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이 별에서의 이별 본문
부제가 '장례지도사가 본 삶의 마지막 순간들'로 양수진 장례지도사가 본인이 일하면서 경험한 인간의 삶과 죽음의 풍경을 보여준다. 저자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 다니던 중 장례지도사의 길을 선택했다. 젊은 여성이 장례지도사의 길을 택한다는 건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저자도 처음에는 부모에게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타인의 주검을 다루는 일이 어디 만만하겠는가. 이 책에서는 장례지도사 일을 하는데 여자로서의 고충, 세상의 선입견과 부딪치는 내적인 갈등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장례지도사는 서비스 업종으로 감정 노동의 강도가 특히 심한 것 같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저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저자가 사례로 든 여러 죽음을 보면서 인간이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한다. 죽음이란 인간에게 영원한 실존적 의문이다. <이 별에서의 이별>에 나오는 많은 이별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저 먹먹해질 뿐이다. 우리는 살아지다가 그리고 사라진다. 이 진실 앞에 어떤 의미와 이론을 붙인들 사족에 불과하다.
이 책을 보니 죽음은 이미 내 곁에 가까이 와 있는 것 같다. 먼저 간 사람과 다른 것은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나오는 저자의 말 일부를 옮긴다.
우리에겐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에 대한 갈망이 있다. 그러나 대개 죽음은 당장에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길 모퉁이 풀이 자라고 시드는 것을 무심히 바라보면서 나 또한 그럴 것이라는 사실은 간과한다. 그래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생명이 있는 존재는 예외 없이 죽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그 지극히 본능적인 물음을 인정해야 한다. 죽음을 미리 떠올린다는 것은 삶에 대한 회의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더욱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 지름길이다.
평온한 마음으로 여유 있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뛰어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주어진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전제하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새기기만 한다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축복이라 생각한다. 밤이 깊을수록 별들이 더욱 선명하게 반짝이듯, 죽음에 대한 명료한 의식이 있을 때 삶 또한 영롱히 드러난다. 지금 잠시 눈을 감고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사라지다 사라져가는 것에 대하여.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면 여전히 '모른다'고 답할 것이다. 죽음을 통해 죽음을 알 수는 없었지만, 삶은 더없이 명확해졌다. 어쩌면 삶이라는 시간의 명료함이 죽음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그런 얘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진부한 해석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와 당신의 차이라면 죽어가는 사람 혹은 죽어 있는 사람을 다뤄본 경험의 차이가 아닐까. 서서히 호흡이 멈추고, 체온이 식어가며 굳어가는 육체의 죽음을 통해 관념적인 죽음을 실제적인 죽음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죽음은 삶의 의미를 일깨우는 더할 나위 없는 가르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