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33

랑탕 랜선 트레킹(8)

역시 고소는 고소다. 잠자는 중에도 숨이 차서 수없이 눈이 떠진다. 마치 누가 목을 조르는 것 같다. 그럴 때는 호흡을 급하게 해야 진정이 된다. 옆에 산소통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계란후라이와 누룽지로 아침 식사를 하고 키모슝리(4,620m)로 출발한다. 고개를 젖혀야 꼭대기가 보이는 산을 오전 중에 다녀와야 한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몸이 무거워 걷기가 힘들다. 앞서 나가는 사람과의 간격이 점차 벌어지더니 아예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어제는 날았는데 오늘은 긴다. 후미 그룹도 흩어지고 맨 뒤에는 벗님과 여연, 나 이렇게 셋이다. 얼마 안 가 벗님은 도저히 못 가겠다며 포기한다. 여연과 둘뿐인데 곧 답답한지 여연마저 앞서 나간다. 결국 나와 포터만 남아..

길위의단상 2021.04.04

랑탕 렌선 트레킹(7)

오늘은 이번 트레킹의 하이라이트인 랑시샤카르카를 다녀오는 날이다. 랑시샤카르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계곡으로 알려져 있다. 랑시샤카르카의 고도는 4,160m로 우리가 묵고 있는 캰진곰파와 비슷해서 오르내림이 없는 평지를 걷지만 왕복 24km로 길다. 평지라도 고도 4천 미터급에서 하루에 24km를 걷는다는 것은 만만치 않다. 다행히 새벽에 눈을 뜨니 몸이 개운하다. 어제 오후에 꿀맛 같은 휴식을 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다른 롯지로 이동이 없으니 포터는 짐에서 해방이다. 포터의 휴식일인 줄 알았더니 우리 배낭을 메고 우리와 1:1로 동행한다. 귀족 트레킹을 하는 기분이다. 배낭도 없이 걸으니 몸이 날아갈 듯 가뿐하다. 처음으로 선두에 서서 신나게 걷는다. 앞선 사람, 뒤처진 사람으로 긴 행렬이 ..

길위의단상 2021.04.03

랑탕 랜선 트레킹(6)

5시에 기상하여 헤드랜턴 빛에 의지해서 짐을 싼다. 이젠 침낭을 거두는 데도 숨이 차고, 등산화 끈을 매는 데도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폐가 산소를 더 달라고 아우성친다. 여기 산소 농도는 해수면의 60%다. 새벽바람이 거세고 차갑다. 옷을 두껍게 껴입고 식당에 가서 계란후라이와 누룽지로 아침 식사를 한다. 뜨끈한 누룽지 끓인 물이 들어가니 해장을 한 듯 속이 풀어진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 상황이 일변하고 공기는 금방 데워진다. 대기의 방해를 덜 받고 내리쬐는 햇살이 눈이 부시도록 따갑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검은색이다. 공기가 희박해서 공기 분자의 산란이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랑탕 계곡의 끝 마을인 캰진곰파까지 간다. 캰진곰파는 랑탕 트레킹에서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마을로 이곳에서 랑..

길위의단상 2021.04.02

랑탕 랜선 트레킹(5)

새벽 5시 기상, 6시 아침 식사, 7시 출발이 우리의 규칙적인 일과다. 오늘은 고도 3,000m를 지난다. 개인차가 있지만 고산병이 나타나는 높이다. 고산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다이아막스를 먹다. 원래는 이뇨제인데 고산증세에도 효과가 있다고 소문이 난 약이다. 어제와 달리 선두 그룹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우리 후미 그룹도 서로의 간격이 벌어지면서 각자 따로따로 걸어간다. 단체로 왔지만 길에서는 서로 떨어져서 걷는 것도 괜찮다. 오히려 권장할 만하다. 외길이라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여기서는 혼자라고 해서 불안하지 않다. 도리어 아늑하고 편안하다. 히말라야가 사랑 가득한 품으로 안아주는 것 같다. 일행과는 만났다 떨어졌다 하며 앞으로 나간다. 길은 경사가 급하지 않아 어려움이 없다. 걸어가..

길위의단상 2021.04.01

랑탕 랜선 트레킹(4)

오늘부터 본격적인 랑탕 트레킹의 시작이다. 랑탕 계곡의 존재는 1940년대에 처음으로 외부에 알려졌고, 1971년에는 네팔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랑탕(Langtang)은 ‘야크를 따라간다’는 뜻으로 어느 스님이 도망가는 야크를 따라가다가 이 아름다운 계곡을 발견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명명법을 닮은 이름이다. 붓다 롯지에서 6시에 일어나 물휴지로 얼굴을 훔치는 간편 세수를 한다. 히말라야에서는 물이 부족할뿐더러 찬물 세수를 하면 고산병에 걸릴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히말라야는 게으른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7시에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발한다. 우리의 장도를 축복하는 듯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파랗다. 무거운 짐은 카고백에 담아 포터에게 넘기고, 배낭에는 물 두 통, ..

길위의단상 2021.03.31

랑탕 랜선 트레킹(3)

랑탕 트레킹의 출발점인 샤브루벤시까지 가는 날이다. 거리는 140km지만 길이 험해서 9시간이 걸린다. 새벽 5시에 기상하여 캄캄한 호텔방에서 헤드렌턴에 의지해 세수를 하고 짐을 꾸린다. 함께 떠나는 일행은 우리 팀원 12명에 현지인 가이드 2명과 포터 12명, 총 26명이다. 전세 낸 중형 버스를 타고 아침도 먹지 못한 채 출발한다. 조금만 늦으면 카트만두 시내를 빠져나가는 데 애를 먹는다고 한다. 서울이나 카트만두나 도시는 어디나 교통 체증이 문제다. 팀원 12명이 묘하게 남자 6명, 여자 6명이다. 떠나오기 전에 아내는 미심쩍은 듯 말했다. “가는 사람들이 남녀 동수라고? 설마 일부러 짝을 맞춘 건 아니지?” 마치 우리가 히말라야로 쌍쌍파티라도 떠나는 듯 아내의 말투에는 가시가 돋아 있었다. 여자의..

길위의단상 2021.03.30

랑탕 랜선 트레킹(2)

이런저런 근심이 비행기에 오르니 눈 녹듯이 사라진다. 그래 ‘케세라 세라’, 될 대로 되라지 뭐. 여행을 떠나는 맛이 본래 이런 것이다. 집을 떠날 때의 돌연한 기분 전환 즉, 익숙한 곳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향해 가는 기대와 설렘이다. 비행기 안에서 화장실에 가는데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띈다. 중학교 동기 친구다. “야, 이게 누구로? 니 어데 가노?” 동향 사람을 만나면 사투리가 나도 모르게 터진다. 사투리는 정서적 친밀감을 주지만 과잉 수용하면 독이 되는 걸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남이가!”로까지 나가면 곤란하다(이 친구 SNS에 들어갔다가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을 봤다. 뒷날 일이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포카라에 열흘 정도 쉬러 간단다. 옆에는 부인이 앉아 있다. 이 친구는 안나푸르..

길위의단상 2021.03.29

랑탕 랜선 트레킹(1)

다시 히말라야 랑탕을 걷는다. 코로나 시대라 몸이 직접 가는 게 아닌 랜선 트레킹이다. 인간의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현실 같은 상상은 실제 경험과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이보다 경제적인 여행법이 없다. 12년 전 12명의 트레커와 걸은 코스를 함께 다시 걷기로 한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복도에서 장 대장이 물었다. “안 선생, 히말라야 갈 생각 있어?” 내 대답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튀어나왔다. “좋아!” 나는 이리 굴리고 저리 따져보는 햄릿형이지만 이때는 아니었다. 오랫동안 히말라야가 내 버킷 리스트 1순위였기 때문이다. 때맞은 줄탁동시(啐啄同時)였다. 전부터 장 대장에게 히말라야에는 꼭 가고 싶다고 말해두었던 터였다. 딱히 이유는 모르지만 히말라야는 나에게 이상향이었다...

길위의단상 2021.03.28

히말라야 환상방황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에는 두 코스가 있다. 하나는, ABC라 불리는 베이스캠프 트레킹으로 안나푸르나 주봉 아래 베이스캠프(4,130m)까지 갔다 돌아오는 코스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찾을 만큼 무난하다. 둘은, 안나푸르나 산군을 한 바퀴 도는 라운딩 코스로 난이도가 높다. 5,416m인 쏘롱라패스를 지나는 111km 길이다. 이 책 은 정유정 작가가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를 다녀온 기록이다. 2013년 9월 5일에 베시사하르를 출발하여 9월 21일에 나야폴에 도착했다. 총 17일이 걸렸다. 작가는 생애 최초의 해외여행을 안나푸르나 트레킹으로 잡았다. 답답한 일상의 탈출구로 히말라야를 선택했다. 동행은 후배 작가였다. 가이드와 포터, 그리고 여자 둘이 한 팀이 되어 히말라야를 ..

읽고본느낌 2020.06.21

안나푸르나에서 밀크티를 마시다

이 책을 읽으며 8년 전 랑탕과 고사인쿤트 트레킹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새겨졌다. 긴 일정이나 5,000m에 달하는 최고 고도가 저자가 체험한 안나푸르나 라운딩과 비슷했다. 우리도 추운 1월에 히말라야를 걸었다. 다만 우리는 12명의 단체 트레킹이어서 포터만 데리고 홀로 걸은 저자와는 처한 입장이 달랐다. 는 '2014년 1월 1일, 사직서를 냈다'로 시작한다. 33살의 여자는 그렇게 네팔로 떠났다. 그리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와 안나푸르나 라운딩 트레킹을 연이어서 했다. 이 책은 안나푸르나 라운딩 트레킹에 대한 기록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한 책은 매우 많다. 신선함과 참신성에서 이 책은 뛰어나다. 문장은 통통 튀는 살아 있는 비유와 재치로 넘쳐난다. 마치 현장에서 같이 걷는 듯 생생하다. 경쾌하고 솔..

읽고본느낌 2017.10.02

히말라야를 포기하다

한 달이 넘었는데도 아직 허리가 불안하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허리를 굽히기가 힘들고 다리 근육이 결린다. 겨우 직장만 오가면서 집에서는 누워있는 게 일이다. 덕분에 푹 쉬기는 하지만 짜증이 없을 수가 없다. 남자 허리가 부실하면 인생 종쳤다는 말이 실감나게 받아들여진다. 어제 아침에는 누워서 아령을 몇 번 들었다 놓았는데 그것도 운동이라고 팔까지 뻐근하다. 한 달 전만 해도 나름대로는 건강에 자신을 가졌는데 모든 게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지난겨울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온 뒤로 내 몸에 대한 과신이 지나쳤다. 실로 올해만큼 산에 자주 다니고 많이 걸은 때도 없었다. 주제파악도 못하고 까불어댔던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허리에 과부하가 걸린 것 같다. 이번 통증은 네 체력에 맞게 살라는 몸의 경..

길위의단상 2009.10.15

랑탕 트레킹(14)

2009년 1월 21일, 랑탕 트레킹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오늘은 순다리잘까지 걸어가서는 버스를 타고 카트만두로 들어간다. 아침에 일어나니 주변은 온통 뿌연 안개에 잠겨 있다. 아직도 2천m급의 고지대지만 안개는 마치 깊은 바다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하긴 내가 서 있는 이곳도 수 억 년 전에는 바다 속이었을 것이다. 잠시 내 주위로 고생대의 바다 생물들이 헤엄치고 돌아다니는 상상을 해본다. 안개가 낀다는 것은 오늘도 날씨가 맑다는 뜻이다. 이번 트레킹을 계획대로 마칠 수 있게 된 데는 날씨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우리 일정이 하루의 여유도 없이 빡빡하게 짜여져 있어서 만약 중간에 눈이라도 내렸다면 중도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보다 앞서 트레킹을 한 팀은 폭설로 고사인..

사진속일상 2009.03.01

랑탕 트레킹(13)

히말라야의 대기는 맑고 깨끗하지만 대신에 무척 건조하다. 밤에 잘 때면 입술과 입안이 바싹바싹 탄다. 그래서 잠에서 깰 때면 꼭 물을 마셔주어야 한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밖에 나왔다가 히말라야의 밤하늘에 끌려 마당에 앉았다. 다행히 이곳은 고도가 낮아선지 밤공기가 그다지 차지 않았다. 사위는 고요한데 초저녁에는 보이지 않던 북두칠성이 올라오고, 하현달은 옅은 안개 속에서 졸고 있었다. 내가 히말라야에 와서 이 아름다운 트레킹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내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도움 덕분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그뿐만 아니라 하늘의 달과 별, 그리고 히말라야 신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이곳과의 인연이 맺어질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침 7시, 동편 하늘의 노을을 보며치소바니로 출..

사진속일상 2009.02.23

랑탕 트레킹(12)

약 기운 탓이었는지 잠을 맛있게 푹 잤다. 덕분에 몸이 가뿐하고 개운해졌다. 어제까지 끈질기게 괴롭히던 몸살기도 사라졌다. 오늘은 쿠툼상까지 가는 날이다.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7시에 곱테를 출발했다. 처음에는 고도 300m 정도를 올라가야 했으나 그 뒤부터는 계속 능선을 따라가는 내리막이었다. 확 트인 전망과 함께 아름다운 설산을 왼쪽으로 끼고 이어지는 흙길은 완만하고 부드러웠다. 그리고 고도가 낮아지니 다시 다양한 모습의 식물들이 모습을 보였다. 특이한 모양의 나무들이 눈길을 끌었고, 새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반갑게도 길가에는 예쁜 보랏빛 꽃도 피어 있었는데, 고도 3천m 부근에서 특히 많이 있었다. 현지 가이드한테 이름을 물으니 모르겠다고 고개를 젓는다. 우리들 행렬은 자연스럽게 선두 여섯 명, ..

사진속일상 2009.02.20

랑탕 트레킹(11)

히말라야에서는 밤이 괴롭다. 추위보다 더 괴로운 것은 가슴이 답답해서 자꾸 잠이 깨는 것이다. 고소로 산소가 부족하여 숨이 차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제 밤에는 자다가 코피까지 쏟았다. 에너지가 바닥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그래도 여느 날처럼 5시에 일어나 짐을 꾸리고 간단한 식사 후 6시 30분에 롯지를 출발했다. 어둠이 가시기 시작하면서 설산의 봉우리가 햇살에 빛나는 시간이었다. 처음부터 나타난 급경사 오르막을 오를 때는 콧물과 재채기가 심하게 나왔다. 오늘은 우리가 ‘고난의 행군’이라 부를 정도로 10시간 이상 산악 길을 걸어야 하는 날이다. 다행히 몸은 걸을수록 정상으로 돌아왔다. 어느 정도 오르막길을 오르니 고사인쿤드(4,380m)로 연결되는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길이 나타났다. 매년 여름이면 이 길..

사진속일상 2009.02.19

랑탕 트레킹(10)

인사불성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다. 밤중에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온 뒤 컵의 물을 마시다가 앉은 채 그냥 잠들어 버렸다. 물 떨어지는 소리에 깨어나니 컵이 기울어져 물은 바닥에 다 쏟아져 있었다. 엄청 피곤했었던 것 같다. 다행히 아침에 일어나니 몸은 좋아졌다. 식사를 하고 6시 40분에 툴로샤브루를 출발했다. 하늘은 엷은 비단구름이 줄지어 곱게 덮여 있다. 그동안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다랑이 밭과 농가를 지나 길은 산으로 숨더니 숲 속으로 오르막이 계속되었다. 길에는 전에 내린 눈이 남아 있어 히말라야에 들어서 처음으로 눈을 밟아 보았다. B와 맨 뒤에서 일행을 따라갔는데 눈 가운데 피어 있는 작은 꽃을 구경하느라 자꾸 뒤쳐졌다. 숲 들머리에 서있는 포플라를 닮은 키다리 나무가 인상적이었..

사진속일상 2009.02.18

랑탕 트레킹(9)

2009년 1월 16일, 오늘부터는 랑탕 트레킹의 후반부에 들어간다. 여기서 그냥 샤브루베시로 내려가서 카트만두로 돌아가면 랑탕 계곡만 왕복하는 가장 짧은 트레킹 코스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고사인쿤드로 올라가서 4,610m의 라우레비나 고개를 넘어 산줄기를 타고 카트만두 근교인 순다리잘까지 걸어갈 예정이다. 앞으로 엿새 동안 우리는 지금까지보다 더 길고 험한 산길을 걸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툴로샤브로까지만 가는 오늘이 가장 여유 있으면서 체력을 비축할 수 있는 날이다. 밤에 기침을 심하게 했다. 저녁이나 밤 같으면 힘들어 더 못 걸을 것 같은데, 아침에 일어나면 웬일인지 새로운 힘과 도전 의욕이 생긴다. 오늘은 4시간 정도만 걸으면 되는 날이라 느지막하게 아침 8시에 뱀부를 출발했다. 급경사의 내리막길..

사진속일상 2009.02.17

랑탕 트레킹(8)

목이 아파서 침을 삼키면 따끔거렸다. 호흡하기도 힘들다. 어제 밤에는 코를 심하게 골았는지 아침에 일어나니 코 안도 얼얼했다. 길을 걸으면서 계속 사탕을 빨고 뜨거운 물을 자주 마셨다. 롯지에서 길을 나설 때면 항상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가득 채운다. 고소에서는 반드시 따뜻한 물을 자주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히말라야에서는 석회질 성분 때문에 물은 꼭 끓여 마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설사로 고생을 한다. ‘Hot water' 또는 ‘타토파니’ 하면 알루미늄 통에 끓인 물을 담아주는데 값이 롯지 방값과 비슷할 정도로 비쌌다. 그 물조차도 뿌연 색깔인데다 그릇 밑에는 침전물이 가라앉았다. 물맛이 시원찮은 것은 물론이다. 히말라야 같은 청정지역에서 물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였다. 우..

사진속일상 2009.02.15

랑탕 트레킹(7)

밤에는 잠자는 도중에 숨이 차서 수없이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가슴이 답답해지면 호흡을 급하게 해야 진정이 되었다. 이런 현상도 고소의 특징인데 유난히 나한테 심하게 나타났다. 그렇게 잠을 설쳤던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무척 무거웠다. 계란후라이와 누룽지로 아침 식사를 하고 7시에 키모슝리(4,620m)로 출발했다. 키모슝리는 순수한 수직 높이만 750 m를 올라야 하는 산인데 여기를 오전 중에 다녀와야 한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몸이 무거워서 처음부터 후미에 처졌는데 선두와의 간격은 갈수록 벌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두 그룹의 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 뒤에는 유일하게 B가 따라왔는데, 결국 B는 체력이 달려 등정을 포기했다. 홀로 산을 오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는데, 스스로의 힘과 의..

사진속일상 2009.02.14

랑탕 트레킹(6)

랑탕 트레킹의 전반부에서는 오늘과 내일이 가장 중심이 되는 날이다. 특히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곡이라는 랑시샤카르카까지 다녀온다. 이곳은 이번 트레킹에서 최고의 절경지대라고 할 수 있다. 랑시샤카르카의 고도는 4,160 m, 우리가 있는 캰진곰파와는 300 m 정도밖에 고도 차이가 나지 않지만 왕복 24 km나 되는 긴 길이다. 4천 m 급의 고소에서 하루에 24 km를 걷는다는 것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다행히 새벽에 눈을 뜨니 몸은 개운했다. 그런데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가니 물이 꽁꽁 얼어있어 사용이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헤드랜턴에 의지해 롯지 뒤 산자락에 가서 볼일을 보았다. 캄캄한 어둠이 부끄러움을 가려 주었는데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보며 배설하는 시원한 쾌감도 ..

사진속일상 2009.02.12

랑탕 트레킹(5)

2009년 1월 12일, 네팔에 온지 닷새째, 샤브루베시에서 트레킹을 시작한지 사흘째 되는 날이다. 오늘은 랑탕 계곡의 맨 끝 마을인 캰진곰파(Kyanjin Gompa)까지 간다. 3 시간 정도 걸으면 이를 수 있는 마을이다. 캰진곰파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장소로 여기에서 랑시샤카르카를 다녀오고, 체르고리(4,984 m)에도 오를 예정이다. 역시 새벽 5시에 기상하여 부산하게 짐을 쌌다. 침낭을 마는데도 숨이 차고, 등산화의 끈을 매는데도 잠시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캄캄한 바깥은 바람이 세고 추웠다. 옷을 단단히 껴입고 식당에 주문한 계란후라이, 감자와 함께 가져간 누룽지를 끓여서 아침 식사를 했다. 해가 떠오르니 햇살은 눈부시게 따갑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검은색이다. 우리는 맑고 밝고 환한 세..

사진속일상 2009.02.10

랑탕 트레킹(4)

히말라야에 오기 전에 가장 걱정한 것이 고산병이었다. 고산병은 고도 3,000 m 전후에서부터 나타나는데 사람마다 차이가 크고 증세도 다르다. 호흡을 충분히 하면서 천천히 걷는 것이 최선이라는 당부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하루에 고도차가 500 m 이상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이 바로 3,000 m 지점을 돌파하는 날이기 때문에 아침부터 긴장이 되었다. 그리고 고소병 예방이 된다는 다이아막스 반 알을 먹었다. 원래 이 약은 이뇨제인데 고산병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알려져서 지금은 히말라야 트레킹 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쓴다고 한다. 일행 중 어떤 사람은 비아그라도 가지고 왔다. 성기능장애 치료에 쓰이는 이 약이 고산병에도 좋다는 설이 있는 모양이다. 새벽에 일어나니..

사진속일상 2009.02.09

랑탕 트레킹(3)

이제부터 본격적인 랑탕 트레킹의 시작이다. 랑탕(Langtang)은 ‘야크를 따라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한 스님이 도망가는 야크를 따라가다가 이 아름다운 골짜기를 발견했다는데 티벳어로 ‘랑’은 ‘야크’, ‘탕’은 ‘따라가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랑탕 계곡은 1940년대에 서양인들에 의해 외부에 알려졌고, 1971년에 네팔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우리는 닷새 동안 랑탕계곡을 따라 5,000 m 가까운 고도까지 올라가게 된다. 샤브루베시의 붓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히말라야의 첫 밤을 보내고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아직 고도가 낮아선지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다. 물휴지로 얼굴을 닦는 것으로 세면을 마쳤다. 히말라야에서는 물도 부족하거니와 찬물로 세수를 하면 고소에 걸릴 위험이..

사진속일상 2009.02.06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사말 - 나마스떼

히말라야 지역에는 따망족 등 여러 종족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들 중의 하나라고 한다. 실제로 우리가 트레킹 도중에 만난 이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하나 같이 밝고 웃는 낯으로 "나마스떼"하고 먼저 인사를 했다. 또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카메라를 갖다대어도 전혀 싫어하는 기색이 없이 미소를 지어주었다. 이런 것들은 천성적으로 타고나지 않으면 취할 수 없는 태도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어른들조차 표정이 천진난만하고 맑았다. 가난의 그늘이라고는 적어도 그들의 얼굴에서는 읽을 수가 없었다. 히말라야에서 가장 자주 듣고 한 말이 '나마스떼'였다. 네팔인들만 아니라 서양인들과도 그냥 '나마스떼' 하며 인사를 했다. '나마스떼'는 산스크리트어인데 '나는 당신의 신성에 경배합니다'라는 뜻의..

참살이의꿈 2009.02.06

랑탕 트레킹(2)

오늘은 랑탕 트레킹의 시작 지점인 샤브루벤시(Schabrubensi)까지 가는 날이다. 카트만두에서 샤브루벤시까지는 140 km 정도 되지만 길이 워낙 험한 탓에 버스로 아홉 시간이나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새벽 5시에 기상하여 세수하고 짐을 싼 뒤 호텔 입구에 모였다. 카트만두는 밤새 정전이 계속되어 캄캄한 방에서 헤드랜턴을 켜고 세수를 하고 카고백을 꾸렸다. 호텔에는 이번 트레킹 동안 우리와 동행할 가이드와 포터도 나왔다. 우리 일행이 열두 명인 관계로 전위와 후위를 맡을 가이드 두 명에 짐을 날라줄 포터 열두 명을 더해 총 열네 명이었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사는 종족을 셰르파족이라 하는데 이들은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사람들의 짐을 져주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들은 고산 등반에 천부적인 능력을 발휘하..

사진속일상 2009.02.02

랑탕 트레킹(1)

작년부터 네팔로의 직항로가 열려 히말라야 가는 길이 편리해졌다. 전에는 홍콩이나 태국에서 환승을 해야 했는데 이젠 7 시간 정도면 바로 네팔 카트만두 공항과 연결된다. 우리 일행 12 명이 탄 대한항공 KE695 편은 1월 8일 오전 9시 3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네팔 시간으로 오후 2시에 카트만두공항에 도착했다. 네팔은 우리나라와 3시간 15분의 시차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네팔은 인도와 거의 같은 경도상에 있지만 인도와도 15분의 시차를 일부러 두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일본의 표준시를 그대로 쓰고 있는 것과 비교되는 일이다.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도 히말라야에 간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가고는 싶었지만 너무나 먼 곳, 죽기 전에 꼭 한 번 다녀오리라 다짐은 했지만 그 꿈이 지금 이렇게 이루어..

사진속일상 2009.02.01

히말라야 / 이시영

라다크에서 어느 할아버지는 다람쥐처럼 조르르 지붕에 올라가 비 새는 곳을 수리하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집앞 흔들의자에 앉아 소년처럼 잠시 붉은 얼굴로 타는 노을을 바라보다 그만 저 세상으로 가시었다 사람의 삶이 아직 광활한 자연의 일부였을 때 - 히말라야 / 이시영 히말라야 기슭에 사는 네팔 사람들은 히말라야를 닮았다. 라마 호텔 롯지의 늙은 주인의 얼굴에서도 문명인에게서는 볼 수 없는 인간적 품위와 위엄이 느껴졌다. 물론 라마 호텔은 이름만 호텔이지 겨우 바람만 막는 허술한 숙소였다. 그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마음마저 궁핍한 것은 아니었다. 히말라야 쪽 네팔인들은 티베트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많이 산다. 나이가 든 그들의 모습에서는 자연과 하나가 된 인디언의 풍모가 연상되었다. 사람의..

시읽는기쁨 2009.01.31

히말라야에서 돌아오다

히말라야 랑탕 트레킹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두 주일 동안 지낸 네팔에서의 시간은 나에게는 새롭고 경이로우며 행복했던 경험이었다. 그러나 귀국한지 하루가 지났지만 아직도 얼떨떨하기만 하다. 내가 정녕 히말라야에 다녀왔는지 마치 한 바탕 긴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다. 인천공항에 랜딩할 때도 여기가 내 나라인지 이방인의 땅인지 헛갈릴 정도로 낯설었다. 그것은 네팔과 한국이라는 지리적 거리만이 아니라 두 극단의 풍경과 문화에 대한 혼란 때문이 아닌가 싶다. 현실의 자리로 돌아오자면 앞으로도 여러 날이 걸릴 것 같다. 이번에 우리는 팀원 12 명에 포터 12 명, 가이드 2 명 등 총 26 명의 대부대였다. 네팔 카트만두에서 버스로 샤브로베시까지 이동한 후 트레킹을 시작했다. 히말라야 랑탕 계곡을 따라 여..

사진속일상 2009.01.24

히말라야로 떠나며

내일 아침이면 히말라야로 떠난다. 지금 기분은 설레임 반, 두려움 반이다. 가장 걱정이 되는 건 고산지대의 추위와 고소증이다. 그러나 이젠 다른 도리가 없으니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없다. 히말라야에 들면 세상과 완전히 절연되는 것이 제일 좋다. 산 속에 있는 동안은 아랫 마을에서 천지개벽이 생겨도 모를 것이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일상의 번뇌를 벗어놓고 맑고 신령스러운 히말라야의 품 안에서만 놀 것이다. 게다가 내가 가는 곳은 랑탕 계곡이니 히말라야와 내밀한 사랑의 황홀경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밤이면 히말리야의 별이 빛나는 밤하늘에 도취되고 싶다. 그리고 내 체력과 인내의 한계도 시험해 보고 싶다. 일견 무모해 보이지만 과감히 히말라야행을 결심했던 내 도전정신에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겠다. ..

사진속일상 2009.01.07

히말라야 팀이 아차산에서 만나다

히말라야행이코 앞으로 다가왔다. 오늘은 히말라야 팀이 아차산 등반을 하며 마지막 준비 모임을 가졌다. 단장님이 환전한 달러를 받고 서로의 준비물을 점검했다. 이제는나흘 뒤에 인천공항에서 만나는 일만 남았다. 오전에는 함께 세 시간 동안 아차산 길을 걸었다.이젠 서로간에 동지의식 같은 게 생긴다. 누구 하나라도 탈이 나면 전체 일정이 차질이 생긴다. 모두가 아무 탈 없이 계획대로 잘 다녀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산행길에 삼층 석탑을 만났다. 많이 훼손은 되었지만 전체적으로 단순하면서 절제미가 느껴지는 석탑이다. 특히 산 능선의 전망 좋은 바위 위에 서 있는 것이 특이하다. 예전에는 이 근방에 사찰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안내문에는 고려 중엽의 불탑이라고 적혀 있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서 함께 점심을 먹었..

사진속일상 2009.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