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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본느낌

사람의 길

샌. 2026. 1. 28. 10:21

표지에는 '한승원 장편소설'이라 되어 있는데 소설이면서 소설이 아닌, 에세이와 동화, 시가 어우러진 작가의 자전기라 할 수 있는 책이다. 작가가 일생을 통해 '사람의 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탐구한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은 간결하면서 꾸밈이 없이 소박하다. 솔직담백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작가의 깊이가 느껴진다. 추사 김정희의 말년 글씨처럼 글쓰기의 틀에서 벗어난 대가다운 면모가 보인다. 졸(拙) 가운데 높고 고상한 품격이 있는 것이다. 작가는 어디선가 '내 삶 막판의 이삭줍기'라는 표현을 썼다. <사람의 길>은 팔십대에 들어서서 지나온 인생길을 돌아보며 이삭줍기하듯 건져올린 사색의 결과물이다. '작가의 말'에 이런 대목이 있다.

 

"찬란한 황혼이 사라지고, 대지와 허공에서 땅거미가 들솟거나 흘러내릴 때, 먼바다 섬들에 뜬 잠깐의 샛노란 까치노을 속에서, 한 늙은이는 앙증스러운 들꽃의 씨앗이나 곡식의 낟알 따위를 보석인 양 이삭줍기합니다. 이삭줍기에는 소리 없이 울려퍼지는 우주 대자연의 장엄한 교향곡이 있습니다."

 

사람은 머리는 하늘을 향하면서 두 발은 땅을 딛고 서 있다. 하늘을 지향하지만 작가는 이 땅에 굳건히 디딘 발걸음을 잊지 않는다. 책에서는 현실 정치나 경제에 대한 비판이 자주 나온다. '야만 세상' '글로벌 자유무역' '쥐새끼적인 소인 근성' 등을 나무라는 목소리가 크다. 내 안의 쥐새끼 근성을 경계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의 길>을 읽으면서 내 노년도 작가의 삶을 닮았으면, 하는 바람을 품었다. 오래전에 장흥으로 낙향하여 사색과 글쓰기에 전념하는 것과 함께, 작가가 보여주는 내면 풍경이 곱게 지는 노을처럼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한 애정과 함께 세상에 초연하기가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책 서두에 나오는 한 글귀를 오래 들여다본다(캘리그래피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훗날 숙달되면 이 글귀를 꼭 써봐야겠다).

 

"꽃이 핀다, 그래.

꽃이 진다 그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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