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본문
강재훈 사진작가의 나무에 관한 사진 에세이다. 글과 사진에는 나무에 대한 애정이 절절히 묻어 있다. 작가는 30년 넘게 신문 사진 기자로 근무하면서 사라져가는 분교를 찍다가 나무와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떠난 분교에서 외롭게 자라는 나무를 보며 나무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작가는 크고 오래된 유명한 나무보다는 산야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자라는 나무에 더욱 관심을 갖는다. 그런 나무와 친구가 되면 수시로 찾아가서 나무를 찍고 대화를 나눈다.
강원도에 있는 분교에 다녀오는 도중에 길가 벌판에 서 있는 작은 나무가 작가의 눈에 들어왔다. 풀들이 자라는 넓은 벌판에 홀로 서 있는 어린 나무였다. 여러 해에 걸쳐 이 나무를 찾아가며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이 나무를 찾아간 어느 날, 나무는 밑동이 잘려 죽어 있었다. 작가는 이렇게 적었다.
"어미나무를 떠나 이 허허벌판에서 고아로 자랐을 강원도 그 녀석, 말 없는 아이로 자라며 외로움을 견디다 못 해 바람으로 말을 대신하며 나를 불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아득하기만 했다. 그 뒤로도 두세 차례 더 찾아가 그 녀석의 빈자리를 바라보다가 돌아왔다. 내게 왔다가 사진으로 남겨진 채 내 곁을 떠난 그 나무, 사람의 인연도 이와 같을까? 스치듯 만났던 짧은 인연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고, 오랜 인연이라고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오늘 하루 내 곁을 스쳐 지나는 모든 사람이 내 인생에 인연이 닿아 찰나의 순간 나를 채워주는 소중한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 눈에는 아무 것도 아닌, 그저 흔하디 흔한 나무 중 하나지만 작가에게는 특별한 인연으로 다가왔다. 그 나무를 통해 작가는 인생길에서 만나는 여러 인연에 대해 생각한다. 또한 모든 만남이 고맙게 여겨질 것이다. 그 나무가 작가에게 남긴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 주고 싶어 나무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책 제목인 <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이 뜻하는 바일 것이다. 책에는 정겹고 따뜻한 나무 이야기가 가득하다. 나무와 친구를 맺은 사람이 찍은 사진이 어떻게 다른지도 보여준다. 나무를 찍기 이전에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고향이 그리워서 나무를 본다'라는 글이 있다. 고향과 소년 시절을 떠올리는 미루나무에 관한 이야기다. 내 경험, 추억과 거의 일치해서 내용에 완전히 공감했다. 1960년대생까지도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미루나무는 고향의 추억과 밀접하게 연관된 나무라고 생각한다. 전봇대처럼 길가에 줄을 지어 늘어서서 감성적인 풍경을 연출하던 그 많던 미루나무는 다 어디로 갔을까.
고맙게도 나는 동네에 새로 생긴 공원에서 미루나무를 자주 만난다. '양버들'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어서 구별이 궁금했는데 마침 이 책에서 작가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포플러'라는 학명을 갖고 있지만 미루나무와 양버들은 다른 나무라고 한다. 일직선으로 곧게 자라 빗자루를 거꾸로 세워 놓은 듯 위로 길쭉하게 자란 모양의 나무가 양버들이고, 모양은 비슷해도 가지 일부가 옆으로 퍼져 자라는 나무가 미루나무다. 미루나무의 잎은 폭보다 길이가 길고 양버들의 잎은 길이보다 폭이 넓다. 내가 고향에서 본 나무나, 지금 공원에서 만나는 나무는 정확히는 미루나무가 아니라 양버들이다. 그렇지만 양버들이라 부르면 나무의 느낌이 살지 않는다. 나는 계속 미루나무라 부르련다. 호적에 실린 이름보다 집에서 부르는 이름이 더 다정한 법이니까.
<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은 다정하고 따스한 책이다. 나무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나도 경안천에 있는 내 친구 나무를 보러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