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 윤재철 본문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술값은 쟤들이 낼 거야
옆 자리 앉은 친구가 귀에 대고 소곤거린다
그때 나는 무슨 계시처럼
죽음을 떠올리고 빙긋이 웃는다
그래 죽을 때도 그러자
화장실 가는 것처럼 슬그머니
화장실 가서 안 오는 것처럼 슬그머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할 것도 없이
빗돌을 세우지 말라고 할 것도 없이
왁자지껄한 잡담 속을 치기배처럼
한 건 하고 흔적 없이 사라지면 돼
아무렴 외로워지는 거야
외로워지는 연습
술집을 빠져나와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 걸으며
마음이 비로소 환해진다
-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 윤재철
그렇게 가고 싶다. 슬그머니 술자리에서 빠져나오듯이 이 세상도 가볍게 떠나고 싶다.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얼마 전 고향 마을의 이웃분이 요양병원에서 스무 해 가까이 지내다가 힘들게 돌아가셨다. 말년의 오랜 기간은 치매로 자식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이승과 맺은 끈이 얼마나 질겼기에 그리 오래 고생하셨을까. 죽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 경우를 흔하게 본다. 술자리 빠져나오듯 가뿐히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왁자지껄한 술집을 빠져나와 낯선 거리를 걸으며 마음이 환해진다. 저승길도 그렇게 가벼울 수 있다면, 나도 그렇게 미련 없이 떠나갈 수 있다면. 그러자면 짐을 줄여야 하지 않겠는가. 내려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렴 외로워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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