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30

연미정 느티나무

강화도 연미정(燕尾亭)에 있는 느티나무다. 안내문에는 수령이 500년으로 되어 있으나 그렇게 오래 돼 보이지는 않는다. 원래는 두 그루가 있었으나 하나는 4년 전 태풍 때 허리가 부러져서 죽고 말았다. 그래선지 짝을 잃은 이 느티나무가 더 외로워 보인다. 나무는 부러졌지만 둥치에서는 새 잎이 돋아나고 있다. 아직 뿌리는 죽지 않았다는 뜻이다. 고목이 죽더라도 다시 생긴 줄기가 성장하여 2세대 큰 나무가 되기도 한다. 자연의 생명력은 경이롭기만 하다.

천년의나무 2023.09.06

아내와 강화도에 다녀오다

가을을 맞아 아내와 바람 쐴 겸 강화도에 다녀왔다. 먼저 들린 곳은 연미정(燕尾亭)이었다. 연미정은 조선 시대 무신이었던 황형(黃衡, 1459~1520)의 무공을 치하하여 중종이 하사한 정자다. 황형은 여기서 살며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이곳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에 제비 꼬리 모양으로 돌출한 지형이어서 '연미'라고 부른다. 그 뒤에는 월곶진이 설치되어 관아로 사용하였다. 연미정에서 내려다보면 황형의 집터를 표시하는 비와 월곶진의 문루인 조해루가 보인다. 두 번째는 교동도의 연산군 유배지로 갔다. 이곳은 최근에 화개정원을 만들고 뒷산 꼭대기에는 화개산전망대를 세웠다. 정원에서 전망대까지는 모노레일이 운행한다. 얼마나 변했는지 확인만 하고 싶었던지라 정원만 둘러보고 전망대까지는 올라가지 않았다. 대룡..

사진속일상 2023.09.05

교동도와 장화리 석양

교동도에서 강화나들길 9코스를 걷는 경떠회 모임에 늦게 합류하다. 끝 구간을 30분 정도만 함께 걷다. 교동도는 교동대교가 세워지기 전 배를 타고 들어온 적이 있다. 화개사, 연산군유배지, 대룡시장을 둘러보고 교동도의 오래 된 나무를 찾았다. 그때 찍은 나무 사진을 무슨 이유인지 블로그에 올리지 못했다. 강화나들길은 총 20 코스에 길이가 310km인데, 교동도에는 9, 10코스가 있다. 조금밖에 걷지 못했지만 걷는 길로는 괜찮은 것 같다. 앞으로 강화도 나들이 계획 세울 때 나들길을 포함시키면 좋겠다. 대룡시장에서 국밥으로 점심을 먹다. 시장 분위기는 13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때는 시골 장터의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현대적이고 상업적인 냄새가 난다. 다리가 개통되고 외지인 출입이 늘면서 생기는 ..

사진속일상 2020.02.15

보문사 향나무

석모도 보문사에 있는 향나무다. 대웅전 왼쪽 옆의 석실 앞에 있다. 나무가 있는 땅은 주변보다 2m 정도 높다. 땅을 깎아내면서 나무만 덩그러니 남은 듯하다. 수세가 왕성하여 잎이 온몸을 둘러싸고 있다. 수령은 700년 정도로 추산한다. 45도로 땅에서 나온 줄기가 둘로 갈라지면서 용트림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철주로 받쳐주지 않는다면 가지 하나는 상했을 것이다. 이웃해 있는 느티나무와 함께 이 향나무는 보문사의 중요한 풍경을 이룬다. 이런 나무가 있으므로 절 역사는 깊이를 더한다.

천년의나무 2019.05.16

성공회강화성당과 보문사

천주교 성지순례 겸 바람을 쐬기 위해 아내와 강화도에 간 길에 성공회 강화성당과 석모도에 있는 보문사에 들렀다. 1900년에 건립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공회 성당이다. '천주성전(天主聖殿)'이라는 현판이 달린 2층의 팔작지붕 구조의 한옥 형식의 건물이다. 주련이 있는 것도 우리 전통을 그대로 살렸다. 無始無終先作形聲眞主宰 宣仁宣義聿照拯濟大權衡 三位一體天主萬有之眞原 神化周流有庶物同胞之樂 福音宣播啓衆民永生之方 처음도 끝도 없고 형태와 소리를 먼지 지으신 분이 진실한 주재자시다 인을 선포하고 의를 선포하여 드디어 구원을 밝히시니 큰 저울이시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만물의 참된 근본이시다 하느님의 가르침 아래 만물이 성장하니 동포의 즐거움이로다 복음이 전파되어 세상 사람들이 깨달으니 영생의 길이로다 목조로 ..

사진속일상 2019.05.15

관청리 느티나무

강화읍 관청리에 있는 느티나무다. 강화성 동문 가까이에 있다. 지대가 높아 나무에서는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수령은 600년 정도이고, 높이는 19m, 줄기 둘레는 7m다. 이 나무는 큰 가지가 하나가 잘려나가서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다르다. 온전한 나무라면 360도 대칭 구조라 어디서 봐도 비슷하다. 그러나 균형이 깨지면 같은 나무인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신산한 세월의 흔적이 배인 관청리 느티나무다.

천년의나무 2019.05.14

성지(15) - 강화도

강화도에는 천주교 성지가 세 곳 있다. 갑곶순교성지, 진무영성지, 일만 위 순교자 현양동산을 차례대로 찾다. 잔뜩 흐리고 가는 비가 간간이 뿌리다. 24. 갑곶순교성지 강화도는 한양 방어의 요충지로 고려 시대부터 외세와 충돌해 온 역사의 현장이다. 이곳이 카톨릭과 관계를 갖기 시작한 것은 1866년 병인양요에 이은 병인박해 때다. 조선이 프랑스인 성직자 9명을 처형한 책임을 물어 프랑스 함대가 이곳 갑곶 돈대로 상류하여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했다. 프랑스군이 물러간 뒤에 전쟁의 책임을 물어 많은 천주교인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갑곶순교성지는 그분들의 넋을 기리는 장소다. 아내는 11시 미사를 봉헌하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 특이하게 인도인 단체여행객이 보인다. 기도하는 사람은 없고 기념사진만 찍고 가는..

사진속일상 2019.05.14

백련사 느티나무

강화도 고려산에 있는 백련사는 봄이면 몸살을 앓는다. 고려산 진달래 축제가 열리는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구경꾼들이 고인돌광장에서부터 백련사를 거쳐 진달래 꽃밭에 간다. 사람 발길 드문 조용한 산사가 한 달 정도 시장통이 된다. 스님들도 봄 몸살로 고생할 것 같다. 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인도에서 온 천축조사가 절터를 찾다가 강화도에서 다섯 색깔의 연꽃이 만발한 연못을 발견했다. 색깔별로 연꽃씨를 채취하여 공중에 날려 떨어진 곳마다 가람을 세웠다는데 그 중에서 흰 연꽃씨가 떨어진 곳이 바로 백련사(白蓮寺)다.이 산의 원래이름은 오련산(五蓮山)이었는데 뒤에 고려산으로 바뀌었다. 아마 고려 시대에 왕실이 강화도로 피난온 것에서 그렇게 바뀌지 않았나 싶다. 전설대로라면 백련사는 유서 깊은 고..

천년의나무 2011.04.27

전등사 느티나무

똥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더니 절에 가도 부처님보다는 오래된 나무만 살피게 된다. 우리나라 절은 보통 고목 한두 그루쯤은 있는 법이니 그런 나무 구경하는 재미가 나에게는 가장 좋다. 처음 만나게 되는 나무라면 더욱 반갑겠지만 여러 번 보더라도 또 그대로 반갑기는 마찬가지다. 나에게는 나무가 가장 은혜로운 설법이라고 할 수 있다.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 앞뜰에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안내문이 없어 정확치는 않지만 내 눈에는 나이가 삼사백 살 쯤 되어 보이는 나무다.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단아한 모습이 인상적인 나무다. 마치 절을 지키는 정갈한 수도승 같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절을 찾아오는 손님을 허리 굽혀 공손히 맞이하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만약 이 느티나무가 없다면 전등사의 분위기는 달라졌을 것..

천년의나무 2009.12.02

간장게장과 해수탕

몸이 찌뿌듯해서 집에서 쉬다가 불현듯 강화도가 떠올랐다. 해수탕에서 찜질을 하고 싶었고, 또 아내가 며칠 전부터 간장게장을 먹고 싶다고 했던 터였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초지대교를 건너기 전에 '진천정'이라고 간장게장을 잘 하는 집이 있었다. 먼저 전등사에 들러 절 주위를 산책했다. 여러 번 전등사에 왔지만 절을 둘러싸고 있는 산에 오르지는 못했다. 이름이 정족산(鼎足山)인데 조선시대에 사고(史庫)가 위치해서였는지 산성이 절을 감싸고 있다. 정족산성을 따라 반 바퀴 정도 걸었다. 낮은 산이지만 전등사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좋았다. 내 입에는 약간 비릿했지만 아내는 고소하다며 간장게장을 맛있게 먹었다. 처음으로 밥 한 공기를 다 비웠다. 그 모습을 보니 기쁘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했다. 아내는 말과 ..

사진속일상 2009.11.29

전등사 단풍나무

강화도 전등사 대웅보전 앞에 대조루(對潮樓)라는 누각이 있다. '바닷물을 마주본다'는 뜻일 텐데 실제는 산과 나무에 가려 바다는거의 보이지 않는다. 건물 안에도 들어갈 수 없다. 이 대조루 옆에 굉장히 큰 단풍나무가 있다.어떤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단풍나무라고 한다. 줄기 둘레만 거의 두 아름이 된다. 그러나 한 그루가 아니라 두 그루가 합쳐져 있어 그 가치가 반감된 모양이다. 나무는 축대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 옹색하기가 그지 없다. 지나는 사람들도 나무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한 달 전쯤에 찾아갔을 때는 막 단풍색이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다른 단풍나무들은 절정이 지났을 때였는데 이 나무는 덩치만큼이나 동작이 느렸다. 아마 지금에야 붉은 단풍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내년에는 느지막하게..

천년의나무 2009.11.24

지구 신발 / 함민복

너 지구 신발 신어 봤니? 맨발로 뻘에 한번 들어가 봐 말랑말랑한 뻘이 간질간질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며 금방 발에 딱 맞는 신발 한 켤레가 된다 그게 지구 신발이야 지구 신발은 까칠까칠 칠게 발에도 낭창낭창 도요새 발에도 보들보들 아이들 발에도 우락부락 어른들 발에도 다 딱 맞아 지구 신발 한번 꼭 신어보렴 - 지구 신발 / 함민복 EBS의 '세계테마기행'을 즐겨 보고 있다. 지난 주에는 알래스카편이 방송되었다. 북극권의 아름답고 이색적인 풍광이 인상적이었지만 자연을 아끼고 지키려는 사람들의 마음이더 감동이었다. 국립공원에는 탐방객 수를 제한하고 지정 차량 외에는 운행도 금지한다. 원래 주인인 동물들을 지키고 자연 파괴를 막기 위함이다.그들의 관점에서는 인간이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시읽는기쁨 2009.10.26

뒷산을 산책하다

대도시에 살면서 대문을 나서면 바로 이런 아름다운 산길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그 축복을 자주 누리지는 못하지만 언제고 날 기다려주는 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오늘도 가벼운 운동화 꺼내 신고 산길에 든다. 일요일인데도 길은 호젓하다. 사람들은 유명 관광지나 축제에는 몰리지만 이런산은 잘 찾지 않는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도리어 그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한다. 아니면 걷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 탓도 있으리라.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는 걷기의 가치를 많이 깨달아가고 있다. "나는 걸을 때 명상을 할 수 있다. 걸음이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정신은 오직 나의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 루소가 '고백록'에서 한 말이다. 또 니체는 말했다. "진정으로 위대한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

사진속일상 2009.06.07

석모도 해명산길을 걷다

외포리에 도착할 때까지 비가 오락가락했다. 일기예보로는 아침에 비가 그친다 했다. 차안에서 김밥으로 아침을 대신하며 일찍 출발한 길이었다. 토요일이라 늦으면 사람들로 복잡할 것 같아서였다. 석모도 산능선길은 예전부터 걷고 싶었던 길이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걸어보게 되었다. 아내와 동행했다. 차는 외포리에주차시켜놓고 배로 건너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전득이고개에서 내렸다. 해명산 등산로 입구다. 벌써 관광버스 두 대가 와서 등산객을 내려놓고 있었다. 비는 그쳤으나 산안개가 자욱했다. 해명산, 석가산, 상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석모도의 척추를 이룬다. 모두 3백 m급의 야트막한 산이다. 해명산에만 올라서면 포근하고 아름다운 산길이 10 km 가까이 계속된다. 길은 적당하게 오르내리면서 북쪽으로 향하는데 산길..

사진속일상 2009.05.24

초지진 소나무

강화도에 있는 초지진(草芝鎭)은 바다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조선 효종 7년(1656)에 구축한 요새였다. 해안을 따라 10 리에 하나씩진(鎭)을 뒀고, 그 사이에 보(堡)를 세워 해안을 방어했다. 이곳은 외세가 몰려오던 19 세기 중반의 격변기에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 운양호사건(1875)의 격전지였다고 한다. 옛 아픈 상처의 자리와는 어울리지 않게 초지진에는 멋드러진 모양의 소나무 두 그루가 있다. 우산 모양을 한 처진소나무의 일종으로 보이는데 동양화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맵시다.그러나 줄기에는 그 당시의 포탄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나이는 추측컨대 300 년 가까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전에는 아마 이런 소나무들이 여러 그루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많은 나무들이 전투 ..

천년의나무 2009.04.02

강화도 나들이

아내의 몸이 많이 회복되어 이제 짧은 거리의 나들이는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가까운 강화도를 함께 다녀왔다. 수술을 받은지 꼭 6 개월만에 첫 바깥 나들이를 한 셈이다. 이제부터는 전처럼 함께 다닐 시간이 많아질 것 같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듯 부부도 자주 얼굴을 대하고 가까이 있지않으면 소원해지기 쉽다. 비록 티격태격하더라도 함께 하는 시간을갖고 대화를 자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가는 동안에는 봄비가 계속 내렸는데 다행히 강화도에 들어서니 비는 그쳤다. 먼저 초지진에 들러 소나무를 보고 점심을 먹은 뒤 광성보의 산길을 산책했다. 바닷가를 따라 난 길은 군데군데 제비꽃이 피어 있고 노란 생강나무꽃이 반가운 호젓한 길이었다. 산에 드니 비가 온 뒤인데도 낙엽 밟히는 소리가 바삭거렸다...

사진속일상 2009.03.26

참성단 소사나무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塹星壇)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제단으로 전해지고 있다. 옛 기록에 따르면 단군은 평양에 도읍한 후 뒤에는 이곳 마니산으로 옮겨제단과 성을 쌓고 천제를 올렸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곳은 개국설화와 관계된 신성한 곳이다. 고래시대 때부터는 임금이나 제관이 찾아와 여기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이 참성단 안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서 나라를 열었다는 단군 설화를 생각하면 박달나무여야 할 것 같은데 엉뚱하게도 소사나무라고 한다. 소사나무는 마니산에서흔히 볼 수 있는데 해변가에서 잘 자라는 키 작은 나무다. 영흥도 십리포 해수욕장에는 대규모 군락지가 있다. 몇 년 전에 찾아가 보았을 때는 여러 갈래로 갈라진 울퉁불퉁한 줄기가 인상적이었다. 참성단은 출입이 금지되어..

천년의나무 2008.11.28

마니산 소나무

서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마니산 정상부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바위 틈에 자리를 잡아선지 힘들고 야위어 보이는데, 더구나 서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해풍 탓으로 몸은 완전히 육지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분재 같은 늘씬한 몸매는 지나는 등산객의 시선을끌아당긴다. 줄기는 용틀임 하며 올라오다가 두 갈래로 갈라졌는데, 만약 수령이 오래 되었다면 명품 소나무 반열에 오를 만한 모양새다. 전에는 나무만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새로이 보호 철책을 둘렀다.사람의 손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이 나무를볼 때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떠올랐다. 낙락장송의 기상이라면 이렇듯 홀로 산꼭대기에서 당당하게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더구나 영산(靈山)이라는 마니산 정상에 있으니 이 나무의 기..

천년의나무 2008.10.31

마니산에 오르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산야의 색깔은 하루가 다르게 원색으로 물들어간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가을산 하나 찾지 않을 수 없다. 작은 베낭을 메고 마니산을 향해 길을 나섰다. 강화도에 있는 마니산(摩尼山)은 해발 500 m가 안 되는 작은 산이지만바다와 들판과 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조망이 뛰어난 산이다. 특히 능선길에 오르면 좌우로 한 쪽은 바다, 다른 쪽은 섬 안 지역으로 전망이 호쾌하게 트여있다. 전에는 이 산을 마리산이라고 불렀다 한다. '마리'는 '머리'에서 나왔다니까 이 산은 머리산, 즉 으뜸 되는 산이라는 뜻이다. 아마 참성단이 있는 곳이므로 그렇게 불린 듯 하다. 마니산은 그동안네 번 정도 올랐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함허동천에서 출발하여 오른쪽 능선길로 올랐다. 산길은 요사이 비가 오지..

사진속일상 2008.10.14

보문사 은행나무

석모도 보문사에는 강화군에서 보호수로 지정한 은행나무가 있다. 안내문에는 이 나무의 관리자는 삼산면장이고, 수령은 400년으로 적혀 있다.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은행나무이기 때문에 별로 색다른 느낌은 없지만 연륜에 비해서 나무가 왠지 초라하게 보인다. 초록색 은행잎으로 덮여있어야 할 나무가 잎도 부족하고 왠지 내복만 입고 있는사람처럼 썰렁하고 민망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언제 했는지는 모르지만 가지치기가 너무 심하게 되어 있다. 한여름인데 잎도 잘 나지 못하는 걸 보면 나무의 생육에 지장을 줄 정도가 아닌가 싶다. 왜 보호수로 지정되기까지 한 나무를 이렇게 흉하게 만들었을까? 내 추측으로는 아마 이 나무가 뒤쪽의 절 건물을 가리기 때문에그랬지 않았나 싶다. 사실이 그렇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천년의나무 2007.08.20

동검도 서어나무

오래된 서어나무가 있다고 해서 일부러 동검도에 들렀다. 섬의 서쪽 해변가 마을에 부채살 모양으로 가지를 펼친 싱싱한 서어나무가 있었다.안내판에는 수령이 200년, 크기는 높이가 20m, 둘레가 3.2m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수종은 이상하게 소사나무로 적혀 있다. 서어나무와 소사나무가 비슷하긴 하지만 수목도감에 보면 서어나무와 소사나무는 엄연히 다른 나무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지 안내판이 도리어 헷갈리게 만든다. 서어나무 하면 근육질의 줄기가 우선 연상된다. 울퉁불퉁해서 재목이나 다른 용도로는 별로 쓰이지 못한다. 건조도 어렵고, 목재가 잘 썩는다고 한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별 쓸모 없는 나무다. 그러나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해변가의 방풍림으로 심기도 한다. 우연인지 내가 본 서어나무는 모두 바닷가..

천년의나무 2007.05.21

분회원들과의 강화도 나들이

분회원들과 함께 강화도로 나들이를 갔다. 적석사와 동검도를 둘러보고 석양을 보기 위해 장화리 해변가에 나갔다. 아쉽게도 저녁 식사 시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해변가에 달려 도착했을 때는 연분홍 해의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바다에는 옅은 안개가 깔려있어 해면 위 높은 곳에서 일찍 모습을 감추었다. 인적 끊긴 저녁 바닷가는 고요하고 쓸쓸했다. 넓은 갯벌로는 바닷물이 조용히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사진을 찍기 위해 분주했던 마음이 공연히 미안해졌다. 사진 찍기에 몰두하다 보면 풍경이 주는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지못한다. 이렇게 카메라를 놓으니 도리어 풍경이 내 마음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마음이 맞는 사람과의 만남이 즐겁듯 풍경도 그러하다. 오늘은 그 둘을 동시에 누리는 행운을 얻었다. 비록 세상은 팍팍하고 꿈은..

사진속일상 2007.05.08

관청리 은행나무

이 은행나무는 강화도 관청리 고려궁지 옆에 있다. 고려궁지는 고려가 대몽항쟁을 위해 1232년에 수도를 개성에서 이곳으로 옮겼을 때 건설되었다. 그 뒤 1270년에 몽고와 화의가 성립되어 개성으로 환도한 뒤 이 터에는 조선시대에 행궁이나 강화유수부 건물들이 들어섰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기는 조선시대 주요 관청들이 있었던 곳이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관청리인 것 같다. 추측컨대 이 은행나무도 어느 관청 건물 마당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가까이는 프랑스에 의해서 기타 여러 차례 병화를 겪으며 관청이 있던 곳은 불에 타고 축소되어 지금은 마을이 들어선 것 같다. 고려궁지 앞 쪽에서는 그런 옛 터의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이 은행나무는 경기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안내문에 의하면 나무의 나이는 약 70..

천년의나무 2007.01.28

장화리 석양

강화도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최근의 변화로 마음이 상심한 아내도 같이 따라나섰다. 강화도는 서울에서 가까운 관계로 젊었을 때부터 자주 다녔던 곳이기 때문에 여기저기에 옛 추억들이 묻어있다. 이번에는 성공회 강화성당, 고려궁지, 전등사, 정수사를 거치며 장화리에서 석양을 보았다. 석양을 보는데도 명소가 있어서 늘 거기 가면 사람들이 몰려있다. 특히 사진발이 잘 받는다고 공인받는 장소가 강화도에서는 이곳 장화리이다. 이날도 앞에 있는 섬과 어우러진 멋진 장면을 기대한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허나 해는 구름 사이로 일찍 사라져서 모두들 아쉬워했을 것이다. '조단(照丹)'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아내와 칼질을 했다. 안 그래도 차 안에서 예전에는 경양식집이 많아 분위기 있는 식사를 할 때 가곤 했었다는..

사진속일상 2007.01.23

사기리 탱자나무

강화도에는 두 그루의 천연기념물 탱자나무가 있다. 하나는 갑곶돈대 안에 있고, 또 한 그루가 천연기념물 79호로 지정된 이 사기리 탱자나무이다. 마리산 등산로 입구이기도 한 함허동천에 조금 못 미처 도로 옆에 이 나무가 있다. 강화도는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라는데, 강화도 기후는 연평균기온 11도, 강우량 1000 mm 정도로 기온의 연교차가 작고 비교적 따뜻한 날씨여서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다고 한다. 강화도 탱자나무는 역사적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같이 간 동료의 얘기로는 약 400 년 전 봉림대군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성을 쌓고 바깥쪽에 탱자나무를 심어 적의 접근을 막았다고 한다. 날카롭고 단단한 탱자나무 가시는 귀신도 물리친다고 하니 적병들 쯤이야 쉽사리 막아줄 수 있으리라는 믿..

천년의나무 2005.10.18

전등사 은행나무

요사이는 어디를 가든 제일 눈길이 가는 것은 나무나 풀들이다. 절에 가면 늘 노거수(老巨樹)를 찾게 된다. 경내에 연륜이 오래된 나무가 있으면 절집의 고풍스런 분위기는 한결 더해진다. 그리고 보통은 나무에 얽힌 전설 하나쯤은 들을 수 있다. 강화도 전등사에는 오래 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경기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안내문에 보면 수령이 각각 500년과 600년으로 되어 있다. 삶에 지쳤는지 많이 쇠약해 보이는 이 은행나무에는 전해지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조선 후기 어느 때였다고 한다. 관청에서는 매년 전등사에서 상당한 양의 은행을 공출해 갔는데 그 양이 늘 지나쳤다. 그런데 어느 해는 그 양을 갑자기 두 배로 늘려 스무 가마니를 요구했다. 이에 스님이 은행이 열리지 않으면 공출도 없을 것이라..

천년의나무 2005.07.06

목탁 치는 소

강화도로 드라이브를 나가다. 장마가계속되니 날씨 따라 기분이 가라앉고 침울해진다. 동료들과 안면도에 가려고 했으나 한 사람의 사정으로 팀이 깨지는 바람에 혼자 길을 나선 것이다. 나에게 강화도는 사람들과의 추억이 많이 쌓인 곳이다. 20여 년 전에는 직장의 동문들과 자주 강화도에 놀러 갔다. 그때는 신촌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강화읍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외포리에 가서 배를 타고 석모도에 가는 것이 기본 코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 불편했을 것 같건만 당시는 그런 생각 없이1년에 두세 차례씩 재미있게 다녔다. 지금은 다들 흰 머리 희끗해지는 나이가 되었을 그때 사람들이 보고 싶어진다. 그동안 산천도 많이 변했다. 서울-강화도 40여 km의 길이 이젠 4차로 이상으로 넓혀졌고, 길 양쪽은 공터 하나..

사진속일상 2005.07.05

갑곶리 탱자나무

집 울타리로 무슨 나무가 좋은지를 물어볼 때 탱자나무를 추천하는 사람은 대개 고향이 남쪽 지방인 사람들이다. 그리고 탱자나무에 얽힌 추억담 한 두 가지 정도는 들려준다. 탱자나무는 추위에 약하다. 내 고향만 해도 탱자나무를 보기는 힘들었다. 옆 마을의 어느 집에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었는데 가을에 달린 노란 탱자 열매가 겨우 기억나는 정도다. 며칠 전 강화도에 간 길에 갑곶돈대에 들러 천연기념물 78호인 이 탱자나무를 만났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북쪽에서 자라는 탱자나무라고 한다. 수령이 400년 정도로 추산하는데 울타리로 본 키 작은 탱자나무만 연상하다가 만나서인지 이렇게 큰 탱자나무도 있나 싶게 거목이다. 물론 다른 나무가 400년이 되었다면 엄청나게 더 클테지만,극한 한계의 조건에서 긴 세월..

천년의나무 2005.01.16

서해 낙조를 보다

강화에 가서낙조를 보다. 연일 춥던 날씨가 좀 풀리고 양지 바른 곳에서 쬐는 햇볕은 봄햇살처럼 부드러운 날, 친구와 강화도를 나들이를 가다. 갑곶돈대에서는 갯펄에서 졸고 있는 오리들도 보고, 400년이 되었다는 탱자나무도 보고, 그리고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다. 복고풍이 불었는지 길가 얼음판에는 썰매를 타는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어른들도 덩달아 즐거워한다. 철사를 바닥에 깔고 창으로 찍어서 앞으로 가는 얼음썰매를 옛날에 우리는 '씨갯도'라고 불렀다. 그때는 스케이트를 타보근게 소원이었는데 이젠 인기 순위가 바뀌었다. 현대는 원시를 그리워하나 보다. 섬의 서쪽 해안가에는 '조단(照丹)'이라는 찻집이 있다. 저녁 무렵이면 손님이 많아지는 전망 좋은 찻집이다. 밖에서 보는 낙조도 아름답지..

사진속일상 2005.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