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본문
최승자 시인의 산문집이다. 첫 판은 1989년에 출간되었는데 1976년부터 시인의 생각과 삶을 담고 있었다. 2021년에 나온 새 판은 그 이후의 기록이 추가되었다. 새로운 산문집을 낼 만도 한데 옛 판에 보태기를 한 것 보니 게으른 시인이긴 한가 보다. 개정판에 적힌 시인의 말이 재미있다.
"오래 묵혀두었던 산문집을 출판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것 같다.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자니 웃음이 쿡 난다. 웃을 일인가. 그만 쓰자. 끝."
1970년대의 글을 보면 허무와 절망으로 가득하다. 내면의 고뇌와 투쟁으로 치열하게 살아낸 흔적들이다. 슬픔의 깊이가 헤아릴 수 없게 깊다. 1980년대에 들면 글이 밝아지고 삶에 대한 긍정과 의지가 느껴진다. 그 뒤로 시인은 점성술이나 카발라 같은 신비주의에 빠졌던 것 같다. 노장 사상에도 몰두했던가 보다. 시인은 환청과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며 정신병원을 들락거리게 되었다고 밝힌다. 요사이 근황은 어떤지 궁금하다. 천주교에 귀의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짧은 인생이지만 수많은 굴곡과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간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내면의 고통으로 황폐해진 시절을 지나기도 한다. 최승자 시인의 삶도 그러했던 것 같다. 시인의 얼굴에는 그런 고뇌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타인의 고통을 대신해서 짊어진 것 같기도 하다. 시인의 시는 피로 써졌을 것 같다.
시인이 소개하는 수피즘 이야기에 나오는 죽음에 대한 비유를 옮긴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어떤 산꼭대기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한 물은 모여 모여, 흘러 흘러 마지막으로 바다로 흘러들지. 그러나 이 물이 하는 숱한 여행 중에서 언젠가 한 번은 사막을 건너가는 여행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와. 온 세상을 돌고 돌아 흐르다 마침내 사막 앞에 다다른 물은 절망하지. 달구어진 거대한 모래사막을 앞에 두고서 물은 공포에 떨어. 물이 사막을 건널 수는 없으니까. 도중에 물은 깊은 모래 속으로 빨려내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니까. 그때 사막이 물에게 말하지. 선택하라.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를. 물론 물은 살고 싶다고 말하지. 그러자 사막은 그러면 공기로 변해 하늘로 올라가라고 말해. 하지만 물이라는 육체의 아이덴티티밖에 알지 못하는 물에게는 그 물(육체) 형태를 잃는다는 것 자체가 죽음이야. 그래서 물은 더욱 공포스러워하지. 그때 허공의 보이지 않는 바람이 물에게 속삭여. "우리와 함께하라. 우리는 수도 없이 이 일을 해 왔다. 우리가 공기가 된 너를 실어날라 그 산으로 데려다주마. 그러면 너는 거기서부터 다시 물이 되어 흐르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명의 내용을 알지 못하고 물(육체)이라는 형태를 생명으로 알았던 물은 자기 죽음 앞에서 선택하지 못하고 떨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할 순간은 오고, 그리하여 그 물 중의 어떤 부분은 증발해 바람에 실려갔고, 다른 어떤 부분은 사막이 모래 깊은 곳으로 흘러들어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지. 그때 공기로 변하는 쪽은 택했던 물은 비로소 그것이 이것이냐 저것이냐 양자택일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선택이라는 것을, 그리고 모래 속으로 자취 없이 사라져 죽음을 맞이했던 다른 부분은 바로 그렇게 자기 자신으로부터 죽어 떨어져나가야 했던 부분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거야. 아마 우리 인간들의 삶도 그럴지 몰라. 언젠가는 그렇게 선택하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오고, 그리고 그렇게 선택하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오는 인생이 겉으로는 무시무시하고 불행해 보일는지 모르지만, 일단 그 과정을 거친 뒤에는 그것이 오히려 축복이었음을 알게 될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