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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나침반

사기[69]

샌. 2026. 5. 1. 09:41

농부는 먹을 것을 생산하고, 어부와 사냥꾼은 물건을 공급하고, 기술자는 이것으로 물건을 만들고, 장사꾼은 이것을 유통시킨다. 이러한 일이 어찌 정령(政令)이나 교화나 징발이나 기일을 정해 놓음으로써 모이겠는가! 사람들은 각각 그 능력에 따라 그 힘을 다하여 바라는 바를 얻는다. 그러므로 물건 값이 싸다는 것은 비싸질 조짐이며, 값이 비싸다는 것은 싸질 조짐이다. 각자가 그 생업에 힘쓰고 그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 마치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아, 밤낮으로 쉴 새 없이 물건은 부르지 않아도 절로 모여들고 구하지 않아도 백성이 만들어 낸다. 이것은 어찌 도와 부합한 바가 아니겠으며, 자연의 징험이 아니겠는가.

 

빈부의 도란 빼앗거나 안겨 주어서 되는 게 아니고, 교묘한 재주가 있는 사람은 남아도는 것이고 꾀가 없는 사람은 모자란 것이다.

 

예(禮)라는 것은 재산이 있는 데서 생겨나고 없는 데서 사라진다. 그런 까닭에 군자가 부유하면 덕을 즐겨 실천하고, 소인이 부유하면 자기 능력에 닿는 일을 한다. 못은 깊어야 고기가 있고, 산은 깊어야 짐승이 오가며, 사람은 부유해야만 인의를 따른다.

 

어진 사람이 묘당에서 깊이 도모하고 조정에서 논의하며, 신의를 지켜 절개에 죽거나 동굴 속에 숨어 사는 선비가 높은 명성을 얻으려는 것은 결국 무엇을 위해서인가? 그것은 다 부귀로 귀착된다. 그러므로 깨끗한 벼슬아치도 시간이 오래되면 더욱 부유해지고, 공정한 장사꾼도 마침내 부유해진다. 부라는 것은 사람의 타고난 본성이라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바르는 것이다.

 

생활을 꾸려 나감에 위태롭게 하지 않으면서 수입을 얻으려는 것은 현명한 사람이 힘쓰는 바이다. 그러므로 농업으로 부른 얻는 것을 으뜸이라 하고, 상업으로 부를 얻는 것은 그다음이며, 간사하고 교활한 수단으로 부를 얻는 것이 가장 저급하다. 동굴 속에 숨어 사는 선비의 기이한 행동도 없으면서 오랫동안 가난하고 천하게 살며 인의를 말하는 것만 즐기는 것도 아주 부끄러운 일이다.

 

부유해지는 데는 정해진 사업이 없고, 재물에는 일정한 주인이 없다.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재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기왓장 부서지듯 흩어진다. 천금의 부자는 한 도읍의 군주에 맞먹고, 거만금을 가진 부자는 왕과 즐거움을 같이한다. 그들이야말로 어찌 이른바 소봉(素封)이라고 할 만한 자들인가? 아닌가?

 

- 사기(史記) 69, 화식열전(貨殖列傳)

 

 

'화식열전'에 나오는 몇 구절을 옳겨보았는데 이 편을 읽으며 재물과 부를 대하는 사마천의 관점에 놀랐다. 내가 읽은 동양 고전에서는 - 주로 유가와 도가이지만 - 재물 욕심을 멀리 하고 탐욕을 경계하라고 가르쳤다. 사마천은 반대로 말한다. 물질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므로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권장해야 할 일이다. 사마천은 명분보다는 실리를 중시하는 현실주의자이다.

 

돈은 곧 힘이라고 사마천은 강조한다. 개인의 권력은 경제력에서 나온다. 돈을 버는 과정에서 약간의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더라도 사마천은 불가피하게 여긴다. 사마천은 상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물자가 잘 유통되어야 나라가 부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유통하는 시기나 장소를 잘 이용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 '화식열전'에는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된 사람들의 예가 많이 나온다.

 

한 예로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있다. 자공은 상업으로 큰 돈을 번 재력가였다. 자공이 가는 곳마다 제후들이 몸소 뜰까지 내려와 대등한 예로 자공을 맞이했다. 이런 자공의 지원이 있었기에 공자의 이름이 천하에 알려지게 되었다. 모두가 회나 원회 같았으면 공자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화식(貨殖)'은 재산을 늘리는 법을 말한다. 자본주의의 씨앗이 이미 사마천에게서 싹트고 있었다. 단지 분배의 측면을 소홀히 한 것은 아쉽다. <사기>에서 예상외의 독특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되는 '화식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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