇보다 탄탄한 바둑을 둬야겠다. 당장의 유불리보다 긴 호흡으로 두터운 바둑을 두는 게 중요하다는 걸 절감한다. AI 바둑과 놀면서 내 바둑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된 게 고맙다. 바둑에 관한 한 AI는 내 믿음직하며 듬직한 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