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은빛 물고기 본문
'연어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연어의 일생을 짚으면서 자연과 삶의 신비를 탐구하는 고형렬 시인의 역작이다. 속초가 고향인 시인은 남대천으로 회귀하는 연어의 모습에 어릴 때부터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은빛 물고기>는 시인의 사유를 드러내는 명문장들이 보석처럼 빛나는 책이다. 감히 내가 여기에 사족을 덧붙일 수 없다.
책 초반부에 나오는 이런 글에 매료되었다.
혼자 천궁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동해의 추운 대월(大月)을 개가 컹컹 짖어댄다. 시누대가 소리를 낸다. 싸락눈발이 치는 듯.
텅 빈 이 우주의 달밤에 아무도 깨어 있지 않은 고요만 팽창한다.
파랑의 꿈이 펼쳐진 먼 바다와 앞바다의 몰개소리와 벽에 치는 바람 속에 개가 짖어대는 소리가 먼 산중의 포 소리처럼 아뜩하게 온 마을에 들린다. 누렁소는 외양간에서 마른 볏짚에 배를 붙이고 연어코가 끈적끈적하게 말라가는 뒤란으로 새어드는 저 세상의 빛을 멍하니 바라본다.
모든 생명들은 세월을 하도하도 많이 거쳐 온 탓에 모든 것을 완전히 잊은 것 같다. 그 세월에도 연어들은 나그네 길을 가고 있다. 또 연어들은 어가(漁家)에서 나뭇가지에 걸려 눈바람에 살점을 오므리며 말라갔다. 새벽 몰개소리는 잠든 마을 사람들의 머리맡과 문 밖의 쌀쌀한 밤길을 돌아다니고, 달빛 그림자는 그 소리를 넋처럼 데리고 다닌다. 적막함은 생을 헌신하는 그 나그네들이 찾아오지 않은 채 지나가는 겨울을 상상할 수 없다.
어머니의 궁궐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다가온다. 그것을 아이들은 모두 알고 있는 것 같다. 연어들은 까마득한 밤의 바닷물 속 어디를 지나가고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바람에 날아가는 티끌처럼 어느 문으로 그들의 영육은 휩쓸려 들어간다. 갑자기 다른 세상으로 그들의 정신은 빠져나간다.
허궁다리의 수궁이 나올 것이다. 물의 흐름이 넉넉해지면서, 언젠가 뇌 속에까지 파고들던 체취가 풍겨 잠시 아뜩하고 불안하다. 그것은 어느덧 와 있는 어머니의 몸 안이었다. 마른 냄새가 풍긴다. 물은 너울거리고 살결은 부드럽다. 우리는 어느새 이곳에 와 있었다.
물은 한곳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이리저리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며 물 스스로가 물과 함께 한없는 부드러움을 만들고 있다. 그것에 밖에서 혹은 안에서 생각하는 어머니의 형체 없는 마음의 몸놀림일 것이다. 물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자신의 몸의 일부가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을 느낀다. 그때 눈이 대월을 뚫어지게 내다보았다.
달이여, 그대는 오늘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연어와 인생에 대해 책 한 권을 할애했지만 결국 우리가 아는 것은 별로 없다. 연어의 모천회귀성, 그 회유의 신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오호츠크해와 베링해를 회유하다가 그 무슨 부름이 있어 연어는 고향으로 발길을 돌리는 걸까. 본원에 닿으려는 -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찾아가려는 - 연어의 광기에 가까운 격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생명의 신비를 이토록 멋지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풀어낸 시인의 솜씨에 감탄한다. 시인의 상상력이 대단하다. 책을 읽고 나니 우리는 모두 한 몸이라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지구는 거대한 하나의 알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 남은 말은 오로지 하나 '신비'이다.
<은빛 물고기>는 단순한 물고기 이야기가 아닌 깊은 철학적 사유에 바탕을 둔 책이다. 거기에 연어의 일생에 대한 지식을 얻은 것은 소소한 소득이었다. 금년 들어 고래와 연어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가수 강산에가 부른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을 책의 내용을 음미하며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