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분별망상 본문
K는 유튜브를 많이 본다고 했다. 유튜브 속에는 세상의 온갖 정보가 들어 있어 유용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유용성보다는 편향된 사고에 빠질 수 있는 위험에 대해 말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편리하지만 잘못하면 독이 된다. K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내 분별력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어차피 인간은 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게 아닐까, 나는 회의에 무게를 두고 말했다.
불교에 분별망상(分別妄想)이라는 말이 있다. 산다는 것이 분별하고 주관을 세워 나가는 일인진대 결국 삶이 망상이라는 소리가 아닌가. 슬프게도 망상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게 인생이다. 불교적으로 보면 분별력도 망상에 불과한 것이다.
무심(無心)이라는 말도 있다. 마음이 없다는 게 무슨 뜻이지. 분별과 연결지어 보면 무심이란 분별하지 않는 마음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그러나 살면서 분별하지 않을 도리가 없잖은가. 우리는 무수히 분별하고 선택하며 살아간다. 죽어야 분별을 멈춘다. 그러니 살아 있는 인간에게 분별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무분별심이란 분별에 매이지 말라는 소리가 아닐까,라고 나는 내 식대로 받아들인다.
확신을 하면 분별에 묶이는 것이다. K가 분별력을 강조하고 자신의 분별력을 믿을 때 그는 망상에 빠진 것이다. K의 반대편 입장에 있는 사람과 하등 다를 게 없다. 그러므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확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옳고 그름이란 길고 짧은 개념과 비슷하다. 긴 것이 가장 짧을 수 있고, 짧은 것이 제일 길 수도 있다. 그것들은 내 기준의 잣대에 따라 발생하는 허상일 뿐이다. 이 정도만 받아들여도 분별망상의 늪에서 발버둥치다가 더 깊이 빠져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같은 사안을 두고 자신의 관점에 따라 정반대의 입장으로 갈라진다. 그러면서 다들 자신만이 옳다고 우긴다. 물은 둥근 그릇에 담으며 둥글게 보이고, 사각형 그릇에 담으면 각지게 보인다. 그걸 보고 물은 둥글다, 사각이다 하며 싸운다. 어리석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을 바라보는 제 마음의 틀에 따라 세상은 다른 꼴로 보인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맨날 분별하면서 내 기준으로 타인을 비난한다. 큰 소리를 치면 칠 수록 분별망상에 빠지는 것이다. 이제껏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게 중생의 운명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러다가도 언뜻 알아챈다. 아, 내가 헛짓거리를 하고 있구나. 그러면서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다. 더 이상 늪으로 빠져드는 것은 막는 것이다.
결국 분별의 종착지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소크라테스의 말로 회귀하는 게 아닐까. 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자신의 내면으로 돌리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의견은 잠깐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견해일 뿐, 애착할 대상이 아니다. 흘러가는 바람처럼 구름처럼 두라. 내가 나를 모르는데 어찌 밖을 판단하며 확신까지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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