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가난한 이름에게 / 김남조 본문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
나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여인을 만나지 못해
당신도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까
검은 벽의
검은 꽃 그림자 같은
아두운 향료
고독 때문에
노상 술을 마시는 고독한 남자들과
이가 시린 한겨울 밤
고독 때문에
한껏 사랑을 생각하는
고독한 여인네와
이렇게들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
얼굴을 가리고
고독이 아쉬운 내가 돌아갑니다
불신과 가난
그중 특별하기론 역시 고독 때문에
어딘지를 서서이는
고독한 남자들과
허무와 이별
그중 특별하기론 역시 고독 때문에
때로 골똘히 죽음을 생각하는
고독한 여인네와
이렇게들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
머리를 수그리고
당신도 고독이 아쉬운 채 돌아갑니까
인간이라는 가난한 이름에
고독도 과해서 못 가진 이름에
울면서 눈 감고
입술을 대는 밤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
나는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다
- 가난한 이름에게 / 김남조
이 시에는 '고독'이 열네 번이나 나온다. 일종의 역설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다"도 그렇다. 실제로는 가장 쓰일모 있는 삶이 고독과 관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에서는 철학에서 '실존자'의 이미지, 붓다의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 떠오른다. '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는 그만큼 고귀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자부로 읽힌다. 노자가 이 시를 본다면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땅에서 쓰일모 없는 사람이 하늘에서는 높이 들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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