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고향에 내려가 옛 은사님을 뵙다 본문
1959년에 국민학교에 입학했으니 67년 전이다. 한 학년에 남녀 각 한 반씩 있던 작은 시골 학교였다. 국민학교에 다니던 6년 동안 특별히 기억되는 선생님이 계신다. 선생님은 우리가 2학년 때 초임으로 부임하셨는데, 근무하시는 동안 세 해(2, 5, 6학년)나 우리들 담임이셨다.
연초에 선생님과 우연히 전화로 연락이 닿았다. 선생님은 나를 기억하고 계셨고 어머니 안부까지 물으셨다. 통화를 하면서 그동안 무심했던 나를 자책했다. 돌아가셨으리라 짐작하고 아예 잊고 지냈던 것이다. 선생님은 연세가 93세이신데 목소리가 팔팔하고 정정하셨다. 곧 찾아뵙겠다고 약속을 했다.
동기 넷과 일정을 맞추고 준비하며 많이 설렜다. 선생님을 만나는 게 나로서는 졸업 후 63년 만이었다. 설마 그럴 리가 있느냐며 친구가 말했지만 내 기억에는 없다. 차라리 잊은 탓이라 돌리고 싶게 부끄러웠다.

음식점 자리는 60여 년 전 추억으로 따스했다. 학창 시절을 거치며 많은 선생님들을 만났지만 선생님은 대표적인 열정적인 분이셨다. 그때는 중학교도 입시를 보고 들어갔다. 시골 학교지만 6학년 때는 엄청나게 공부를 시켰다. 숙직실에서 선생님 집에서 특별 과외를 받기도 했다. 물론 무료 봉사였다. 그 덕분에 군내에서 가장 좋은 진학률을 기록했다.
지금도 동기들 사이에서는 선생님에 대한 호오가 뚜렷하다. 공부 잘하는 아이만 이뻐했다는 것이다. 아직 선생님을 무서워하는 친구가 있다고 농삼아 말했더니, 선생님은 당시는 엄격하게 공부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대답하셨다. 선생님은 학교 아이들만 아니라 당신의 삶에도 최선을 다하셨다. 자식 넷 중 셋을 서울대에 보내 신문에 나올 정도였으니까. 모두 우리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다. 당신도 교장과 교육장을 거쳐 정년 퇴임하셨다.

그러함에도 세월의 무상함 앞에서 쓸쓸해지는 건 어찌 할 수 없다. 2학년 꼬맹이들과 처음 만났을 때 선생님은 20대 중반이었는데 어느새 아흔이 넘으셨다. 철부지 아이들도 이미 70대 노인이 되었다. 선생님이 연(緣)을 강조하셨듯 우리들 사이를 연결해 주는 인연의 묘함을 생각한다. 선생님을 자주 찾아뵈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서울 친구들은 버스편으로 올라가고 나는 어머니가 계신 고향집을 찾았다.

창고 구석에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태어났다.

처마에는 제비 새끼 네 마리가 어미를 기다리고, 여기저기서 새 생명이 도래하며 환희하는 봄이다.

어머니 진료를 위해 모시고 간 안동병원 앞 둔치는 금계국이 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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