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무서운 손자 / 강춘자 본문
어릴 적
할머니 다리에 누워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는데
우리 손주는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하니
무서워 죽겠다
말로 하는 이야기라면
손으로 하는 음식이라면
손주놈이 해달라는 대로
해줄 수 있으련만
달려가 보듬어 안고파도
손주놈 손에 들린
동화책이 무서워
부엌에서 나가질 못한다
- 무서운 손자 / 강춘자
철없는 손주는 할머니에게 동화책을 들고와서 읽어달라고 한다. 글을 배우지 못한 할머니의 심정이 어떠할까. 글을 모른다는 고백을 손주에게 할 수가 없다. 손주가 이해해 줄 것 같지도 않다. 할머니는 속울음을 삼키지 않았을까. 손주를 보듬어 안고 동화책을 읽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학창 시절에 함께 살았던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학교에 다니지 못한 외할머니도 한글을 모르셨다. 편지로 소식을 전할 때는 내가 대필을 했다. 외할머니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는 편지였다. 다 쓰고 나면 외할머니께 읽어드리고 수정을 했다. 그때는 몰랐다. 외할머니가 얼마나 답답하셨을지를. 편지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의 눈과 입을 거쳐야 소통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때는 역지사지로 헤아릴 줄 몰랐다.
지금은 후회한다. 외할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쳐줄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조금만 시간을 내었더라면 최소한 글자를 읽기라도 했을 것이 아닌가. 아마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경험이었으리라. 이 시를 쓴 강춘자 할머니도 70대에 들어서 한글을 깨쳤다고 한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런 시를 쓰지 못한다. 요즈음은 어린 손주가 영어를 묻는 바람에 창피당하지 않으려고 영어 수업을 듣는 사람을 자주 본다. 세월이 한 바퀴 돌았지만 고충은 여전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가 아니라면 궤념치 않았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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