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건너가는 자 본문
최진석 선생의 <반야심경> 해설서다. 선생은 <반야심경>을 '익숙한 이곳에서 새로운 저곳으로 건너가는 삶의 태도'를 가르친다고 읽는다. '건너간다'는 것은 삶의 패러다임이 변한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이곳'이 있고, 구별되는 '저곳'이 있다는 것과는 다르다. <반야심경>의 중심어가 '공(空)'인데, 사물은 자신을 그것이게 하는 성질이 없다. 그러함에도 인간은 건너가는 존재다. 아니 건너가야만 하는 존재다. 이 책은 우리의 삶에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닫게 되는 내용이 있었다. 불교의 핵심 개념인 공(空)을 본무자성(本無自性), <도덕경>의 도(道)를 유무상생(有無相生), <주역>의 도(道)를 일음일양(一陰一陽)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 가슴에 박혔다. 언어는 기호일 뿐이다. 특히 철학이나 종교 용어를 대할 때 그 언어가 품고 있는 본래 의미를 놓쳐서는 안 되겠다.
공(空)이나 허(虛)를 '텅 비운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소극적이거나 도피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는 것을 선생은 경계한다. 오히려 반대라는 것이다. 힘을 빼는 것은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함이다. 발전이나 성장, 물질문명을 부정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나도 오랫동안 공(空)이나 무위(無爲)를 잘못 이해했다. '건너가는 것'은 삶이 허무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라, 삶이 생기로 가득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적극적인 발걸음으로 보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무소유(無所有)도 소유적인 태도를 버리라는, 세계를 자기 뜻대로 정하려고 하지 말라는 의미가 된다. 상(相)을 짓지 말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이다. 무소유를 가난이나 청빈과 연결하는 것은 일차원적인 사고이다. 선생은 말한다. "세계가 공이니 바쁜 걸음을 멈추자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가 공이니 굳지 않고 계속 끝까지 걷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상에 갇히지 말자고 하는 이유는 상에 갇히면 멈춰서서 굳어가며 쉽게 진부해지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뜨끔해진 것이 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상대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은 지적 게으름의 한 형태라고 선생은 지적한다. 이미 정해진 눈 말고 다른 눈이 없는 꼴이다. 지적으로 게을러서 갖게 되는 치명적인 상 세 가지가 정치적 신념, 종교적 믿음, 도덕적 확신이다. 내가 그랬으며 지금도 그러고 있다. 특히 정치적 신념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고 타인을 미워한다. 그들은 그들대로 놀게 두어야 하는데 말이다.
"우리가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특정한 이념이나 관점을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런 틀과 이념, 관점들을 하나하나 걷어내어 정해진 어떤 창도 없는 상태에 도달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행위는 이미 자리 잡은 틀이나 관점이나 이념에서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봐야하는 대로 보거나 보고 싶은 대로 보지 않고, 보이는 대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자재(自在), 즉 그 상태 그대로 보고, 또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반야심경>의 끝은 그런 다짐으로 마무리한다.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상가테 보디 스와하"
"건너가세, 건너가세, 저기로 건너가세, 저기로 다 함께 건너가세, 깨달음이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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