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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살이의꿈

중요한 것과 하찮은 것

샌. 2026. 3. 25. 10:47

신학 용어에 '디아포라(diaphora)'와 '아디아포라(adiaphora)'가 있다. '디아포라'는 성경에서 언급하는 아주 중요한 사항으로 절대적으로 고수해야 할 가치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양보할 수 없다. 반면에 '아디아포라'는 성경이 명백하게 말하지 않아서 '대수롭지 않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인 사소한 것이다. 사람의 형편에 따라 임의로 결정할 수 있다.

 

'디아포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치고 이단으로 몰리기도 했다. 인간은 진리라고 하는 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목숨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있다고 믿는 게 인간이다. '절대' '진리' 같은 말의 위험성이 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매달리는 인간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그러나 인간은 '아디아포라' 같은 하찮은 것에 목숨을 걸 정도로 집착하기도 한다. 사실 인간사에서는 이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남편은 경상도, 아내는 전라도 사람인 부부가 있었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고,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저녁 아내가 따뜻하게 삶은 감자를 식탁 위에 올렸다.

"여보, 감자 먹어봐요."

남편은 아무 생각 없이 옆에 있던 그릇에 놓인 하얀 가루에 감자를 찍어 먹었다. 그런데 맛이 이상했다.

"아니, 이게 뭐야? 설탕이잖아."

남편은 눈살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우리 경상도에서는 감자를 소금에 찍어 먹는데, 설탕에 찍어 먹는 사람은 처음 봤네."

아내는 그 말에 얼굴빛이 확 변했다.

"세상에, 감자를 소금에 찍어먹는다고? 우리 전라도에서는 설탕에 찍어 먹어요. 얼마나 맛있는데."

사소한 한 마디가 오해를 낳았고, 오해는 다툼으로 번졌다. 서로의 방식이 틀렸다고 주장하며 둘은 감정이 격해졌다. 결국 서로 맞지 않아 못 살겠다는 말까지 나왔고, 이혼 법정에까지 서게 되었다. 판사 앞에 선 남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판사님,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감자를 설탕에 찍어 먹으라니요."

아내도 지지 않았다.

"판사님, 세상에 감자를 소금에 찍어 먹는다는 말 들어보셨어요? 그게 더 이상하죠."

판사는 둘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두 분 다 재미있으시네요. 감자를 소금에 찍든 설탕에 찍든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 강원도에서는 고추장에 찍어 먹습니다."

그 순간, 법정 안이 숙연해졌고 둘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별 것 아닌 일 하나가 한 가정을 무너뜨릴 뻔했던 것이다.

 

노년이 되면 지혜로워져야 한다고 말한다. 지혜란 무엇일까? 중요한 것과 하찮은 것을 구별할 줄 아는 분별력이 아닐까. '아디아포라'에 속하는 문제를 가지고 서로를 할퀴고 상처를 주지 않으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다. 하찮은 일로 고민하며 자신을 들볶고 자학한다. 무엇이 중요한 사안인지 그렇지 않은지 올바른 분별심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삶이 훨씬 더 편안하고 여유로워질 것 같다.

 

영화 '곡성'에서 "뭣이 중헌디?"라고 부르짖던 한 아이의 눈빛이 떠오른다. 아버지에게만 하는 외침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에게 묻는 질문이었다. 우리는 본질적인 것은 외면하고 비본질적인 것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은 아닐까. '뭣이 중헌디'를 노래하는 가수도 있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디 / 정답은 바로 사랑이더라 / 금은보화 부귀영화 가진다 해도 / 어차피 두고 갈 것을 / 춤추고 노래하자 웃으며 살아가자"

 

인생의 구할은 쓸데없는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하다고 한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을 후회하고 오지도 않은 미래를 염려하느라 시간을 낭비한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 마음을 다치고, 별 것 아닌 일에 고집을 부린다. 그러다가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삶을 쓰레기로 채운다. 이것이 무슨 인생이란 말인가.

 

친구여, 바쁨을 자랑 마소. 게으름을 여유라고 착각하지도 마소. "뭣이 중헌디?" "이건 아디아포라야." 그대 마음 속에서 이 말이 자주 흘러나오기를. 영국의 한 방랑시인의 시를 읽는다. 

 

이것이 무슨 인생인가, 근심으로 가득 차

잠시 멈춰 서 바라볼 시간 없다면

 

나뭇가지 아래서 양과 소처럼 순수한 눈길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볼 시간 없다면

 

숲을 지나며 수풀 속에 도토리 숨기는

작은 다람쥐들을 바라볼 시간 없다면

 

한낮에도 마치 밤하늘처럼 반짝이는 별들을

가득 품은 시냇물을 바라볼 시간 없다면

 

아름다운 여인의 다정한 눈길에 고개를 돌려

춤추는 그 고운 발을 바라볼 시간 없다면

 

눈가에서부터 시작된 그녀의 환한 미소가

입가로 번질 때까지 기다릴 시간 없다면

 

이 얼마나 가여운 인생인가. 근심으로 가득 차

잠시 멈춰 서 바라볼 시간 없다면

 

- 여유(Leisure) /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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